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꽃을 좋아해요

by 물지우개

나는 꽃을 좋아해요. 세상 모든 꽃을요. 싫어하는 꽃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나는 모든 꽃을 좋아하는 것이 틀림없어요.


꽃이 되려고 몸 구석구석의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모습이 기특해서요. 안쓰럽기도 하고요. 저리 애쓰는데 나라도 예뻐해 줘야지 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물론 게발선인장 꽃이나 송엽국 꽃은 아무래도 촌스럽거나 징그럽지만, 그 또한 기특함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들을 꽃집에서 사기도 했으니까요.


꽃을 피우기 위해 기운을 끌어올리는 모습, 번식을 위한 처절한 노력,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힘겨운 버팀이 눈물겨워요. 나는 기특해서 쳐다보다가 슬퍼 눈을 감아요. 너무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꽃이 가진 특유의 우울에 빠질까 봐요. 사실 꽃은 너무 아프거든요. 역설적이지만 꽃은 고통 속이라 아름다워요.


꽃은 이미 알고 있어요. 낙화 후 흉측해질 자기 모습을. 그 어느 꽃도 지고 나서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꽃은 없어요. 꽃잎이 마르고 색이 거무튀튀해지고 쪼그라들다 쪼그라들다 결국 힘없이 툭 떨어지는 꽃은 한 줌의 공기처럼 가벼워져 흔적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죠. 아름다웠으면 뭐 하나요. 떨어지면 보잘것없는 나뭇잎과 다르지 않은걸요. 어쩌면 더 추할지도 모르죠. 고단백 음식이 더 잘 상하고, 부패하면 냄새도 심하잖아요. 그런데도 꽃은 낙화하는 순간까지 걱정할 여유가 없어요. 아마 화려한 불꽃도 같지 않을까요. 타고난 후 떨어져 사라질 자신의 모습을. 그건 그냥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구름이 하늘을 떠다니는 모습이죠. 어쩔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는 뜻이에요. 처절한 이별의 순간을 미리 염려하지 않는 꽃이라 나는 좋아요.




꽃이라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지금은 꽃이라 말하지 못해도 사람은 누구나 꽃이었고, 앞으로 꽃이 되겠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노랫말이 있지만 저는 그건 좀 지나친 비약 같다고 생각해요. 딱 꽃만큼, 저 풀 속에 이름 모르는 작은 꽃만큼만 이라면, 자신이 꽃이라는 깨달음을 안다면 얼마나 축복인지. 누구나 꽃이 될 수 있지만, 사람 대부분은 자신이 꽃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거나, 꽃만큼 아름답고 처절하게 꼿꼿이 견뎌 본 경험 드물 거예요.


그래서 저는 꽃이냐고요? 그 질문을 받고 잠시 한숨 고른 뒤 창밖으로 산을 봤어요. 시선이 산 능선을 따라가다 능선에 걸린 흰 구름에 잠시 멈추었어요. 다시 움직이는 구름을 따라 눈을 몇 번 깜빡이니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한 장면이 떠올랐죠. 그해, 그때 저는 자전거를 타다 길이 좋지 않아서 끌고 가고 있었어요. 그 길은 주변이 온통 논이었고 마침 가을이라 누렇게 벼가 익어 바람이 불면 벼가 물결치며 쏴아 하고 파도 소리를 내던 때였거든요. 저는 빨간색 맨투맨 티셔츠와 밑단을 접어 올린 청바지를 입고 있었어요. 바지를 사면 작은 키 덕분에 바지가 늘 길었거든요. 고등학생처럼 짧은 단발머리였는데 뒤집히는 머리끝이 보기 싫어 그날은 아침에 정성껏 드라이를 넣었어요. 봉긋해진 머리끝이 힘없이 쳐질까 봐 향긋한 헤어크림까지 발랐다고요. 화장은 할 줄도 몰라 그럴듯한 화장품도 없었고, 겨우 바른 것이 비비크림이었어요. 다듬지 않아 제멋대로 자란 눈썹이 밉지 않았고, 원래 입술이 붉은 편이라 립스틱은 바르지 않았어요. 무심코 눌러보는 따르릉따르릉 자전거 소리,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콧노래, 그리고 가을바람과 냄새까지. 떠올리기만 해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그땐 얼마나 예뻤을까요. 그때 그는 갑자기 다가와 나에게 입을 맞추었어요. 지금 입 맞추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었어요. 내가 놀랐는지 반응을 살피고는 한 번 더 길게 입을 맞추고 그는 살짝 웃었어요. ‘이 모든 건 네가 너무 예쁘기 때문이야, 꽃 같은 너를 보며 나는 참을 수 없었어.’라는 표정을 짓더니 자전거를 끌고 내 옆을 지나갔어요. 나는 잠시 정지한 듯 가만히 있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가던 길을 갔죠. 나는 괜히 부끄러워서 왼쪽 오른쪽 돌아봤어요.


그 시절 나는 세상이 궁금해서 온통 알고 싶었어요. 사람이 무섭지 않았고, 외로우면 외롭다고 말했어요. 가끔 밤에 잠들지 못했지만, 시를 읽고 쓸 수 있어 괜찮았죠. 섬뜩한 순간도 가볍게 넘길 수 있었어요. 거짓말이 얼굴에 드러났고,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죠. 강아지처럼 발랄하게 뛰어다녔고 넘어져도 웃으며 일어났어요. 날씨에 따라 음정이 달리 들렸고 바이올린과 습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피아노 뚜껑을 덮고 잠들었고 그러다 눈을 떠서 피아노를 치며 푸른 하늘의 노래를 불렀어요.


분명 작은 들국화였을 거예요. 운전하다가 잠시 고개를 돌리면 산에 드문드문 보이는 노란 무리나 빨간 무리 중 한 송이 꽃이었을 거예요. 안타깝지만 저는 그때 제가 꽃인 줄 몰랐어요. 꽃을 오래 견뎌내지 못했어요. 나는 그를 떠났고, 그도 기다렸다는 듯 떠났으니까요. 순식간이라 나는 내가 꽃인 줄도 몰랐어요. 이후 꽃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생각할 수 없었어요. 나는 꽃일 수가 없었죠. 꽃은 완벽한 타인이 되어 물끄러미 가끔은 애틋하게, 더러 아프게 바라보는 존재일 뿐이었어요.


꽃 같은 때가 다시 올까요. 꽃이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알아챌 수 있을까요. 꽃이 우울함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생애 가장 예쁜 순간인 꽃이 될 수 있을까요. 순간 나를 알아보고 꽃을 보듯 나를 보는 이를 만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오늘은 가장 슬픈 꽃을 사야겠어요. 꽃이 되느라 꽃인 줄도 모르는 꽃에게 너는 꽃이야. 네가 가장 예뻤을 때는 바로 이 순간이라고 그 어리석은 꽃을 나는 가만히 안아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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