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3일부터다. 그 전에도 글쓰기로 마음먹은 시각-오후 3시마다 휴대폰의 알람은 울렸지만 쓰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다가 나는 마지막으로 쥐고 있던 푼돈을 던지며 이거라도 가져가라, 더는 나를 괴롭히지 말라는 심정으로 서너 번 썼을 뿐이다. 방학을 하자마자 나는 글쓰기를 향한 내 주먹에 비장한 마음으로 붕대를 감았다. 이날부터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썼다. 매일 글을 쓰고 나면 매일 다른 상대를 때려눕힌 듯 기뻤다. 빚쟁이는 쫓아오지 않았고 나는 두 주먹을 쥐고 늘 펀치 준비 자세를 하며 달력의 날짜를 걸어갔다.
문제는 상대였다. 상대가 없으면 어떻게든 상대를 찾아내 내 앞에 끌어다 놨다. 겨우 나타난 상대를 내 방식대로 마구 두들겨 팼다. 규칙도 순서도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다. 때려눕히면 끝이니까. 그리고 나는 내 갈 길 가면 되니까. 24시간에 적어도 하나씩만 나타나라.
한 달이 넘었다. 뒤돌아보니 내가 지나온 곳곳에 널 부러져 부패한 시체만 가득했다. 냄새가 심했다. 나는 정신이 들었다. 나는 가해자였다.
한 달간 쓴 글은 고스란히 남았지만 상한 냄새가 난다. 내 죄를 사하려면 퇴고의 심폐소생술을 미친 듯이 해야 하지만 다시 읽기가 무섭다. 예의도 순서도, 규칙도 없는 무자비한 글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문제는 피해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도망쳤다가는 나는 영영 피해자의 환영에 시달리리라.
한 달 동안 여러 책을 읽었다. ‘김훈’의 문장은 호흡을 멈추지 않았고 ‘은유’의 글은 오랜 숙성을 거친 장맛이 났다. ‘김애란’이 만든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였고 ‘김영하’의 소설은 글 읽는 속도를 끝도 없이 더디게 했다. 그들의 글에서는 때려눕히는 폭력 따위는 없었다. 작가는 삶을 글로 옮기는 자동 필터였다. 작가 고유의 촘촘한 필터링을 통과한 글은 무식해서 용감한 나에게 제발 털끝만큼이라도 유식해져서 고개를 숙이라고 말했다.
주먹으로 글을 쓴 나는 너덜너덜한 내 글과 마주해야 한다. 어제저녁에 장애인이 나오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갑자기 내 글이 생각이 났다. 지나간 글에 구렁이 담 넘어가는 은밀한 글자가 있었다. 나는 급하게 글자를 지웠다. 다시 넣을 글자는 도저히 생각이 안 나서 내버려 뒀다. 나는 작가가 아니니 필터가 없고, 필터가 없으니 글자를 넣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은밀한 폭력보다는 어색한 공백이 낫다며 위안했다. 씁쓸하다가 쓸쓸했다.
글을 쓰라고 부탁하거나 명령하는 책을 읽었다. 친절하게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봤고,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책도 봤다. 논리적으로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 작가가 된 그들은 글쓰기를 통한 성장과 치유의 간증을 했다. 그래도 나는 두렵다. 무식해서 용감한 주먹을 휘두를까 봐 겁이 난다. 글쓰기에 소심해진다.
네가 뭐 대단한 작가라고 글쓰기로 성장이나 치유처럼 거창한 목표까지 말하느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다. 네 글은 너나 읽지, 읽는 사람 없다고 조롱해도 할 수 없다. 맞는 말이다. 매일 글 쓴다고 누가 꼬박꼬박 읽거나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글이 쓰고 싶다. 내 이야기가 하고 싶다.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내 지문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을 관조하고 생각의 정교한 필터를 거쳐 숙성된 나만의 문체로 글을 쓰고 싶다. 무례한 폭력은 결코 없는, 견고한 편견을 살짝 흔들어 깨우는 감각적인 터치로 글을 쓰고 싶다.
자식은 나를 빼닮았어도 또 다른 인격체지만(하긴 난자로만 자식을 만들지 못하니) 글은 그렇지 않다. 고통으로 나에게 분리되어 세상에 뚝 떨어져도 글은 나다. 글로 존재하는 나의 인격이다. 종족번식처럼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은 나에게 본능이다. 나는 밥 먹듯 글을 쓰고 싶다. 쉬지 않고 글을 쓴 한 달은 내 폭력성을 검증하고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무식해서 용감한 나의 필터를 확인하는 뼈아픈 시간이었다. 앞선 작가의 글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시간이었고 글을 향한 내 본능을 알아차리는 시간이었다.
주먹뿐만 아니라 온 몸에 힘이 들어간 글을 쓰더라도 나는 쉬지 않겠다. 어느 작가도 태어나면서부터 작가가 아니듯 생각과 글이 발효될 때까지 기다리겠다. 포기하지 않겠다. 쫓기지도, 쫓아가지도 않겠다. 나는 그냥 글을 쓰겠다.
재능 없음을 인정하니 마음이 편하다. 글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니 용기가 생긴다.
부족한 나 같은 글과 매번 맞닥뜨려도 나는 안정된 자세로 퇴고를 반복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