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괜찮아질 거예요
바이올린이나 첼로 연주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왼손가락이 지판을 강하게 내려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둔탁한 그 소리는 음높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 현악기는 소리를 낼 때 왼손가락 끝으로 음정을 정확하게 짚어야만 하는데 영점 일 센티미터라도 그 위치가 어긋나면 음악이 영 이상해진다. 거기다가 현은 켜다보면 느슨해져서 정확하게 짚더라도 음정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귀가 보통 예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음정을 듣는 귀도 희한하게 습도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날은 칼날같이 잘 들리지만 어떤 날은 어디가 틀렸는지 좀체 알 수 없는 날도 있다. 그런 점에서 연주자가 왼손가락을 자신감 있게 내려치는 그 소리는 엄청난 연습의 결과이다. 손끝이 짚는 위치에 확신이 1%만 부족해도 그 소리는 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러다 보면 실수하기 전보다 더 성장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노력마저도 틀렸을까 봐 겁내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인지 생각할수록 원인 규명은커녕 우울해질 뿐이다. 정확한 음정을 연주하기 위해 악보를 분석하고, 연주자의 연주를 여러 번 들어도 엉뚱한 곳을 짚을까 봐, 그래서 음악이 우스워질까 봐 손가락이 잘 놓아지지 않는다. 현이 느슨해졌을까 봐 다시 튜닝해도 내 귀를 믿을 수가 없다.
증상을 묻는 한의사 앞에서 말했다.
“가만있어도 눈물이 나고, 심장이 자주 크게 뛰어요. 잠이 안 오고 음식이 잘 안 넘어가요. 머리가 예전처럼 안 돌아가고 두통이 계속 있어요. 누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 말이 틀렸을까 봐 말하고 나서 계속 생각을 해요. 전화가 무서워요. 나를 아는 사람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아요. 어찌 됐든 겨우 일을 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종종 살이 떨리게 추워요.”
내 말을 듣고 있던 의사는 아무 대답 없이 휴지만 한 장 건넬 뿐이었다. 나는 또 내 말이 틀렸는지 덜컥 겁이 났다. 한의사는 조용히 맥을 짚더니 긴 시간 동안 온몸에 침을 많이 놓았다. 그러고는, “3일분 약을 드릴게요. 증상이 심하면 내일도 오세요. 힘들어도 수면제나 안정제는 먹지 마세요. 다 괜찮아질 거예요.”
나는 좋은 바이올린이 갖고 싶었다. 아버지는 나를 앞세우고 당연하게 악기점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주인에게 내가 쓸만한 바이올린을 보여달라 했다. 주인이 꺼낸 개나리 빛의 바이올린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반해버렸다. 주인은 나에게 악기 소리를 한번 내보라고 했다. 나는 개방현(현악기로 음을 낼 때, 손가락으로 누르지 않고 제 음을 내는 현)만 수줍게 그을 뿐 짧은 곡도 연주하지 못했다. 고가의 물건인데도 아버지는 오래 흥정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노란 바이올린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 바이올린의 검은 지판이 손가락 땀에 젖을 때도 있었다. 지판은 손끝의 잦은 마찰과 끈적한 송진 가루로 색이 바랬다. 물론 자주 틀렸지만 아주 가끔은 나도 그런 소리를 냈다. 왼손 끝이 1%의 의심 없이 지판을 탁! 내려치는 그 소리를 말이다.
오랜만에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었다. 봉인된 유물처럼 잠들어 있던 바이올린을 꺼냈다. 시간을 견디느라 힘들었는지 3번 줄이 끊어져 있었다. 남은 줄을 손가락을 살짝 튕기니 원래 음높이보다 말도 안 되게 낮은 소리가 났다. 내 눈은 당연히 지판에 멈췄다. 검정 지판의 1포지션과 3포지션 부분은 여전히 땀에 젖고 색이 바래져 약간 회색이었다. 나는 기특한 듯 낡은 바이올린을 쓰다듬었다.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는 그 소리의 존재를 낡은 지판이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약을 먹고 누워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을 들었다. 이어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도 들었다. 내가 엄청나게 연습하던 곡이다. 음악을 들으니 또 머리에서 두통이 진동이 느껴지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갑자기 춥더니 눈물이 쏟아진다. 병원은 효과가 없었다. 간절히 잠을 원하는 나는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연습실 안에 있는 내가 보인다. 나는 피아노 건반을 눌러 A 현을 맞추고, 완전 5도에 청력을 집중해 나머지 현을 튜닝하는 내가 있다. 나는 악보를 뚫어져라 보더니, 활을 잡고 서서히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잘 안 되는 부분은 더 천천히 연습한다. 같은 부분을 반복하다 보면 귀와 손에 점점 익는다. 나는 어느 순간 지판을 탁! 하고 내려친다. 나는 만족한 듯 다음 마디로 넘어간다.
연주자만이 들을 수 있는, 손가락이 지판을 탁 내려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서서히 잠이 든다. 새로 산 바이올린에 마냥 행복해하는 나를 보는 아버지의 순한 얼굴도 지나간다.
분명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덜 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