비 오는 아침, 갈치조림 냄새 속에서 다시 만난 시간
어떤 사랑은 오래 말하지 않아도,
다시 마주한 밥상 위에서 충분히 전해진다.
별이 가장 선명한 12월 중순의 깊은 새벽이었다.
밤새 달린 기차는 마래산을 돌아 만성리로 접어들었다.
건널목을 지나자, 탁 트인 바다가 시야에 펼쳐졌다.
가막만 너머 남해의 산자락이 흐릿하게 떠 있었다.
기차는 바다와 맞닿은 해안선을 따라 속도를 줄이며 달렸다.
바다에 발을 담근 마래산 아래 터널에 들어서자,
울퉁불퉁한 바위산의 내장이 터널등을 따라 드러났다.
기차는 터널을 빠져나오며 해안과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철로와 해안가 사이, 연탄공장 지대의 굴뚝에 불빛이 올라왔다.
기차는 공장지대를 지나며 바닷물을 머금은 검은 먼지를 철로 옆 판자촌으로 무겁게 밀어냈다.
기차는 관성으로 미끄러지듯 종착역 여수역으로 들어갔다.
정호는 마지막 플랫폼에서 다가오는 기차를 바라보았다.
짙은 구름 사이 밤하늘에 별 몇 개가 또렷이 떠 있었다.
왼손 소매를 걷어 카시오 전자시계의 라이트 버튼을 눌렀다.
안쪽에서 조그만 전구가 켜지며 액정 화면을 노르스름하게 비췄다.
액정 위로 작은 빗방울이 떨어져 디지털 숫자 05 : 38 이 약간 얼룩져 보였다.
기관사는 오른팔을 뻗어 철사로 꼬아 만든 토큰링을 플랫폼 끝 고리에 정확히 걸었다.
역사로 들어서자 기차의 박동 소리는 점점 간격이 멀어졌고, 몇 초간의 긴 쇠울음을 마지막으로 멈췄다.
정호는 마지막 플랫폼에 들어선 화물칸 앞으로 손수레를 끌고 갔다.
화물차로 올라간 정호는 신문 백 부 묶음을 능숙하게 들어 올렸다.
수천 번의 반복 끝에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무게 중심을 잡아 휙 던지면 신문덩어리는 어김없이 반듯한 면을 아래로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터억.’
넓은 아랫면이 플랫폼 바닥에 닿는 순간, 묵직한 소리가 퍼졌다.
신문 모서리 하나 흐트러짐 없이 정확히 닿는 그 소리는
정호에게는 새벽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손수레에 신문덩이들을 실어 역사 안으로 향했다.
굵어진 빗방울이 신문을 감싼 투명 비닐을 툭툭 두드렸다.
신문은 25부씩 엇갈리게 겹쳐져 100부가 한 덩어리였다.
투명 비닐에 싸여 플라스틱 노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노끈을 끊고 젖은 비닐을 벗기자, 신문 사이로 옅은 따뜻함이 흘러나왔다.
정호는 조심스레 손을 넣어, 식은 손끝을 그 속에 잠시 묻었다.
“12-12 사태 10주년, 진상 규명 요구 거세"
신문 1면에는 군인들의 단체사진이 실려 있었다.
“비까지 오는데 전단까지 해야 돼서 어쩌냐?”
소장님이 광고지를 바닥에 두며 뒷 목을 긁적였다.
“금방 해요.”
정호는 소장님을 보며 씩 웃었다.
소장님은 처진 눈이 선해 보이고 살집이 넉넉한 할아버지였다.
짧은 목은 늘어진 턱살에 두텁게 감싸여 있었고, 아랫배와 양옆구리는 하나로 이어져 불룩했다.
정호는 가끔 소장님을 보며 통통한 버섯이 떠오르곤 했다.
중학생이 된 후 신문배달 일을 구할 때, 소장님은 어린 정호를 유일하게 받아주셨다.
매일 새벽 여수역 역사 안에는 여러 신문사들의 배달원이 모였다.
정호를 빼고 모든 배달원은 어른들이었다.
정호는 25부로 처음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25부는 나일론 신문배달 가방에 딱 들어가는 양이었다.
정호는 점점 배달구역을 넓혀 나갔다.
70부가 넘어가자 소장님은 배달 자전거를 지급해 주셨다.
