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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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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Mar 24. 2023

보호색



지하철역에서 백화점으로 가는

연결통로 구간

조명발 받는 백색 대리석 의자에

커다란 번데기가 누워있다


날개를 만드는 윤기라든가

탄력이라곤 없이

검은 옷에 감긴 무기력이

집을 잃었다     


바깥세상이 꽃을 피우든 말든

웅크린 절벽 끝에서

너무 환한 절망을 벌세운다     


자벌레도 나뭇가지 모양 직립하는데

무당개구리도 건드리면

시뻘건 배를 뒤집는데     


시간을 잡아당기는 무빙워크 앞에 두고

겨울잠에 곯아떨어진 그는

언제쯤 깨어날까     


욕망을 쇼핑하는 공간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분실물이

눈에 띈다     


다수의 보호색에게만 자동문이 열린다     





2023. (남연우) all rights reserved.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 기적이 꽃피었다!

딸아이가 귀를 뚫어보겠답니다

빛나는 봄 햇살을 귀에 걸겠답니다

스무 살 청춘인데 그래, 그렇게 하려무나


함께 가주기로 합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딸을 기다리며

백화점에서 혼밥하려고

배가 고파서 걸음을 서두릅니다


지하철을 벗어나

백화점으로 가는 연결통로에는

아담한 문화공간이 있습니다

전에 여기 들러서

그림 작품을 감상한 적 있지요


조명등이 아주 밝고 화이트톤 공간입니다

둥근 기둥을 감싼 360도 의자에

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검은 형체 두 사람이 제각기 다른 자리를 차지한 채 누워있습니다


너무 적나라한 노숙,

지하철도 아니고 백화점도 아닌 어정쩡한 공간

시민들의 쉼터가 그 두 사람에게 점령당했습니다

바로 몇 걸음만 떼면

수평 무빙워크가 백화점으로 사람들 발길을 끌어당깁니다


보호색이란,

피식자가 갖는 은폐색

피식자를 배경에 융합시켜 포식자의 눈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생존전략인 셈이죠


오늘 자신의 모습은

살아남기 위한 저마다의 독특한 보호색을 띱니다

위장술을 걷어내고도 빛이 나는 사람은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채

절망을 입히는 사람들...

그들이 환한 봄볕 아래 툭툭 털고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보호색으로 치장한 사람들을 향해

백화점 자동문이 열립니다

"어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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