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의 프리랜서가 있다면 일하고 사는 방식이 다 제각각일 것이다. 어떤 일로 프리랜싱을 하는지에 따라, 경력에 따라, 소득 수준에 따라 근무 환경이 천차만별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력만 가지고 프리랜서와 직장인의 삶을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내가 겪은 경험 내에서 돌이켜보며 두 가지의 특징과 장단점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프리랜싱을 생각하는 사람, 다른 방식의 삶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참고 자료가 될 수는 있겠다.
1. 직장인은 월급을 받는다.
당연한 얘기인데 첫 번째로 쓴 이유는, '월급'이라는 게 직장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해서다. 직장인은 매달 정해진 날짜에 자신이 제공한 노동력에 대한 값을 받는다. 반기, 또는 년 별로 연봉협상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월급으로 받는 금액이 달라지지 않는다. 직장인은 오늘 하루 해야할 일을 다 못했다고 해서 월급이 깎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정일에 나의 월급이 입금되지 않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매달 들어올 월급을 바탕으로 재정 계획을 짤 수 있다. 일정한 금액이 정해진 일자에 들어온다는 것은 삶에 안정감을 주고, 내가 나의 재정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
프리랜서는 다르다. 특히 내가 일했던 '기술 번역 프리랜서'의 경우, 특정 클라이언트와 1년~2년 장기계약을 해서 고정 급여를 지급 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건 바이 건"으로 돈을 받는다. 프로젝트마다, 혹은 번역 1 건당 번역료를 받는 식이다. 정해진 날짜도, 정해진 금액도 없다. 내 번역 서비스에 대한 단가를 내가 정하고 그것을 고정적으로 가져간다해도 클라이언트에서 요구하는 금액이 다를 수 있고, 네고를 하면서 번역 단가가 달라질 수 있다. 또 직장인과 달리 돈을 받으려면 일일히 인보이스를 써서 넘겨야 한다. (해보면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Paypal 등의 플랫폼을 통해 외국 회사로부터 돈을 받을 땐 환율의 영향을 받고 수수료도 떼인다.
건 바이 건으로 돈을 청구해야 하고, 인보이스를 직접 써야하는 것보다도 더 크리티컬한 것은 '내가 일하는 만큼 돈을 번다'는 점이다. 만약 6월 한 달 동안 몸이 아프고, 집안에 일이 있어 일을 많이 못했다면 6월 노동에 대해 청구할 금액이 줄어든다. 같은 맥락에서 내년 1년 동안 내가 벌어들일 수익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재정 계획을 수립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2. 프리랜서에겐 동료가 없다.
공유 오피스, 같은 사무실 등을 구해서 같이 일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기본적으로 프리랜서는 '혼자' 일한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청구하고, 돈을 받는 주체가 나 하나다. 1인 기업인 셈이다. 기업에는 회계팀에서 회계를 담당해주고, 경영 지원팀에서 각종 인사 업무 등을 처리하고, 사업팀에서 돈을 벌어오고 마케팅 팀에서 마케팅을 담당해준다면, 프리랜서는 이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혼자 일해야 하는 점 외에 각종 업무를 혼자서 처리한다는 점이 프리랜서의 특징이다. 프리랜서로 제대로 경제 활동을 잘 하려면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3. 직장인은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는 없다.
직장인은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해야 하는 일, 시키는 일을 한다. 나에게 주어지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만 할 수 있지 않다. 때로는 정말 하기 싫은 일, 너무나 어려운 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자신이 할 일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자기가 잘하는 분야의 일만 받을 수 있고, 프로젝트를 수락할지 자신이 결정한다. 물론 돈을 생각한다면 일을 취사선택할 여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직장인보다는 업무 선택의 폭이 넓고 재량권이 크다고 할 수 있다.
4. 프리랜서는 인간 관계의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직장인의 81%가 '인간관계' 때문에 퇴사를 결심한다고 한다 (https://digitalchosun.dizzo.com/site/data/html_dir/2019/03/26/2019032680050.html) 그만큼 직장 내 인간관계는 쉽지 않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 싫은 사람과도 어울려야 하고 항상 눈치를 봐야 한다. 좋은 선후배, 동료를 만나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괴롭힘을 당하거나 정신적인 고통을 받기도 한다.
프리랜서는 관계의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다. 원한다면 하루종일 집에서 혼자 일할 수 있다. 원한다면 아무런 인간관계 없이 생활할 수 있다. 원한다면 클라이언트와의 모든 관계를 온라인으로 맺고, 업무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다. 나를 괴롭히거나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오프라인 인간관계 없이 살아갈 수 있다.