정호는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니 여분의 신문을 가져가 영업을 하여 새로운 거래처를 종종 만들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소장님은 정호에게 수금용지를 주고 매달 수금을 맡겼다.
소장님은 정호에게 어른들과 동일한 월급을 주었다.
거기에 새로운 거래처를 만들거나 수금을 해오는 날에는 용돈을 챙겨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정호는 오히려 소장님이 어느 정도 의지할 수 있는 경력자가 되었다.
정호는 마치 제본기계처럼 신문사이에 전단지를 규칙적으로 끼우기 시작했다.
전단지를 끼운 신문을 두 번 접어 한 부 씩 방수 비닐에 넣었다.
투명비닐 위에는 검은색으로 중앙일보라는 글씨가 찍혀있었다.
정호는 짐빠자전거에 작업한 신문을 옮겨 실었다.
중앙일보 30부는 배달가방에 넣어 매고,
80부는 뒤쪽 짐받이에 묶고,
자매지 중앙경제신문 30부는 앞 바구니에 넣었다.
역 앞 광장은 아직 어두웠다.
가로등은 주황빛 긴치마를 바닥에 드리우고 있었다.
겨울 바닷바람 속, 빗방울이 소리 없이 몰려다녔다.
정호는 장갑 낀 손을 입으로 가져가 입김을 불었다.
비옷의 후드를 머리에 쓰고 목 앞에서 똑딱이 단추를 잠갔다.
자전거 왼편에 선 채 양손잡이를 쥐고 왼쪽 페달에 오른발을 올렸다.
바닥을 왼발로 밀며 역입구에서 광장으로 나갔다.
빗방울이 이마 위 후드를 가볍게 두들겼다.
왼발로 페달의 축을 밟고 오른발을 넘겨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대로 일어선 채 첫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모래사장이 끝도 없다이. 어찌 바다에 섬 하나도 없냐.”
매자는 LA 베니스 비치의 식당 창 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엄마, 저 바다가 태평양이고 건너면 한국이야.”
정희는 랍스터 살을 발라내어 어머니께 드리며 무심히 말했다.
“두호랑 정호는…”
매자는 수평선 어딘가에 손자들이 서 있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엄마, 이제 조카들 다 컸어. 그만 걱정해.”
“걱정이 아니라, 보고 싶어서 그러지. 글고 두호야 어른이다만, 정호는 이제 중학생인데…”
“엄마! 여기 오신 지 3년이 넘었어. 손주들은 이제 엄마 안 찾아.”
정희는 엄마의 그리움을 끊으려는 듯 빠르게 말을 잘랐다.
“집에 가면서 갈치 좀 사가자. 갈치조림이 묵고 싶네.”
“아유, 사위가 엄마 위한다고 비싼 식당에 모셔왔는데, 갈치가 뭐야.”
갈치조림은 정호가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매자는 그날 처음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정호는 여객선 터미널에 마지막 신문을 배달했다.
배달은 교동에서 시작해 봉산동과 남산동을 거쳐, 다시 교동으로 돌아오며 끝났다.
터미널 오른편에 나란히 붙은 항구로 향했다.
콘크리트에 줄지어 박힌 커다란 쇠고리들엔 어선들이 묶여있었다.
정호는 외떨어져 쓰이지 않는 검게 녹슨 쇠고리에 앉았다.
배달을 마친 뒤 집으로 가기 전, 늘 잠시 쉬어가는 곳이었다.
비는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손과 얼굴은 시렸지만, 비옷을 입고 서둘러 그런지 등에서는 땀이 흘렀다.
계선주의 차가운 철이 비옷 너머로 엉덩이에 시원하게 와닿았다.
자산공원과 돌산 사이, 좁은 수평선 위로 구름이 걷히며 동이 트고 있었다.
겨울이면 늘 해가 뜨기 전 배달을 마쳤지만, 오늘은 비 덕분에 이래저래 늦어졌다.
정호는 땀을 식히려고 후드를 벗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이슬비를 맞으며 중앙동 로터리를 돌자 진남관 건너편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버스를 기다리던 남녀 학생들은 로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류장의 눈길이 온통 자신에게 붙어 있는 것 같았다.
후드를 벗은 게 후회됐지만, 다시 쓰면 그네들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들키는 것 같았다.
