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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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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Nov 27. 2023

11월, 라일락



무화과 들어간 캄파뉴 같은 여자가

두 사람 들어서면 꽉 차는 빵집에서

빵을 판다


뒷사람은 문밖에 서서 찬바람이 호출하는

순서를 기다리는 곳


블랙 올리브 콕콕 박힌 푸카스를 써는

그녀의 두 볼에도 거무스름한 기미가 박혀

빵 껍질같이 익어가고 있다


그 흔한 립스틱 묻어있지 않은

입술은 엷은 보랏빛,

말이 되려다 만 말들이 둥근 입에

갇혀 까만 꽃씨를 뿌린다


멜론빵에 멜론이 들어갔는지 묻자

아니요, 색만 그렇게 입혔어요

정직함이 굳을 대로 굳어 화강석 같은 여자


희끄무레한 조명 아래

바짝 다가온 겨울 문턱 시간을 

빵칼 톱니로 쓱쓱 썰어서 가루 낸다


갈 길 잃은 담쟁이 줄기 얼기설기 엮인

외벽, 문학하는 별 하나 외로이 매달린

유리문 북악산 모퉁이에 달랑 낸 빵집


창백한 라일락꽃을 사모한 잎이

꽃보다 벌겋게 물든 

꽃불이 뜨거워

추적추적 늦가을 비 잔불을 끄는 뜨락


무덤덤한 그 여자의  

목에 두른 적갈색 꽃무늬 스카프에서 

비 그친 11월, 은은한 향내가 난다          



 ⓒ 2023. (남연우) all rights reserved. 


         

11월 16일 늦가을비 맞으며 잔불 끄는 라일락, 꽃보다 붉은 잎

한기 도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올해 마지막 꽃불을 끕니다

꽃은 라일락꽃

꽃보다 붉은 잎을 봅니다


누가 누가 더 예쁜지 서로 다투지 않고

멀어지는 모습마저 곱게 곱게 뒷걸음질

한 가지에 피어 

낙엽, 낙화의 운명을 온정으로 아껴줍니다


잎이 뒤늦게 분칠해도

꽃의 향내를 훔칠 순 없지요

꽃은 꽃이니까요

초록잎이 꽃을 사모하면 꽃처럼 되나 봅니다


주말 북악 스카이웨이 아래

세상에서 제일 작은 빵집을 발견하였어요

그 빵집에는

이름도 어려운 빵들이 소담스럽게 구워져

한두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가게 밖

대기 순서를 군침 돌게 만듭니다


희끄무레한 한 줄기 햇살이

문턱을 넘을락 말락

비좁은 공간 화장기라곤 없는 빵집 여자를 보면서

비 맞으며 늦가을 뜨락 피어난

창백한 라일락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멀어지는 청춘

멀어지는 모습마저 아름다운 향을 풍기는

늦가을 비가 내립니다

꽃씨를 만드는 침묵의 겨울을 수긍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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