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명절에 해외여행 가다

by 작은물방울

며느리란 단어는 참 오묘하다. 2020년도 반이상 지난 시대에 살고 있는데도, 예전의 관습이 물씬 묻어있는 단어가 바로 며느리이다. 명절은 며느리들에게 있어서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큰 관문이다. 가족과 친척이 많을수록 그 무게는 무겁다. 회사 일을 하는 게 명절일(?)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명절 증후군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노동일 수 있다.


"우리 집은 명절 때 할 일이 많지 않아"


연애시절 지금의 신랑은 나에게 어필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 세상 물정 몰랐던 철없는 어린 시절에 이 말의 위력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네이버 카페에서의 게시물들을 보거나 여자인 친구들의 경험담을 들을 때면, 며느리라는 위치가 주는 중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결혼 전 신랑의 말은 사실 나에게 온 행운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는 2016년 가을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해외여행을 가야 마음속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시기였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여행에 고팠는지 모르겠지만, 긴 연휴가 나면 어떻게든 시간 내서 해외 가려고 발버둥 쳤다. 가을까지 바깥구경을 못한 나는 추석 연휴가 상당히 길다는 걸 알아냈고, 어떻게든 해외여행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며느리가 명절의 의무를 다하며, 황금연휴를 해외에서 알차게 보낼 방법은 없을까? 고민에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생각난 게, 바로 '함께 여행 가는 것'이었다. 말만 들어도 낭만적었다. 시댁과 함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같았다. 아들의 말이라면 거의 따라주시는 시부모님 덕에 우리의 여행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연휴의 기간이 토일 합쳐서 5일 정도 되었다. 우리는 비교적 거리가 가까운 동남아나 일본을 알아보았다. 여름쯔음 결정이 났기에, 자유여행으로는 계획 세우기 무리라고 판단했다. 또한, 어른들을 모시고 일정을 무리 없이 진행하기에는 자유여행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감히 패키지로 결정했다. 동남아는 비수기에 비해 2 배이상이 비쌌고, 그나마 일본이 바가지를 덜 쓰는 가격이었다. 그래서 일본으로 결정하고 일본 중 삿포로에 가기로 했다.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삿포로에 갔다. 가을날이라 하늘이 맑고 푸르렀다. 기분 또한 매우 좋았다.


맑은 하늘의 삿포로


삿포로에 예쁜 오르골 가게도 가고, 스타벅스도 가고, 길에 있는 큰 종도 울려보고, 민속촌 같은 곳도 갔다. 역시 여행을 가면 추억이 생기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 여행 중 보았던 불꽃놀이











일본 여행에서 빼놓을 수가 없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온천이다. 여탕과 남탕으로 나뉘어 있는 온천은 상황상 어머니와 함께 목욕을 해야 했다. 사실 부끄럽게 생각하면 끝도 없다. 통통한 내 몸을 어머니께 공개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대중목욕탕에 가도 여자끼리는 볼 수 있는데, 어머니는 더 괜찮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함께 온천에 가서 반신욕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목욕을 했던 게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꺼려하지 않고, 내 몸을 공개한 게 어머니에게 심리적으로 더 다가간 기분이었다고 말이다.


삿포로에 위치한 스타벅스


사실 이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무한리필 집 대게 집에서였다. 추석 연휴여서 그런지 여행 패키지에는 가족 손님이 많았다. 그 중 대학생 정도의 딸 둘에 부모님과 함께 온 가족이 있었다. 맛있게 대게를 먹는 와중에 그 가족의 딸 한 명이 나를 바라봤는데, 굉장히 부러운 눈빛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그 눈빛은 (나의 상상의 나래지만..) 시댁과 함께 명절에 여행을 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그런 뉘앙스를 느끼니, 시어머니, 시아버지 그리고 신랑에게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명절연휴를 통해 여행의 갈증을 완전히 해소했다. 회사일로 힘들었던 감정을 씻어냈다. 사실 시댁은 명절이면 시아버지, 시어머니, 신랑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모인다. 다른 친척들은 오지 않는다.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는 게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결혼 전에는 왁자지껄한 대가족 분위기의 명절을 지냈다. 결혼 후 첫 추석에 시댁에서 잠을 잘 때는 괜히 서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시댁 어른들도 가족이라고 생각을 한다. 신랑을 태어나게 해 주시고, 길러주신, 그리고 나를 며느리로 품어주신 가족. 2016년 추석, 난 며느리로서 시댁과 함께 해외여행을 갔었다. 그리고 더 돈독해 진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추억을 하나 더 쌓았다.


거리.jpg 예뻤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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