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없는 열매

안으로 핀 수천 개의 꽃

by 따뜻한시선


1987년 5월,

처음으로 내 마음에 핀 꽃 한 송이를 떠나보냈다.



5월의 따뜻한 햇살이 비스듬히 마당을 비추었다.

지붕보다 높이 솟은 무화과나무의 투명한 녹색 잎이 봄바람에 살랑이며, 그림자로 마당 한편을 부드럽게 쓸고 있었다. 무성한 잎 사이로 알사탕만 한 초록빛 어린 열매가 맺혔다.


“꽃이 없는 열매라서, 무화과라고 한데.”

명화누나는 무화과나무를 힘없이 바라보며 말했다.


“어, 정말 꽃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정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꽃이 안으로 피어서 아무도 몰랐던 거야.

저 조그만 열매의 안쪽에서 꽃이 피는 거래.

우리가 먹던 열매의 빨간 속이,

사실은 수백, 수천 개의 꽃이 핀 거래..”


혼잣말처럼 조용히 읊조리는 누나의 목소리는 슬펐다.

정호는 누나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지만, 어디서 오는지 모를 무거움에 눌려 조용히 누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둘은 가만히 마당 너머 종고산을 바라보았다.

해는 남서쪽으로 조금씩 기울며, 마당 위로 지붕 그림자를 천천히 길게 드리웠다.






정호는 6교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장군산 중턱에 다다를 즈음,

잠시 걸음을 멈추고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시원하게 식혔다.

여수의 4월 초 오후는 제법 따뜻한 봄날이었다.


정호는 아버지와 단칸방 사글세에 살았다.

가운데 넓은 마루 안쪽으로 길게 안방이 놓여 있었고,

마루의 양쪽 끝으로는 좁은 복도처럼 이어진 작은 방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대문 바로 옆, 부엌이 뒤로 딸려있는 왼편의 작은방이 정호네였다.

오른쪽의 작은 방 옆에는 주인집의 부엌이 붙어 있었다.

그 부엌을 지나면 우물이 있었고 바로 산으로 이어지는 계단식 밭이 집의 오른편으로 있었다.

넓은 마당은 동쪽을 향해 건너편 종고산을 마주했다.


무화과나무가 마당 밖으로 막 돋은 나뭇잎을 뻗고 있었다.

정호가 대문으로 들어서니 주인집 작은방 앞 마루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네가 정호니?”

겨울 동안 방 안에만 있던 그 누나였다.


우물에 물을 길어 가며 작은 방을 지날 때면,

닫힌 창호문 너머로 이문세의 노래가 들렸다.

그리고 콜록하는 연약한 기침소리가 섞여 흘러나왔다.


그녀는 붉은 담요를 몸에 감싸고

머리를 벽에 기댄 채 마루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정호를 보며 생기 없이 하얀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네? 안녕하세요? 누나… 코에서 피가… 잠깐만요”

정호는 급하게 가방을 벗고 수건을 가지러 갔다.


“놀라지 마, 괜찮아.”

누나는 차분하게 말을 건네며 담요 속에서 팔을 꺼내었다.

앙상하게 핏기 없는 팔은 군데군데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손에 쥔 손수건으로 코피를 닦았다.

벽에서 머리를 떼자, 뒷 머리가 납작하게 눌린 채였다.


“엄마한테 이야기 들었어. 아빠랑 산다며? 몇 살이야?"
그녀는 다시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조용히 물었다.


“11살요.”


“잘 생겼네. 마당에서 네 목소리 종종 듣고, 너랑 인사하고 싶었는데,

누나가 아파서 겨울 동안 방에만 있어야 했어.”






1986년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호네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주인집의 첫째 아들은 그해 봄에 결혼해 분가했고,

둘째 딸은 여수여상 3학년 2학기 무렵, 광주의 큰 은행에 취업을 나갔다.


