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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물방울 Feb 18. 2020

응급 아닌 응급상황

잠깐만요, 그거 아시나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자살시도 또는 자해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에도 가장 위급한 상황으로 간주하고, 치료합니다. 이번 글은 작년에 제가 심한 조증에 빠지기 직전인, 경조증에 응급실을 다녀온 경험을 썼습니다. 정신적으로 극도로 힘든 경우에도 응급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2019년은 조울증을 겪는 나에게 격변의 한 해였다. 조울증은 ‘조증’과 ‘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증상이다. 조증은 기분이 들뜬상태가 되어, 모든 것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도파민이 정상보다 많이 분출되어, 심해지면 현실감각이 없어진다. 타인이 보기에 환자가 심하게 이상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할 것 같이 보인다. 울증의 경우 자신감이 없고, 평소에 거뜬히 할 수 있는 일들도 어렵게 느껴지는 기간이다. 경우에 따라, 조증이 심한 조울증과 울증이 심한 조울증으로 나뉜다.


기분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조울증_사진출처:픽사베이


 난 작년 울증과 조증의 롤러코스트를 두 번이나 탔다. 오늘은 그중 대응을 참 잘했던 에피소드를 공유하려고 한다. 작년 10월에 겪은 일이다.


 평소에 글을 꾸준히 쓰는 나는, 한 커뮤니티의 글쓰기 합평 시간에 때아닌 눈물을 흘리며 참여했다. 말이 어눌해지고, 평소보다 훨씬 둔해진 사고 회로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글도 잘 안 써졌다. 설마 했던 우울증이 온 것이었다. 나의 경우 ‘조증’이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에 울증은 견디려고 애쓴다. 나 스스로를 해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경우라 일상생활에 약간의 지장은 있고, 스스로 힘듬을 겪지만, 위험할 정도의 수준까지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증의 경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나는 조증이 오면 거의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다는 망상을 가지게 된다. 호르몬의 작용 때문인 것 같다. 


 이번에는 울증이 살짝 온 뒤에 밧줄을 타는 듯한 느낌의 '경조증'(경미한 조증으로 심한 조증이 오기 전의 증상)이 왔다.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신랑이 해야 할 일이 있어 자리에 앉아있으라고 부탁했지만, 난 그 잠깐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근처 마트에 가서 돌아다니다 들어왔다. 신랑도 나의 불안정함을 눈치채고 있었다. 잠시 후 친정집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랑에게 큰 결심을 한 듯 말했다.


나 지금 좀 위험한 것 같아.
하루만 잠을 못하면 바로 조증으로 변할 것 같아. 병원 갈까?

 신랑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상태가 위험하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기에, 내가 스스로 병원에 가자고 하는 상황이기에, 더욱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실제로 조증이 오면, 스스로 병에 대한 인지가 없어지고,  병원에 가는 걸 극도로 꺼려한다.) 그때 시간이 밤 8시 정도였고, 금요일이었다. 외래는 불가능했기에 우리는 응급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조증이란 쓰나미가 오기 전 찾은 응급실_출처:픽사베이


 온몸이 멀쩡한 상태로 응급실에 갔다. 사실 접수할 때부터 기다리는 사이, 대응하는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우리는 나름 마음이 상황이었다. 지난 4월 달에 맞이했던 조증이랑 큰 풍랑이 우리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증 들이닥치면, 쓰나미가 휩쓸고 나간 듯이 내 정신이 초토화된다. 진정시키기 위해 많은 약을 먹어야 하고, 그리고 다시 정상생활까지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살도 5kg 이상은 거뜬히 찐다. 진짜 최악 중에 최악을 맞이해야 한다.  거친 풍랑인 조증을 대비하기 위해, 비교적 일찍 병원을 찾았다.


 응급실을 찾으니 킥보드를 타다 이빨이 깨져서 온 사람, 교통사고가 났는지 피가 나는 사람 등 겉으로 정말 심각해 보이는 외상을 입은 분들도 많았다. 나는 그들 사이에 정말 멀쩡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나와 신랑은 이 상황이 결코 정상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나의 정신적 상태가 외줄 타기를 경험하고 있다는 건,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내가 망상에 갇혀 행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응급실에서도 난 많이 기다려야 했다. 일반 의사 선생님이 아닌, 정신건강 병동에서 당직하고 계신 의사 선생님께서 나를 진료해주셔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꾸준히 진찰하신 주치의 분이 아니기에 차트의 기록을 꼼꼼히 보고 오셔야 하기에 시간이 더 걸렸다. 우리는 응급실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꽤나 긴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나나 신랑이나 이번에 병원을 찾을 걸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참 잘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조증은 그 증상이 단, 3~4일만 지속돼도 입원해야 한다. 그 정도로 심각한 병이다. 이미 3번의 입원 경험으로 그것을 알고 있기에 잠잠히 기다렸다.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내 이름을 호칭하셨고, 나는 응급실에 있는 진찰실에 들어가 면담을 하게 되었다. 지금 나의 기분상태가 어떤지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평소에 글을 꾸준히 쓰는데도 불구하고, 조증이라는 다른 일반 사람이 경험해보지 못한 기분을 표현하는 건 참 어려웠다. 고작 밧줄을 타는 듯이 조마조마한 느낌이라는 정도로 표현했다. 그동안 효과가 좋았던 약의 이름을 이야기하고, 그전에 우울증이 살짝 왔다가 지금 경조증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드디어, 난 위기를 잠재울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


조울증에는 약물치료가 중요하다_사진출처:픽사베이

 

 어느덧 밤 12시가 훌쩍 지났다. 손에 약봉투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쿨하게 야식을 먹었다. 배고프면 잠 안 오니까. 지금은 잘 자고 안정을 취하는 게 우선이니까. 그렇게 그렇게 지난 10월 조증이 올 뻔했으니 관리를 잘해서, 경조증 때 약물치료로 증상을 완화시켰다.


 (외부적으로) 응급상황이 아닌 (정신건강 측면에서) 응급인 상황을 잘 대응했기에 참으로 다행이었다.


큰 쓰나미를 겪지 않고 작은 파도를 잘 타서 잠잠하게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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