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꽃 아래
아기 발가락이 꼼지락거린다
아직 세상을 걸어본 적 없는
조그맣고 물컹거리는 발
섬마섬마 하면서 바닥을 딛고 서면
혼자 걷는 법을 배운다
걸음마를 떼면서 문밖을 나서고
골목을 돌아서 나가면
큰길이 기다리고
큰길을 따라서 가면 강을 건너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아기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빈 깡통을 걷어찰 만큼 단단해진
그 발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서 폼나게 걷다가
산맥의 등줄기에 내려앉은 노을을 밟고 서서
저문 강이 멈추는 흐름을 거슬러 오른다
말캉거리던 아기의 발은
어느새 굳은살투성이
등나무꽃 아래
허리 굽은 노인이
쏟아지는 빛과 그늘을 저울질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지나온 길이 프린트된 발바닥
바람에 묻은 뼈를
아기는 모른다
배냇웃음 짓는 아기가 단잠을 잔다
유전자는 교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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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꽃이 피었어요
칠월의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듯 탐스럽게 피어났어요
꽃들의 봄맞이 세리머니는 끝날 줄 모르고 진행형
대학교 캠퍼스에 피어난 이 꽃들에게선
진취적 학구열을 돋우는 색채와 분위기를 풍깁니다
유모차를 밀고 온 꽃그늘 아래
아기 발가락이 딸랑 방울소리 내며 나옵니다
아빠가 넣어줘도 또 딸랑거리며 내밉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아기 얼굴을 보고 싶더라고요
의젓한 사내 아기가 빤히 나를 쳐다봅니다
이제 8개월,
"귓밥도 두둑하니 복스럽게 생겼네요!"
"잘 자라거라!!"
아기 부모님이 좋아합니다
서른 중후반 나도 저런 모습이었는데..
젊은 아기 엄마 아빠의 모습이 곧 중년으로
중년은 곧 노년으로
등나무꽃 아래 빛과 그늘이 세월을 가지고
노니는 듯
아기는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청년이 되고
청년은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되고
그렇게 그렇게,,
노인의 등에 내려앉아 저울질하는
시간이 시소를 탑니다
아기와 노인이..
이 모든 게 유전자의 대물림
그래서 교활한 사기극
과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