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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물킴 Dec 18. 2020

코로나로 올해 잃은 것과 얻은 것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분주한 마음과 섭섭한 마음이 공존하던 때. 올해는 그냥 다 같이 2020년 없었던 셈 치면 안되냐고 칭얼거려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흐르고, 과거는 저 멀리서 현재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개개인의 감상이야 모두 다를 테지만, 나에겐 어떤 사건이었는지 돌아봤다.



코로나로 내가 잃은 것

1. 2019년에 세웠던 계획의 무산과 수정

배우고 싶었던 것, 가고 싶었던 학교, 살아보고 싶었던 나라가 있었다. 비행기를 못 타는 일이 생길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글로벌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 나라의 삶에서 묘하게 반발짝쯤 빼고 있던 라이프가 모두 올 스톱됐다.


휴가, 퇴사 등을 계기로 극적인 휴식 체험을 위해 습관적으로 다녀오던 해외여행 역시 앞으로 몇 년간은 힘드리.

다닐 수 있을 때 열심히 쏘다니길 정말 잘했지.
역시 하고 싶은 것 지금 당장 해야 해.


2. 산업의 생기

퇴사를 계획한 것은 작년이라 코로나와 사실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퇴사할 즈음 완전히 생기를 잃어버린 산업의 무기력함을 맛봤다. 특히나 코로나의 타격이 매우 컸던 업계였던 탓에, 누구도 쉽게 어떤 손을 쓰지 못한 채 이 시대를 맞이했다. 나는 예비군 훈련일을 매우 싫어한다. 생기와 의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특유의 무력감 속에 함께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퇴사할 지음, 생기를 잃어버린 업계의 모습은 마치 예비군 훈련일의 연속인 것 같았다. 그냥 이대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나에게는 아무 일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들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차라리 일 없어서 좋다는 얘기를 하는 동료에게서
나는 더 이상의 동지애와 동질감을 느끼긴 힘들었다.
어서 빨리 이 곳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3. 새로운 관계와의 적극적인 교류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사적인 시간에 업계 안팎의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는 최소화했다. 업무를 돌리기 위한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했을 뿐이다. 그래도 업무는 잘 돌아갔다. 신기한 일이지. 그렇다고 집콕 라이프만 펼쳤던 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관계라는 것에는 시간과 접점의 투자가 필요했다. 올해는 새로운 관계를 확장하기보다는, 있던 관계를 잘 다지는데 치중했다.


4. 음주가무의 기회

뒤풀이 없어도, 회식 없어도
이렇게 일이 잘되는 거였어?

잃은 것이라고 봐야 할지 애매하지만, 가끔은 서로의 고생을 격려하며 술 한잔 들이켜는 자리가 반가울 때도 있었다. 랜선 회식이라는 요란을 떨 생각은 없지만, 음주가무의 기회가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은 어쩐지 아쉬운 일이었다. 다만, 술 대신 각자 싸온 도시락을 자리에서 먹으며, 마스크를 쓰고 회의를 하며, 재택근무로 다시 만나 주먹 인사를 할 날을 다짐하며 일해도 팀워크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5. 통장 잔고

생각보다 잃은 돈 자체는 많이 없었다. 그것이 잃은 돈이었나 생각해보면, 수업료에 가까운 돈들이었다. 언제 썼어도 썼을 돈이고, 배워야 할 것들이었다.


잃은 것은 모아두었던 돈이라기 보단,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들이었다.


만약 내가 자영업을 했다면, 사업을 하고 있었다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면 더 많은 것이 달랐을 수도 있겠다. 회사원이라는 업을 다시 되찾을 일은 당분간 없겠지만, 그렇다면 이러한 변수와 변화의 흐름 속에 유연하게 몸을 맡기고 적응하는 연습을 코로나 덕에 아주 강렬하게 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유의미한 수익활동의 경험들은 2021년에도 지속적인 개발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코로나로 내가 얻은 것

1. 새로운 업무 방식의 경험

랜선 업무의 형태는 사실 첫 직장에서 종종 해외 출장을 갔었기도 했고, remote 하게 일해볼 기회가 더러 있었던 터라 그렇게 어색하진 않았다.

다만, 'ZOOM은 어떻게 까는 거니?'
물어보는 상사들과 일하는 게 힘들었을 뿐.


집단면역이 되어야 코로나 시대도 종식을 맞이하는 것처럼, 재택근무에도 집단면역의 시간은 필요했다. 어쨌든 가까스로 다들 적응해나갔고, 비효율적인 와중의 효율을 찾아내려 부단히도 애들을 썼다. 이 방식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꼭 기존의 방식대로만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단체학습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2. 우선순위에 대한 명확한 인지

거대한 장벽이 생기자 무엇을 먼저 보호할지, 지켜낼지, 얻을지 등을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 본의 아니게 내가 가지고 있는 우선순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알게 된 것이다. 굳이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인생은 나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를 쥐려면, 무언가를 놓아야 한다는 진리.


그것은 코로나가 아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유념해야 할 명제였다.


3.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사회생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후 성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다들 원래 그렇게 살지 않냐는 이유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줄어가고 있었다. 반강제로 집콕 라이프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기 보단(원래 소중한 건 알고 있었고.)


생존의 최소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 되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인생 혼자 사는 것? 쌉가능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본다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인생을 살아내는 것에 최소한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선 '가족'의 성립과 존립이 반드시 지켜져야 함을 깨달았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함께 깨달았다고 본다. '가족'이라는 최소 단위를 잘 지켜내고 유지하기 위한 제도, 장치, 법 등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사회와 국가는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겠다.


4. 수많은 집밥 레시피

공교롭게도 'I am what I eat'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으며 홈쿡 라이프를 적극 수용하던 찰나 코로나가 터졌다.


인생 최고의 선배님, 유튜브 선배님.
감사합니다.


식재료에 대한 무한한 관심, 직접 해 먹는 음식의 감사함과 그 유별난 맛. 코로나 시대가 종식되어도 잃고 싶지 않다.


5. 다양한 취미 개발의 기회

사회적 관계에 들이는 시간이 줄어드니, 나 스스로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나의 취미를 들여다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왕이면 밀집된 형태의 인도어 액티비티보다는, 외딴곳에서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취미들을 많이 시도했다. 그중 몇 가지 취미는 생각보다 잘 맞아, 꾸준히 개발해 나가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노트북으로 꼼지락 거리는 시간도 늘어났다. 몇 가지 사이드 잡을 가능하게 해주기도 하였고, 퇴사 후의 돈벌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들 역시 노트북을 통한 디지털 액세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할 일들. 이런 모든 것들도 일단은 취미로 퉁쳐 묶어둔다.







코로나로 일상이 망가진 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지만, 계속 무력감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행복했고, 즐거웠고, 많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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