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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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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Mar 03. 2023

춘곤증



검사를 기다리는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닭병을 앓는다

봄은, 이 좁은 복도 한가운데로 지나간다     


고물 흑백 TV를 수리하는 전파사 

잡동사니에도 한 가닥 봄빛이 기웃거린다

갯바위 돌김을 뜯는 할매 영상이 순간 잡혔다     


두꺼운 외투를 걸친 행인들이 

따분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는 거리에서 

패딩 실밥 터지는 소리 들린다

     

산수유나무 겨드랑이 사이로 

샛노란 꽃망울들이 

간지럼 타는 웃음소리 들린다     


벗을까, 말까

목도리 장갑 

덕지덕지 껴입은 위선의 미늘   


눈을 감아라

술래가 되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열 번을 세면     


파랑주의보 수평선을 건너서  

메마른 어깨를 가만히 흔들어 깨우는

당신의 연분홍 진달래꽃       




ⓒ 2023. (남연우) all rights reserved.

2018년 봄 수선화(상단 이미지) / 2021년 봄 진달래, 언제 보아도 기막힙니다



봄을 탑니다

졸음이 수시로 엄습합니다

잠을 덜 잔 것도 아닌데

다리를 포개 의자에 앉으면

병원 대기실에서도 졸립니다


대변화 예고편 스크린이 펼쳐지기 전

"깜짝이야" 놀라지 말라고

잠재우려는 의도일까요?

온화한 대기의 입김일까요?

대지의 모성이 불러주는 자장가를 듣고 있는 중일까요?


지지직- 과거를 블랙아웃 처리한

전파사 흑백 TV를 수리하자

영상이 잡힙니다

갯바위에 앉아서 돌김을 채취하는 할머니의 봄이


패딩잠바를 이젠 지겨워서 못 입겠어요

좀 춥더라도 얇은 점퍼에 손이 가고

두꺼운 목도리는 벌써 눈길도 안 줍니다


내 안에도 봄을 맞이합니다

위선을 벗고

고요한 연못가에 버들잎 틔우듯이

불안 우울 열등감 걷어내면

메마른 어깨 위로 새움 돋아나지요


봄은, 기다려봄직합니다

졸리더라도

나른하더라도

어릴 적 술래가 되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열 번 세면


짜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봄

등 뒤에 하늘하늘 연분홍 진달래꽃 한 움큼

쥐고서

살며시 다가오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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