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고 성장과 성과에 몰두하는 삶에서 잠시 궤도를 틀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찾는 것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했고 생각보다 재밌었던 것, 생각보다 지루했던 것, 딱 생각만큼이었던 것들이 내 삶을 채워나갔다. 그중 해양 다이빙, 정확히는 프리다이빙은 어쩌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대해 알게 해 준 경험이었다.
중독자들은 일상생활보다 취미생활을 본업으로 삼을 만큼 심각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미 해양 다이빙의 매력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때는 왠지 눈길을 주지 못했다. 역시, 모든 것은 내가 take 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중 프리다이빙은 마스크(물안경 같은 것), 수트, 핀(오리발 같은 것), 스노쿨(입에다 무는 것) 등 최소한의 장비를 갖추고 하는 익스트림 해양 스포츠였다.
처음엔 단순히 다이빙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스쿠버다이빙보다는 단출해 보이는 장비 세팅 등에 홀려 시작했다.
강사님께 회당 지불하는 비용, 풀장 또는 바다에 나가는 비용 등은 사실 그리 많은 지출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골프 라운딩 정도와 비슷한 수준이었달까. 다만 한번 바다에 나간다고 하면 교통비, 숙박비, 식대 등의 부대비용이 적지 않게 들었다. 평소 가지고 있을리 없던 장비들을 구매하는 것도 적지 않은 소비였다. 좋은 것은 비싼 것이었다. 다이빙은 기본적으로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행위이기에, 다이빙을 소화할 수 있는 깊이를 가진 풀장도 수도권 지역에는 그 수를 손에 꼽았다. 한번 나서면, 먼길을 가야한다는 뜻이었다. 자격증을 따두면 이후부터는 언제든 자유로이 다이빙이라는 스포츠를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소비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마쳤다.
일종의 투자라고 치는거지.
다이빙을 제대로 공부하기 전엔 바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상어한테 물리면 어쩌나 하는 어드벤처러스 한 걱정부터, 해류에 휩쓸려가면 어쩌나 하는 익스트림한 걱정까지. 그런 걱정들이 몰상식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제대로 이론을 공부하고 나면 (약 100페이지에 달하는 이론서를 달달 외워 공부하고 필기시험에 합격해야만 풀장, 바다 등을 나갈 수 있다) 어느 정도는 해소되는 것들이었다. 바다와 해양생물들에 대한 이해, 안전한 다이빙을 위한 원칙들을 아는 것이 마인드 컨트롤의 키였다.
다이빙을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위험하지 않아?'였다. 위험하다.
다만, 위험에 쳐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반의 점검 수칙, 혹여나 위험에 빠졌을 경우를 대비한 철저한 세팅 등이 갖춰져야 한다. 모든 사고는 이 점검 수칙과 세팅을 하나라도 지키지 않았을 때 벌어졌다.
어렸을 때 수영을 오래 배워 물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다만 수영은 팔을 힘차게 뻗거나 다리를 세차게 흔들어내는 것에 익숙했다면, 다이빙은 가장 최소한의 산소 소비로 가장 깊은 바닷속을 들어가는 행위였다. 요가는 해보지 않았지만, 요가와도 비슷한 점이 많은 운동이라고. 숨을 마시고, 뱉는 행위부터 철저히 느끼고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고. (요가는 2021년 to do list 1번에 올라있다.)
운동을 즐기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프리 다이빙에 내가 흠뻑 빠지게 된 이유는 평화로움과 고요였다. 물의 섬세한 흐름을 느끼며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
지상에서 가졌던 잡념과 소음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완벽한 고요를 향해 뻗어나가는 것.
절대로 두 발을 딛는 땅 위에서는 느낄 수 없던 체험이었다.
프리 다이빙은 절대 혼자 바다를 나갈 수 없는 운동이다. 반드시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누군가에게 자신의 다이빙을 모니터 요청해야 하고, 이를 버디라 부른다. 버디는 다이버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나올 때까지 다이버의 표정, 동작, 호흡 등을 모니터 하며 이상 징후를 관찰하고, 징후가 발견될 시 바로 수면 위로 다이버를 끌어내야 한다. 즉, 다이버는 버디에게 철저히 본인의 안전과 생명을 맡기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이와 비슷한 감정을 군대에서 느껴본 적이 있다. 생명과 안전이라는 개념을 공유하며 극한 상황을 마주할지 모르는 위험 속에 놓인 이들끼리 나누는 감정. 프리 다이빙을 하면서 그와 꽤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성공적으로 목표한 다이빙을 마치고 수면 위로 튀어 오른 뒤 호흡을 가다듬고 나면, 버디와 묘한 감정을 주고받다 결국 울컥해 바다 위에서 눈물을 쏟아낼 때도 있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주 뜨겁게 연결해준다.
다이빙 전에는 알코올을 섭취할 수 없다.
물질을 하러 일단 새벽같이 나가 고요한 바다를 마주해야 하기에 이른 취침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다이빙의 핵심은 차분한 호흡 관리기도 하기에 알코올은 금물이다. 알코올은 맥박을 빠르게 뛰게 하여 산소 소비를 증가시키고, 불안정한 신체리듬으로 다이버의 컨디션을 망가뜨린다. 날 좋은 바닷가에서 술 한잔 할 수 없다니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지만, 다이빙의 짜릿함을 느끼기 위해선 참는 수밖에. 컨디션이 좋지 못하고 판단될 시엔, 언제든 강사로부터 다이빙을 저지당할 수 있다. 비싼 돈을 내고 바닷가까지 들어왔지만, 호흡관리가 되지 않아 다이빙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꽤 봤다.
학교를 다닐 땐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많았다. 직장생활 10년을 하는 동안, 나를 소비하기에 바빴고 다시 채워내기 위해선 어떤 것이 필요한지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에게도 제대로 된 방식의 충천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10년을 또 달려내기 위해 나에 대한 탐구가 다시 절실한 순간에 프리다이빙을 만났다.
지친 나를 위로할 방법, 쓰러진 내게 웃음을 줄 방법.
그것은 학생 때의 나, 사회 초년생의 나에게 사용했던 방식과는
또 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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