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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물방울 Nov 13. 2019

병식(病識)

이소라 '바람이 분다' 듣고, 쓴 에세이

https://youtu.be/mRWxGCDBRNY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 참고: 병식이란, 현재 병에 걸려 있다는 환자 스스로의 깨달음을 말하는 말이다. 정신장애와 관련된 병일 때, 병식은 중요한 깨달음이며, 치료의 시작이다. 



이별을 뚜렷이 실감하진 못했다. 비몽사몽 약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학교에 힘겼게 다녀오고, 작은 일과 큰 일을 화장실에서 보는 등 일상생활을 하면할수록 허상의 세계에 갇혔던 내가 뚜렷이 떠올랐다. 내가 아팠고, 많은 부분이 망상이었다는 걸 깨달은 건 아마 2011년 겨울 두번째 입원 이후였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를 들었다. 마음 절절한 슬픔을 온전히 드러낼수 있는 이별을 생각해봤다. 고민들이 빙빙돌다 그 때가 생각났다. 허상에 속했던 나와의 이별을 때.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이 나의 병 때문이었다는걸 인정했던 그 모호했던 시간의 과정이 참 아팠다. 마음 저렸다. 망상일지 사실일지 모른 착각은 우연히 읽게 된 성경에서 비롯되었다. 그 책은 신비로웠다. 나는 무언지 모를 영으로부터  사로잡힌 기분이었고, 이내 세상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영적 깨달음 같은 거였다. 그 뒤 난, 나의 방에서 홀로 마음 아픈 눈물을 흘린 때가 많았다. 수많은 나의 간절한 기도가 과연 하늘에 닿았을까? 



지금은 비교적 정상이다. 하지만, 내가 아팠을 때 가졌던 생각들을 꼬낏꼬낏 접어 내 기억 깊숙히 넣어두었다. 망상에서 비롯된 이상행동들 때문에, 친구로부터 싸이월드 일촌도 끊겼고, 대학원에서 제적당할 뻔했고, 교회에서 더 이상 청년부에 나오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 모든 사건들을 외부 탓을 했었다. 나에게 착오가 있었다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과거의 나와 이별을 겪었다. 잘가라는 인사도 없이 불현듯 일어난  헤어짐이었다. 스며들듯 일어난 과정이었고, 약에 취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병식', 내가 병에 걸렸다는 자각이었다. 



해가 뜨고, 지는 세상은 똑같이 보였다. 사람들은 바빠 보였고, 차들은 도로위를 쌩쌩달렸다. 하지만, 그 순간 나의 세계는 분명히 달라졌다. 세상의 구원을 간절이 바랐던 내 소원이 허공에 사라질 기도였다는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온 마음 다했던 소원 뒤에 숨겨졌던 비밀을 알았다. 바로 사람들의 뒷모습은 시리도록 차가웠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제서야 꼬깃꼬깃 접어둔 나의 기억들을 하나씩 펼쳐본다. 아프기에 조심스레 열어본다. 많은 부분은 미지의 부분이지만, 쓸모없는 일이지도 모르지만 분류를 해본다. 망상과 생각의 차이를 조용히 구별해본다.



지금도 악몽을 꾼다. 꿈에서 난 여전히 과거의 망상에 사로잡혀있다. '세상의 끝'에서 누군가로부터 쫒기는 꿈이다.  무의식은 아직도 이별을 실감하지 못하나보다. 잠에서 깨면, 하나씩 되짚는다. 여긴, 침대구나, 삼동집이구나, 나 결혼했구나, 아! 꿈이었구나. 그렇게 만져지는 현실을 하나씩 되짚어본다. 이내 이별한 과거로부터 '나는' 꺼내진다.


이 맘 때였을 것이다. 그 경계는 모호하지만,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때 말이다. 아팠던 나와 이별을 선언했던 시간말이다. 내가 소위 '미쳤었다'는 것을 인정했던 때. 정신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던 때. 인생의 운전대를 모두 내려놓았던 때. 아픈 나와의 이별을 선언했던 때. 그때처럼 시린 겨울의 바람이 볼에 스치운다. 마음이 참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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