그렇게 방이 비게 되었고,

정호네는 마침 그 방을 구해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런데 겨울방학이 시작될 즈음, 주인집 딸이 돌아왔다.





“어이, 집에 있는가? 소주 한 잔 하세.”

주인집 아저씨가 문 앞에서 정호 아버지를 불렀다.


“형님, 술 입에도 안 대시는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이세요?”

아버지는 미닫이문을 열며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정호도 건너와. 저녁 같이 먹게.”





주인집 부부는 시장 한편에서 생선가게를 했다.

매일 새벽, 어항 공판장에서 수산물을 경매로 떼어다 팔았다.


“우리 명화 걸음마 막 할 때,

고깃배 롤라에 손이 이 모양이 돼부렀지.”


탁- 아저씨는 소주잔을 밥상에 거칠게 내려놓으며 왼손을 들었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마디 하나만 남아 뭉툭했고,

나머지는 손가락은 뒤틀린 채 굳어 있었다.


“명화엄마 만나고… 너무 좋았어.

명식이랑 명화 얻고, 사는 게 이렇게 재미져도 되는가 했어.

그러다 손이 이렇게 되고, 뱃일도 못 허게 되고,

세상 원망… 참 많이 했지.”

아저씨는 아버지의 술잔을 받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명화엄마가 고생 많이 했지…

그때 내가 맨날 술만 먹고 사람 구실 못할 때,

저 사람이 명식이 데리고 명화 업고,

어항에서 물고기 외상으로 얻어 다라이에 담고,

그걸 머리에 이고 시장바닥에서 장사를 했어.

나는 그냥… 모른척해부렀어.”


크읔-

그는 소주를 또 단번에 들이켰다.


“한… 세 달쯤 지났을라나?

어느 저녁에 명화가 아장아장 걸어와서

첨으로 ‘아빠’라고 부르는디,

이유도 없이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고.”

그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다시 살아야것다… 그렇게 생각했지.

담날부터 명화엄마랑 공판장에서 생선 떼서

리어카에 실어 시장에 나가 팔았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며, 소주잔을 가만히 쥐었다.


“그리 살다 보니,

시장에 조그만 가게 하나 얻고,

산꼭대기지만 집도 하나 장만하고,

명식이는 공고 졸업해서 여수공단에 취업하고,

올봄엔 결혼도 하고,

공부 잘하던 명화는 졸업도 하기 전에

광주 큰 은행에 들어가고….”


말을 멈춘 아저씨는

오른손으로 왼손의 잘린 손가락 부위를 꼭 쥐었다.


“명화가 광주로 가는 날,

하늘이 내 자식 둘을, 품에서 이리 잘 자라게 해주는 대신

내 손가락 두 개를 가져갔나 보다… 했어.

터미널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냥… 행복해서.”


그는 한참 동안 왼손을 바라보다

말없이 소주잔을 또 기울였다.


“그런데 우리 명화가 몹쓸 백혈병이라네… 흐윽

고칠 수가 없다네… 흐흐윽 몇 달도 못 산단다….

이제 피려고 하는 스무 살을 데려간다네.”

아저씨는 거칠게 흐느끼며 말을 겨우 이어갔다.


“내 손가락 다 가져가도 좋으니

우리 명화 좀 살려줬으면 좋겄어.

아니 내 모가지를 끊어가도 좋으니

우리 명화 좀 살았으면 좋겄어.

크허허허”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아저씨는 바닥에 토해냈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아주머니도

바닥에 손을 짚고, 몸을 들썩이며 흐느꼈다.






5월 말, 봄비에 젖은 장군산은 초록 새 옷을 입은 듯했다.

비가 지나간 마당 한편의 물웅덩이는 파란 하늘을 담고 있었다.


“누나, 학교 다녀왔습니다!”


늘 마루에 앉아 정호를 반겨주던 명화가 보이지 않았다.

가슴속 어딘가에서, 툭, 무엇인가 내려앉는 느낌이 스쳤다.

