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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Aug 02. 2023

쉬는 쉰



쉬는 경계에 서 있다

낮과 밤 해와 달의 경계에 서서

빛을 수거하는 달을

어둠을 흘려 담는 해의 시간을 기다린다  

   

빛이 자막 처리하는 그늘의 형태를

살펴보길 좋아하는 쉬,

지금까지 간직한 해수海水의 푸른색이

비취색으로 옅어지는 쉬,

물의 차분함을 하루하루 긷는 쉬,     


해무가 번지는 아침 들판을 오래도록 거닐며

자신의 삶을 서술하기 시작했다

떡갈나무 숲에 사는 노을을

창고 앞에 우두커니 녹슨 아버지의 자전거를

눈물을 먹고 자라는 별을  

   

그 별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는 외길에 대하여 

직관에 의존하는 쉬는

백 원 단위 물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현실주의자

뜬구름을 타고 떠나는 여행경비를 

기꺼이 지불하는 몽상주의자

먹고 마시는 일에는 둔감

쓰고write 만드는 일에는 민감  

   

동화의 결말 권선징악을 교훈으로 삼는다

선악을 분별하기 어려운 상황적 윤리에 대하여

수중에 돈이 없어 기저귀를 훔친

아기 엄마의 돌발행동에 대하여

인생은 모범답안을 가지지 못함을

난처한 물웅덩이 헛디딜 수밖에 없는

바로 거기 구원의 기도가 숨어있음을

쉰에 이르러 알게 된 쉬, 

    

작은 고갯마루 저 너머 희뿌연 앞길도 

걸어온 길의 연장선

도라지꽃을 나긋나긋 흔드는 여름바람은 진보라색

눈 쌓인 나목을 서리서리 흔드는 겨울바람은 흰색

더 온화하게

더 부드럽게

더 성실하게

그 여자의 정원은 자율과 계율을 꽃피운다     


쉬는 잠시 갇힌 바람

언젠가는 설산 봉우리에 오르고

고원을 불어서

어린왕자의 소행성(B612)을 만나러 간다

린넨 앞치마를 두르고

달그락 그릇 포개는 소리 경쾌한 부엌

뽀얀 냉기 서린 사과당근 쥬스  

식빵 네 모서리 규격화된 아침을 굽는

쉬는 쉰,

밀물과 썰물 경계에 서 있다     




** 시를 읽는 적정속도는 안단테입니다!

                                                                           

이웃 텃밭에서




여자 나이 쉰,

가을에 피는 향기 진한 국화라고 하면 어울릴까요?

살랑거리는 봄바람 지나고

체온이 달아오르는 여름도 지나고

서늘한 가을바람에 꽉 다문 꽃봉오리 여는 국화,

찬 서리 맞고도 피어있는 꽃!


참고 인내한 세월이 때에 이르러 꽃을 피웁니다.

너무 이른 시기 성급하게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꽃 피울 힘이 없겠지요.

삶의 완숙기에 이른 여자는

자신을 향한 성찰과

세상을 향한 통찰이

조화를 이룹니다.


굽이굽이 지나오며 인생의 과업을 완수해 갑니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프 타임

한숨 돌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습니다.

삼십 대 한창 육아에 매달려 있던 어느 날

어떤 글을 보았어요.

“자식들 다 키워서 내보내고 나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여자가 되어있더라고요.”

빈둥지증후군을 겪는 어느 여성의 자기 고백이었어요.

알맹이는 자식들 다 떠먹이고

빈 껍질만 남아있는 자신의 모습이 서글퍼 보였나 봅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식만 쳐다보고 사는 여자는

나이 들어 불행해집니다.

내가 있어야 자식도 있고 세상도 있으니까요.

아기들 기저귀 떼고 나면 엄마는 자신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재능과 취미를 잘 가꾸어야 합니다.

반들반들 윤기 나게 쓸고 닦으며

그 뜨락에서 즐거움 만족감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죠.

돌보지 않아서 황폐화된 내면에는 우울한 잡초가 우거집니다.


저는 아직 양육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구실할 수 있게 키워놓고 나면 오십 대 후반이 되어있겠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여자는 싫습니다.

적어도 거울에 비친 나에게 가끔

 “너 오늘 멋있어 보여^^”

이렇게 말해주고 싶을 만큼 과하지 않게 아껴주고 싶습니다.

자기 얼굴에 책임지라는 말,

얼굴은 지금까지 살아온 이력서입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매 순간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그대로 거울처럼 내비칩니다.

눈이 맑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끝까지……


시간이 나면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그저 그런 도시보다는 문명의 때가 덜 낀

지구촌 오지를 찾아다니고 싶어요.

네팔 파키스탄 스페인 포르투갈 태평양을 훌쩍 건너 남미 안데스 산지 칠레…

협곡에 외줄기 걸쳐진 흔들다리를 건너고

높은 산봉우리도 올라가 보고

일백 년 내 모두 사라질지 모를 서슬 퍼런 빙하를 만나고

히말라야가 간직한 신비로운 별들을 내 눈에 꼭 넣어주고 싶어요.


앞으로 남은 길도 걸어온 길의 연장선입니다.

오류를 거듭한 젊음을 지나 언제부턴가

순리를 따라서 잘 걸어왔어요.

흔들림 없는 가치관을 길동무 삼아서

남은 후반전도 잘 가고 싶습니다.

밤하늘 직관으로 떠 있는 나의 별이

그 길을 이끌어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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