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영어 등 학업을 위한 학원도 다녔지만 피아노, 미술, 수영 등 정서와 감성 함양에 도움을 줬을 과목들도 배웠다. 우리 엄마는 참 부지런도 하지, 아들 교육에 진심이셨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정말 감사한 일.
대단한 소질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못 그리는 것도 아니었다. 좀 그렸다 싶으면 A를 받기도, 적당히 B정도는 무난하게 받았던 학창 시절. 딱히 그림에 대단한 재미를 느끼진 못했지만, 어렸을 땐 즐겨봤던 만화책의 내용을 베껴가며 나만의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신나서 아빠, 엄마에게 들고 가 보여줬었지.
취미 미술 클래스를 몇 달 다니면서 흥미롭게 그리다, 팀장이 되고 사생활이 사라지면서 취미 미술 클래스는 그만뒀다.
취미 미술 클래스다 보니 실력 증진보다는, 쉽고 빠르고 재밌게 그리는데 중점인 수업이었다. 먹지라는 치트키를 썼고, 선생님의 가이드 붓칠을 따라 내가 나머지를 채워내면 순식간에 이게 내가 그린 그림인가 싶은 그림들이 완성됐다. 재밌었지.
회사 다닐 때 포스터 등을 만들며 훌륭한 디자이너들과 많이 일을 했고 컨펌 내는 위치에서 일을 했지만, 직접 무언가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그렇지, 쉬이 되는 게 없지 당연히.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면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인들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세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사람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겨줬는지 얼마 전 동생네 부부가 최신형 갤럭시탭을 선물해주었다. 포트폴리오로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면 사려던 참이었는데, 그들은 천사인가... 고마운 사람들.
디지털 드로잉에도 치트키는 있다. 사진을 대고 그리는 방법. 정통 미술인들 중에는 그렇게 결과물을 내는 사람들을 극혐 해하기도 한다지만, 취미에 불과한 수준의 내가 그들의 생업을 해치는 일 따윈 없을 것이다. 유튜브에서 내가 좋아하는 소재, 그림체를 그려 올린 영상을 찾아 따라 그리는 재미가 매우 쏠쏠하다. 유튜브는 대체 얼마나 많은 직업을 사라지게 만든 것일까. 세상을 순식간에 바꿔버리고, 당연한 것이 이제는 고루하게 되어버린 것은 비단 코로나 바이러스뿐만은 아니었다. 지브리 OST를 방안 가득히 틀어놓고, 한 2-3시간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정서적으로 정말 충만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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