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끝까지 잘해줘야지

자신은 없어요

by 물지우개

마스크 너머로 뾰족한 눈빛을 보냈다. 그만 좀 떠들어라. 수업을 멈추고 나는 아이를 응시했다(맞다. 째려보지 않았다고 말 못 한다). 말은 하지 않았다. 좀 잠잠하더니 눈빛 받던 아이가 앞으로 툭 치고 나와서 말한다. 손가락이 아파요. 쳐다보니 왼손 넷째 손가락 끝이 조금 빨갛다.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영혼 없이 밴드를 붙여주었다. 다시 수업하고 있는데 손가락 만지작거리며 떠들던 그 애가 또 나온다. 밴드 떨어졌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뗄 거면서 왜 자꾸 붙여 달라 그래! 마이크를 낀 덕분에 온 교실에 생중계됐다. 아차, 민원 발생 가능 점수 1점 상승.


나는 지금부터 쉬는 시간이라 말하고 아이들에게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했다. 갑자기 한 아이가 쪼르르 나와 화장실 가도 되냐고 묻는다. 나는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또 다른 아이가 나와서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허락을 구한다. 나는 한숨 쉬고는 다른 곳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5분이 지나고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화장실 간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럴 때는 동영상이 최고다. 다행히 아이들이 자리에 앉았다. 나는 영상을 멈추고 수업을 시작했다. 이번 시간 수업은 잘해봐야지. 전시학습 점검하고 공부할 문제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려고 하니 또 아이가 나온다. 화장실 가도 되냐고. 나도 모르게 또 목소리가 커졌다. 나한테 말 안 해도 돼요, 제발 그냥 다녀오세요!! 아차차, 민원 발생 가능 점수 또 1점 상승.




출근하자마자 켠 내 컴퓨터 화면에는 교내 메신저 창부터 뜬다. 뜨자마자 날아오는 메시지. 똑같은 메시지가 벌써 며칠째다. 그래도 정독한다.


[6월 학교장 당부사항]

1. 학생 신체접촉 금지 및 체벌, 학대 절대 금지

2. 교사 품위유지, 부드러운 말투, 친절한 자세, 언행 조심

3. 정치 및 종교 관련 발언 신중, 중립 유지

4. 공무원 행동강령 준수

5. 복무 철저 : 출퇴근 시간 준수, 무단이석 금지

6. 학부모 민원 사전 예방 철저


아이를 때린 적 없다. 그러나 수업 시간 아이를 나무란 적은 있다. 아이가 느끼는 정도가 언어폭력이었다면 체벌과 학대겠지. 그 순간은 부드러운 말투일 수 없었고, 친절하지도 않았다. 정치에 관심 없고 종교도 없으니 3번은 넘어가고 4번은 나 같은 말단 공무원이 뇌물을 주고받거나 성범죄 가해자가 될 리 없으니 패스. 나는 일찍 등교하는 고객님 때문에 출근 시간보다 20~30분 먼저 도착하지만 5~10분 일찍 퇴근한 적, 더러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학부모 민원을 철저히 예방하지 못했다. 오늘만 해도 5점 이상 쌓았으니까.


전화나 메시지에서 어느 날 갑자기 공격형으로 돌변하는 학부모가 있어 나는 나에게 우호적인-내 수고를 치하하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내가 학급 밴드에 올린 글에 열성적 댓글과 ‘좋아요’를 누르는-학부모도 그 영원함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더 조심한다. 정확히 대칭되는 강도로 나를 언제든 힘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늘 학부모의 질문에 단답형 대답이다. 말이 길어지면 실수가 잦아진다. 통화는 부담스러우니 가능한 메시지로 산더미 같은 견해 다 생략하고 팩트만 전한다. 그나마 비추는 내 의견은 ‘잘하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정도다. 예를 들면 이렇다. ‘선생님, 오늘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울었다고 하던데 말을 안 해요. 무슨 일인지 알려 주세요.’라는 문자가 오면 나는 ‘네. 수업 시간에 갑자기 울더라고요. 우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연필이 없다더군요. 저는 어이가 없었어요. 제가 지금 1학년이 네 번째인데 자기 물건이 없다는 이유로 수업 시간에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우는 아이는 처음 봤습니다. 저는 00에게 연필 없으면 선생님이나 친구한테 조용히 빌려달라고 말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물건이 없다고 펑펑 우는 소리에 선생님과 친구들은 수업을 못 한다고요. 지나고 생각해보니 00가 아직 한글을 전혀 모르잖아요. 아주 쉬운 글자도 못 읽는 거 아시죠. 연필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글쓰기 싫어서 울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머니께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도 창피해 서라기보다는 학교 어땠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울었다는 사실 말고는 기억이 안 나서 말 못 했을 거예요.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00는 또래 1학년보다 지적, 정서적으로 발달이 느린 편입니다.’라고 하고 싶었지만, 다발성 민원 포인트가 걱정되어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배운 모음을 쓰는데 연필이 없다고 울길래 제 연필 빌려주었습니다.’


학부모에게 감사하다거나 죄송하다는 말을 기대하지 않았다. 민원은 없었고 나는 스스로 칭찬했다. 그런데 나에게 시종일관 부드러운 말투나 친절한 자세를 유지했냐라고 되묻는다면? 맞습니다. 그렇지 못했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한숨 쉬었고, 유창한 경상도 사투리에 악센트를 넣었습니다.




인사할 때 마음가짐을 공부하다가 인사에서 인사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었다. 아이들은 역시 내 생각보다 똑똑해서 ‘진심, 표정, 말투, 몸짓’이라며 내 의도보다 더 멋지게 답했다. 배운 내용을 실천하듯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며 시키지도 않은 인사말, ‘선생님 주말 잘 보내세요!’라며 눈웃음을 짓고 작은 손을 흔든다. 내 느낌에 그들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런 말이 읽혔다. ‘선생님, 제발 주말 동안 푹 쉬고 월요일부터는 많이 웃어 주세요. 품위 있게 부드럽고 친절해 주세요.’ 오전 내내 아이들에게 시달려 표정 관리가 버거운 시간대지만 나도 의지를 다지듯 마스크를 내리고 온 얼굴로 웃으며 양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자신없는 다짐, 월요일에는 말이야.

아침부터 헤어질 때까지 잘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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