방문은 열려 있었고 이문세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운 그대 손을 잡고 밤하늘을 날아서

궁전으로 갈 수도 있어…’


“누나? 자요? 저 왔어요.”


“어… 정호 왔어? 오늘은 힘이 없어… 누워있다 잠이 들었네.”

명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정호를 바라보다가, 마당의 무화과나무로 시선을 옮겼다.


“으음…”

몸을 일으키려다, 그녀는 짧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이내 다시 자리에 누웠다.


“정호야. 누나 좀… 일으켜 줄래?”


정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팔을 감싸 안고 부축했다.

명화는 방 안쪽 문지방에 기대앉았고,

정호는 마루 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조용히 그녀를 마주 보았다.


“무화과 열매가 많이 자랐다. 저 안에 꽃이 폈을 거야.”

명화는 쑥 들어간 눈으로 무화과나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8월쯤… 정호랑 무화과 먹으면 좋겠다. 하아…”

말끝이 느려지고, 숨소리엔 힘이 없었다.


“누나, 제가 그때 잘 익은 거 골라서 따 줄게요.”


“그래, 정호야… 저번에 딸기잼이랑 식빵… 정말 맛있었어. 누나는 그 맛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명화는 작고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정호는 말없이 고개를 돌린 채, 까닭 없이 흐르는 눈물을 꿀꺽 삼켰다.

그는 무화과나무를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바람에 무화과 잎이 살랑 데고 있었고,

그 사이로 봄빛이 스며들며 반짝였다.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 걸…’


봄 내내 함께 듣던 이문세 4집의 후면 마지막 곡인,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마당을 조용히 채우고 있었다.






정호는 유리 진열장 안의 로봇 장난감을 바라보았다.

‘철인 28호’

기병의 투구처럼 생긴 머리, 등에 달린 쌍발 제트추진기.

그는 유리에 이마를 대고 찬찬히 로봇을 바라보았다.

진열장 바닥엔 ‘가격 1,000원’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정호는 주머니 속의 천 원짜리 지폐를 슬며시 만지작거렸다.

아버지가 외지로 목수일을 나서며 일주일치 생활비로 건넨 돈이었다.


단무지를 사러 서정시장에 왔지만,

사실은 시장 입구에 있는 장난감 가게를 들르려는 핑계라는 걸

정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장난감을 사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살 수 있는 돈을 수중에 쥐고 가게로 들어가면,

주눅 들지 않고 이것저것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뭐 살 거야?”라는 주인아저씨의 핀잔 섞인 물음이 날아오면

주머니 속 천 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그건 마치 장난감 가게에 들어설 수 있는 입장권 같았다.


쩝-

먹을 것도 아닌데 그는 입맛을 다시며

힘들게 장난감가게에서 걸음을 돌려 나왔다.


4월 중순의 시장은 딸기 향기로 가득했다.

화양면, 소라면, 돌산읍 등지에서

이른 아침에 수확해 온 딸기를 펼쳐놓은 아주머니들이

길가를 따라 줄지어 앉아 있었다.


딸기를 보자 며칠 전, 누나가 무심코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아침에 식빵에 딸기잼 발라 먹곤 했는데… 요즘 그게 그립네.”

은행에 출근하기 시작한 무렵,

광주 자취방에서 종종 그렇게 아침을 먹었다고 했다.


정호는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딸기 한 소쿠리를 오백 원에 샀다.

수확철이라 딸기는 저렴했다.

그리고 슈퍼에 들러 열 조각이 든 식빵 한 봉지와 우유를 샀다.




“누나 학교 다녀왔습니다!”

정호는 마루에 앉은 누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좀 늦었네?”


“네, 시장에 좀 다녀왔어요. 제가 뭐 좀 드릴게요.”

정호는 봉지를 뒤로 감춘 채 대답했다.




그는 막내고모가 남기고 간 양장본 ‘주부생활백서’를 펼쳤다.

