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살아가기
세상에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주어진 업무를 해내고자 애쓰는 직장인, 하루 목표한 공부량을 채우기 위해서 졸음을 견뎌가는 학생 등 다양한 모습들로 존재하지요. 이들은 크고 작은 시련들과 부딪치면서도 '해내야 하는 것'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임을 다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겉보기에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왜 해내야만 하는가?'의 대답에 차이가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원해서' 책임을 다합니다. 본인에게 주어진 책임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며 적지 않은 성취감을 얻습니다. 이렇게 하루의 성취감들이 차곡차곡 쌓아가며 스스로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굳건한 형태로 만들어갑니다.
반면 '남들이 원해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원한 일이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미안해서 혹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주어진 일들을 해나갑니다. 본인을 위해 고생하는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에 열심히 공부를 해야만 하는 아이가 대표적입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부모의 기대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느끼는 겁니다. 부모가 원하는 성적을 얻고,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과정은 결국 자신의 삶이 아닌 ‘남의 삶’이 됩니다.
하지만 내가 원해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과는 겉으로 보기엔 이들도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하지요. 하지만 내가 원해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과는 달리, 남이 원해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만들어낸 성취가 진짜 성취감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성취를 얻어냈다고 해서 반드시 진실된 성취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본인이 아닌 부모가 원해서 노력을 하고, 그렇게 좋은 성적을 얻어낸다고 한들 진짜 성취감은 부모의 것이 됩니다. 다소 강하게 표현하자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남이 벌어가는 상황과도 비슷합니다. 성취를 이뤄낸 사람과 진짜 성취감을 얻는 사람은 다르니까요.
물론 노력한 사람에게 아무런 보상이 없는 건 아닙니다. 비록 내가 원하지 않은 일이었더라도, 누군가가 나의 성과를 기뻐하며 칭찬해 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내가 이렇게 대단한 것을 해냈구나'라고 스스로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칭찬으로 가짜 성취감을 느낄 수는 있게 됩니다.
스스로를 인정하는 진짜 성취감이 아닌,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가짜 성취감은 본인의 내면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성취감과는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가짜 성취감에 중독된 사람은 늘 나를 칭찬해 주고 인정해 줄 사람을 찾게 됩니다. 그런 대상을 자기대상(self-object)라고도 하는데요, 자기 대상이 없으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공허감에 빠지게 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까지 삶의 목표가 주변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으니, 주변 사람들이 없어지면 삶의 목표가 사라집니다. 삶이 목표가 사라지면 나의 삶도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삶은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갈구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겠지요.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진실된 성취감에 기반한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변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일이 생겨도, 혹은 내가 살다가 실패하는 일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나의 삶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지 않고, 내가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수용하고 인정하고 싶어합니다. 누군가의 자녀, 부모, 친구가 아니라 ‘그냥 나’로서 존재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에게 있지요. 물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라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수능에서 고르게 점수를 받기 위해 싫은 과목도 공부하듯, 삶의 균형적인 행복을 위해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할 때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만 반복되어 나를 위한 삶에서 멀어지게 된다면, 그 삶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며 결국 공허하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겠고, 삶이 공허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마음이 '제발 나답게 살아가라'라고 우리에게 보내는 위험 신호와도 같습니다. 나답게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은 분명 어려운 과정입니다. 어쩌면 평생 정답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답을 찾지 못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행복에 가까워지는 열쇠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삶의 공허함이 우리에게 보내는 진짜 메시지를 찾아가며 보다 나를 위해, 보다 나답게, 보다 힘차게 살아가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