정류장을 지날 때 땀과 비에 젖은 얼굴이 따갑게 느껴졌다.
정류장을 지나자 진남관 앞 가파른 오르막이 나왔다.
기어 없는 짐빠자전거로 오르려면, 선 채로 페달을 힘껏 밟아야 했다.
페달을 밟는 쪽으로 자전거가 좌우로 번갈아 기울었다.
오르막 끝이 보일 무렵, 버스가 뒤에서 저단 최고속을 짜내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승객들의 눈길이 비옷 등 뒤에 박힌 중앙일보 글자에 꽂힌 듯했다.
정호는 숨을 씩씩 뿜으며, 쓰러지기 직전의 속도로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버스는 변속을 하며 정호를 지나 앞서 나갔다.
창가의 사람들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비옷을 입은 소년을 훑어보았다.
정호는 얼굴을 숙였다.
오르막을 겨우 넘자,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졌다.
숨을 고르며 페달을 멈추자, 뒷바퀴에서 ‘촤르르르’ 기분 좋은 금속음이 흘러나왔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때 들리는, 그 소리였다.
잠시 바람에 얼굴을 식히며 단단해진 허벅지를 쉬게 했다.
저 앞 정거장에서 승객을 태우고 있는 버스가 보였다.
정호는 페달을 점점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금속음이 멈추고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정호는 멈춰 선 버스의 왼편으로 달려 나갔다.
운전석을 힐끗 바라본 뒤, 빠르게 버스를 지나쳤다.
이제 더 이상 가파른 오르막은 없었다.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길.
정호는 달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버스는 저 멀리, 아주 작게 보였다.
이제 버스가 자신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페달을 멈춰 촤르르르, 금속음을 울렸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 소리.
페달을 뒤로 돌려 금속음을 더욱 높게 연주했다.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두 발을 허공에 쭉 뻗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을 질렀다고? 둘째 오빠가? 순천교도소? 정호는요? 혼자야? 두호는?
매자는 수화기를 내려놓는 둘째 딸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엄마, 두 달 전에 오빠가 셋집에 불을 질러 감옥에 갔대요,”
“정호는?”
“정호는… 언니가 학교 근처에 집을 하나 구해줘서, 학교 잘 다니고 있대.”
“나 당장 한국 갈란다.”
“엄마! 왜 그래? 정호! 정호! 정호! 그만 좀 해요.
우리 칠 남매 어렵게 키우고,
아버지 중풍 걸리셨을 땐 몇 년을 병수발하고,
그렇게 힘들었으면 됐어.
손주들 때문에 또 고생하는 꼴 나는 못 봐!”
“그게 무슨 고생이냐… 내가 여기서….”
매자는 시선을 잠시 떨구었다가, 다시 딸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니가 속상해하고, 형제들끼리 싸울까 싶어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속이 내 속이 아니다. 속이 꺼매. 맘이 너무 고생 스러.
새벽마다 눈을 뜨면 그것들 생각나서, 그냥 가슴이 맥히고,…”
매자는 가슴을 손으로 쥐며 말을 잊지 못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힘든 게 싫어.”
“정희야, 나는 두호랑 정호랑 있는 게 젤로 좋다.
몸뚱아리 힘든 거는 암시롱 상관없다.
내가 살믄 이제 얼마나 살긋냐?
정호 어른 될 때까지는 누가 봐야지?
니들도 어른 될 때까지 내가 키웠는디.
그냥… 가들 옆에서 살다 죽을란다.”
“아 정말. 그놈의 할머니 막내아들, 정호 때문에 내가 못 산다니까.”
정희는 정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를 데리고 여수를 떠나던 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형제들은 어머니를 미국으로 모시기로 했고,
열 살 정호는 '할머니를 데려간다’는 어른들의 말에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 눈빛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체념이 담겨 있었다.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 같은 존재를 보내며,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할머니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자신을 안고 흐느끼는 할머니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정희는 정호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를 위해서,
그녀를 정호에게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정호는 새벽에 배달을 시작한 여수역을 지났다.
오른편으로 높은 담장이 철로를 가린 채 도로와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고요한 아침, 자전거의 작은 쇳소리가 벽에 부딪혀 거리를 울렸다.
조금 지나 담이 끊기고 쇠창살 울타리가 나타났다.