5. 직장인에겐 규칙적인 삶의 루틴이 있다.
직장인은 '출근'과 '퇴근'을 한다. 9시에 업무를 시작하고, 12시에 밥을 먹고, 6시에 퇴근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나의 삶을 계획할 수 있다. 새벽 시간 수영 교육을 등록하거나, 퇴근 이후 고정된 시간에 영어학원을 다닐 수 있다. 1년 전부터 해외 여행을 계획할 수 있고, 몇 월 몇 일 나의 삶의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를 대략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프리랜서에겐 출근도 퇴근도 없다. (물론 사무실을 잡아 출퇴근을 할 수는 있다) 내가 원할 때에 근무를 시작하고 원할 때에 근무를 마친다. 당장 다음 달에 나의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클라이언트가 급하게 업무 관련 요청을 할 때가 있어서 어떤 날에는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고, 어떤 달에는 주말 없이 일을 해야 한다.
직장인이 삶의 루틴을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다. 프리랜서에겐 어렵다. 본인의 의지, 습관, 행동력, 실천이 필요하다. 어느 누구도 옆에서 나에게 출퇴근을 강요하거나, 나의 근태를 관리감독하지 않는다. 본인이 자신의 근태를 관리해야 한다.
6. 직장인에겐 동료가 있다.
직장 내 인간관계가 힘들기도 하지만, 게중에 나와 맞는 사람,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근무 시간 중에 동료들과 스몰톡을 하거나, 농담을 주고 받거나, 커피타임을 가질 수 있다.
'우연히 자주 마주칠 수록 창의적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나와 다른 직군, 직무의 사람들과 마주치고 대화를 하면서 창의성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35531#home) 회사는 물리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마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프리랜서로 일할 경우 이런 환경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혼자 일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과의 가벼운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려면 많은 노력이나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노력으로도 그러한 환경을 자연스럽게 조성하긴 어려울 수 있다.
7. 프리랜서는 출근하기 위해 화장하지 않아도 된다.
원한다면 하루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고도 일을 진행할 수 있는 프리랜서에게 화장, 셔츠 등이 필수품이 아니다. 내게 가장 편한 곳에서 편한 옷을 입고 일할 수 있다. 머리를 며칠 동안 안 감아도, 빨래하지 않은 옷을 입어도 아무에게도 민폐 주지 않는다.
다만 이것이 큰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머리를 말리고, 깔끔한 블라우스를 꺼내 입고, 또각 또각 구두굽 소리를 내며 출근하는 기쁨을 느끼지 못할 수 있으니까. 화장실 거울에서 본 내 모습이 목 늘어난 티에 질끈 묶은 머리인 것과, 깔끔하게 다려진 셔츠인 것과는 겪어보면 확실히 기분이 다르다.
그래서 어떤 프리랜서들은 그러한 환경에서 스스로 자괴감을 느낀다며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8. 프리랜서에겐 자율성이 있다.
내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 바로 이 '자율성'이다. 직장에서는 자율성을 갖기 굉장히 어려웠다. 상사의 말을 정답처럼 따랐고, 회사의 방향성과 일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일을 진행시킬 수 있다.
주체적으로 내가 나와 같이 일할 클라이언트를 고르고, 내가 일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골랐다. 내가 나의 번역료를 책정했다. 특정 단어가 어떻게 번역되는지 내가 결정하고, 내 결정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며 나의 번역을 방어했다. 직장생활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높은 자율성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경험할 수 있다.
프리랜싱과 직장 생활엔 각각 장단점이 있다.
프리랜싱에 잘 맞는 사람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번역 업계에서 10년, 20년 넘게 꾸준히 프리랜싱을 하며 롱런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그분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일과 근무 환경에 만족해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진심으로 만족하거나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보지는 못했다. 모이면 회사에 대한 안 좋은 얘기들을 했다. 상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것들에도 영향을 받아 프리랜싱을 선택했던 것 같다.
프리랜싱 이후 재취업을 하며 2년 가까이 지내보니 이제는 조금 더 객관적으로 두 삶의 양식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어떤 방식이 맞는지도 조금 더 알 것 같다. 그래서 사실 지금도 내게 정말로 맞는 방식의 근무 환경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한다.
마지막 편에서는 내가 직장 생활로 돌아가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피드백과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지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