TV도 없는 집에서 무료한 시간엔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여성 잡지까지 몇 번을 정독하다 보니,

이젠 딸기잼 만드는 법까지 눈에 익었다.


우물에서 막 길어온 차가운 물에 딸기를 담갔다.

둥둥 뜬 딸기는 포동포동했다.

반투명한 과육 속까지 새빨간 딸기들이,

살짝만 건드려도 톡 하고 터질 것 같았다.


조심스레 뽀득뽀득 씻고,

연둣빛 꼭지를 하나하나 똑 떼어냈다.

다듬은 딸기를 냄비에 가득 담고,

물을 반쯤 채워 곤로에 올렸다.


그리고 따로 접시에 담은 딸기를 들고 누나에게 갔다.


“누나 딸기 좀 드세요.”


“딸기 사주려고 늦은 거야? 고마워.”

힘은 없어 보여도 누나는 밝게 웃었다.


“아니 이거 말고… 누나 제가 딸기잼 만들고 있어요. 헤헤.”


“딸기잼? 네가 어떻게?”


“책에 만드는 법 나와 있어요. 그대로 하면 돼요. 조금만 기다려요.”


명화는 부엌으로 돌아가는 정호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물이 끓자 딸기가 흐물흐물해졌고,

국물이 붉게 우러나왔다.

그는 설탕을 부어 넣고,

불을 줄인 채 천천히 저었다.

거짓말처럼, 점점 잼처럼 걸쭉해지기 시작했다.


불을 끄고, 수저로 떠 식혀 맛을 봤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웃었다.

정확히 계량할 순 없었지만,

흑백사진을 보며 눈대중으로 따라 했을 뿐인데도

맛있는 잼이 만들어졌다.


식힌 잼은 설탕이 담겨 있던 맥심 유리병에 담았다.

양은쟁반 위에 접시와 수저, 유리잔을 올리고

식빵 봉지, 우유, 그리고 딸기잼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무화과나무를 보던 명화는

쟁반을 들고 자신을 향해 오는 정호를 바라보았다.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누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무엇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웃음이었다.






5월의 마지막 일요일, 아주 이른 아침.

종고산 오른편에서 막 떠오른 햇살이

마당의 무화과나무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무딘 윤곽의 잎 그림자가 누나의 방문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이른 시간부터 마당에는 어른들이 모여 있었다.

누나방의 미닫이문이 조용히 열렸다.


삼베에 싸인 명화의 시신이 들것에 실려 나오고 있었다.

마치 모든 생명력이 빠져나간 듯, 명화는 훨씬 더 작아 보였다.


“명화야… 내 새끼야… 널 보내고 어떻게 살아… 안 된다, 가지 마라… 으흐흐흐…””


명화엄마는 누워 있는 명화를 껴안으며 몸부림쳤다.

운구를 하던 어른 넷은 들것의 손잡이 네 귀퉁이를 낮게 쥔 채, 마당 한가운데 잠시 멈췄다.


“여보, 그만 울어… 우리 명화 좋은 데 가야지. 보내줘야지…”


명화아빠는 명화엄마를 딸에게서 부드럽게 떼어냈다.


“내 딸 명화야… 하늘 가서 밝게 피거라.

내 금방 쫓아가마”


그는 명화엄마를 오른팔로 껴안고, 왼손을 명화의 가슴에 얹었다.

울지 않았지만, 뒤틀린 채 굽은 그의 왼손은 딸을 쓰다듬으며 서럽게 떨고 있었다.



정호는 무화과나무 뒤에 숨어 어찌할 바 없이 울고 있었다.

대문을 나서는 누나를 보며, 그는 기도했다.

명화누나를 감싸고 있는 삼베 안으로,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꽃들이 피어 있기를.




무화과02.jpg





지나온 시간 속, 마음 깊은 이야기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합니다.

매일의 삶, 지나온 기억, 그리고 작고 소중한 온기들.

이야기의 다음 장은 곧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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