울타리 바로 옆으로는 레일이 길에 놓여 있었다.
저 멀리 바다 건너, 남해의 산자락 위로 해가 뜨고 있었다.
해안가 연탄공장의 굴뚝에서는 벌써부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정호는 쇠창살 한 칸이 툭 끊겨있는 곳에서 자전거를 멈췄다.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서 철로를 건넜다.
신호기도, 건널목도, 레일 옆에 덧댄 패널도 없는
그냥 철길이었다.
철로 옆으로는 울창한 나무들이 담처럼 심어져 있었고,
그 너머엔 판자촌이 있었다.
‘귀환촌’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처음 이곳에 모여 살기 시작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6.25 전쟁 이후, 더욱 가난해진 사람들이
철도청 소유의 이 땅에 하나둘 더 모여들며 마을이 커졌다.
열 채의 집이 양옆으로 벽을 마주한 채,
하나의 지붕 아래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마치 객실이 길게 붙어 있는 낡은 객차처럼 보였다.
이런 객차 모양의 건물들이
어른의 양팔 너비 정도 되는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여덟 줄이나 이어져 있었다.
각 줄의 머리는 철로를 향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처음 세운 집에 옆으로 하나씩 덧붙이며 짓다 보니
지붕 색도, 문도, 벽의 색도 제각각이었다.
통로는 오래 밟혀 단단해진 흙바닥이었지만
비가 오면 금세 질척거렸다.
집집마다 문 앞으론 좁고 긴 하수로가 연결돼 있었고,
여름이면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철로의 반대편, 판자촌의 끝자락엔
두 동의 공동화장실이 있었다.
한 동에는 푸세식 화장실 여섯 칸이 붙어 있었다.
바닥이 뚫려 아래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각 칸마다 나무판자를 덧댄
붉게 칠한 문이 달려 있었는데,
경첩이 헐거워져 몇 번이나 자리를 옮겨 박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환기를 위해 잘라낸 머리 부분 사이로는
화장실 안 사람이 서 있을 때 움직이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밖에서 보면 마치 사람의 머리만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곤 했다.
정호네 집은 마지막 줄, 공동화장실 쪽에서 세 번째였다.
통로에서 출입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 나왔고, 그 뒤로 안방,
그리고 안방 뒤편에는 창고처럼 작은 방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집들은 대부분 비슷한 구조였다.
그 작은 방이 정호의 방이었다.
방 뒤편엔 손바닥만 한 창이 있었고,
그 너머로 연탄공장의 굴뚝이 보였다.
정호는 통로 입구에서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스탠드를 ‘탁’ 밟아 올리자, 뒷바퀴가 공중에 떠 가볍게 돌았다.
안장을 손으로 툭툭 두드리고는, 어둑한 통로 안으로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밝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출입문을 열며 말했다.
“할머니, 다녀왔어요!”
“비 와서 배달이 늦었나 보네. 언능 아침 묵고 핵교 가야지.”
정호는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상 앞에 바로 앉았다.
“젖은 옷부터 갈아입고 밥을 먹어야지. 감기 들겄다잉.”
할머니는 연탄불에 데워둔 냄비를 상에 올렸다.
그리고 정호 옆에 앉아 뚜껑을 열었다.
하얀 김과 함께 매콤하고 비릿한 냄새가 퍼졌다.
정호가 좋아하는, 통통한 갈치조림이었다.
“우와. 맛있게 먹겠습니다!”
정호는 재빨리 젓가락을 들었다.
토막 낸 갈치를 길게 집어 들고, 등 쪽의 잔가시를 앞니로 조심스레 뽑았다.
젓가락으로 살결을 따라 벌리자, 커다란 살점이 깔끔하게 떨어졌다.
그 살을 할머니 밥그릇 위에 살며시 얹었다.
“할머니, 드세요.”
그리고는 서둘러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이구, 내 막둥이…”
할머니는 정호의 젖은 엉덩이를 가만히 툭툭 두드렸다.
4년이 흐른 뒤에야, 매자는 다시 정호의 옆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갈치조림 맛은, 그 세월 동안 변함이 없었다.
정호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안경이 뿌옇게 흐려졌다.
비에 젖은 정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김 때문인지,
눈에 고인 따뜻한 마음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나온 시간 속, 마음 깊은 이야기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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