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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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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Oct 23. 2023

노랑어리연꽃



물은 뭍보다 변덕스럽다

뜨거울 땐 확 달아오르고

식을 땐 하룻밤 새 얼음이 언다     


널리고 널린 땅은 너무 딱딱하고 칙칙해

내 기분을 살살 어루만져주는

물이 좋아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잖아   

  

갑자기 웃음기 걷히고

싸늘해진 어느 아침

물은 이 세상 마지막에 이르는

운명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정성스레 머리 빗질

테슬 달린 노란 블라우스를 갈아입었다

보조개 팬 레몬빛깔 미소를 지으며

거울 앞에 앉는다     


사진사는

천국 가는 길이 활짝 열린다면서

더 웃어보라 한다

하나 둘 세엣 

스마일~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려봐     

초등학교 입학식 날 노랑풍선이 떠올라

첫 데이트 하던 날

공원에 핀 이른 봄 수선화

수석 졸업 상패도 금빛이었어    

 

새털같이 수많은 날 중에

가장 빛나는 깃털이 살랑이던

그 순간을 떠올려봐  

   

자, 다시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어리대다가 인생 후딱 지나간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누가 좀 말해줘     


수면 절벽 끝에 외발 디딘

그녀가, 먹먹하게 샛노랗게

영정사진을 찍는다

남의 속도 모르면서 물잠자리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 2023. (남연우) all rights reserved. 



         

시월 셋째 주 호수에서 만난 노랑어리연꽃
김종태 '노란 저고리'(1926년)


인디언 섬머같이 화창한 가을 주말,

여름 내내 안 보이던 원앙새들이 무리 지어 헤엄치는 모습 눈에 띄어 무척 반가웠어요

시월 첫째 주 호숫가를 노랗게 물들이던 꽃들이 여전히 잘 피어있는지 궁금하였어요

반바퀴 돌아서 그녀들의 안위를 확인하러 갔습니다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에 무사할지...

?? 안 보입니다

어디로 갔지?

호수 관리인이 모두 건져내어 말라죽어가는 모습이 목격됩니다

왜 굳이 이렇게 하는 걸까..

저 위쪽 호수에 아직 생존한 그녀들의 군락지가 보입니다


해맑은 햇살이 건너와서 목을 쭈욱 뻗어 일광욕하는 모습

행복해 보입니다

한 점 그늘이라곤 안 보입니다

건너편 친구들의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어요

노랑어리연꽃은 술이 달린 예쁜 블라우스를 입고 있습니다

한 걸음 떨어져선 알 수 없었던 아주 패셔너블 최신 유행 

그녀들의 옷이 탐이 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난 저런 옷 한 번도 가진 적 없고 

입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죠


저렇게 차려입고 뭐하는 걸까

곧 물에 뛰어들게 생겼는데..

그 표정을 며칠 내리 곰곰이 생각합니다

늦은 밤 사진관 앞을 차로 지나치면서

영정사진이 떠오릅니다


가장 고울 때 모습을 마지막 영정사진으로 남기려는 걸 거야!

꼭 늙어 초라해진 모습 추도할 필요는 없잖아..

노랑어리연꽃을 보면서

김종태 화가가 그린 '노란 저고리'가 연상됩니다

앳되고 사랑스러우면서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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