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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챠 WATCHA Aug 04. 2020

내가 받은 택배가 너에게는 독배

웨이스트 랜드(2010)



재택근무 날, 종일 집을 지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된다. 창문 밖 계속 들려오는 모터 소리. 새벽부터 밤까지 택배 배송 차량과 배달 음식 오토바이가 분주히 아파트를 들락거린다.


“내가 받은 택배가 너에게는 독배”


문득 작년에 참여했던 ‘쓰레기와 동물과 시’ 행사에서 한 시민 참가자가 쓰레기를 주제로 지은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땐 플라스틱이 이슈였던 시기라, 아마도 시인은 바다거북의 코에 꽂힌 플라스틱 빨대를 생각하며 시를 썼을 것이다.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세상은 더 살기 나빠졌다. 이제 우리는 안전하기 위해 택배를 주문한다. 언택트 세상에서 택배가 더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사이 쓰레기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는 갈 곳을 잃었다. 처리 능력을 벗어난 양에 업체들이 수거를 거부하거나 미루는 사태가 왕왕 생긴다. 관리인이 쓰레기를 정리하느라 분주하고, 주택 곳곳엔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고 잘 정리해 버리라는 안내 문구가 보인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예전과 달리, 더럽고 냄새나는 추한 것이 곳곳에 쌓인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쓰레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데, 팬데믹이라는 재난 상황이 닥치자 쓰레기가 자꾸 눈에 띄고, 가정에서 배출하기 불편해졌다. 이제 우리는 쓰레기를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몰렸다.


사실 보이지 않았을 뿐, 쓰레기는 계속 우리 주변에 존재했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쓰레기를 수거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이 작동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가 잠든 사이, 쓰레기 처리 산업은 은밀히 움직인다. 주택가에서 뚜껑 닫힌 트럭에 실려 집하장이나 매립지로 이동한다. 시민들은 우연히 밤늦게 집에 들어오거나, 새벽녘 일찍 집을 나설 때 정도 우연히 그들을 마주친다. 한데 분리수거를 위해 업체로 간 쓰레기들도 상당수 재활용할 수 없는 재질이거나 안 좋은 상태라 결국 매립지가 최종 목적지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모인 쓰레기들은 산을 이룬다. 


거대한 쓰레기 산이 전국 곳곳, 세계 도처에서 서서히 융기한다. 인도 델리 인근의 한 매립지는 타지마할보다 높다. 나는 인류세(人類世)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수도권 매립지, 의성 쓰레기 산, 인도네시아와 인도의 매립지 등 많은 쓰레기 산을 다녔다. 어디든 규모가 엄청났다. 적게는 수백만 명, 많게는 천만 명이 넘는 도시인들이 뱉어내는 쓰레기가 형성한 산은 스펙터클, 그 자체다. 메탄가스에 불이 붙어 연기가 피어나는 쓰레기 산이 많았는데, 영화 속 화성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돈이 되는 쓰레기를 줍고, 분리해 되파는 사람들을 피커(picker)라고 부른다. 다큐멘터리 <웨이스트 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쓰레기 매립지 중 하나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쓰레기 매립지 그라마초에서 살아가는 피커들의 삶을 다뤘다. 


성공한 예술가 빅 무니즈가 새 작품을 위해 그라마초를 찾고 피커들과 함께 쓰레기를 오브제로 활용해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 년을 99분의 러닝타임에 눌러 담았다. 낯선 외부인을 경계하던 피커들은 시간이 지나자 본인들의 순박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자꾸 감추려 하는 추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맑고 깨끗하다. 쓰레기 매립지의 스펙터클과 대비되는 피커들의 소박한 웃음은 이 작품의 감동 포인트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는다. 일종의 죄책감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가 저곳에 모인다는 사실. 편하게 잠깐 사용하고 휙 버린 작은 것들이 저기에 모여 거대한 산을 형성한다는 시각적 충격. 저 멀리 브라질 매립지 피커의 삶과 서울에서의 내 일상이 분리돼있지 않다는 정서적 연결감 등이 뒤섞여 그럴 것이다. 다른 콘텐츠처럼 잔인한 장면이나 맥락 없는 전개, 노골적인 PPL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쓰레기 매립지를 99분 동안 마주하면 불편하다. 쓰레기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다.


다큐멘터리에 나오진 않지만, 더욱 슬픈 건 분리수거가 생각보다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담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면서 소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덜어낸다. 시민으로서 할 도리를 다했으니 이제 시스템이 뒤처리를 해주면 된다는 믿음. 


환경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오며 내가 알게 된 것은 시스템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쓰레기는 대부분 쓰레기일 뿐이다. 분리수거함에 열심히 분리해도 다음 단계에서 돈이 되지 않는 소재들은 그냥 버려진다. 무엇보다 요동치는 국제 유가, 중국 정부의 쓰레기 수입 금지 결단, 코로나로 인한 물류 규제 등 시시각각 발생하는 다양한 경제적, 정치적 변인에 쓰레기 산업은 대응할 능력이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지속 가능성’ 보다는 끊임없는 소비를 통한 성장을 우선시한다.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다.


가림막을 한 꺼풀 벗겨내고 보면, 우리는 모두 웨이스트 랜드에서 살아가고 있다.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된 쓰레기가 평택항으로 되돌아오고, 태평양 한복판에 떠다니는 한반도 8배 크기의 거대 쓰레기 지대(GPGP)는 점점 커지고 있으며, 육지 곳곳엔 쓰레기 산이 솟는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쏘아 올린 화살로 그간 안 보이고 쉬쉬하던 것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애당초 77억 인구가 마음껏 편리하게 쓰고 배출한 것들이 문제없이 잘 처리될 것이란 것 자체가 순진한 환상이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잘 몰랐던 세계, 애써 외면했던 세상. 그곳이 바로 웨이스트 랜드다.



웨이스트 랜드, 지금 보러 갈까요?


최평순 / EBS PD


환경·생태 전문 PD입니다. KAIST 인류세 연구센터 연구원이고,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등 연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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