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쉼이 답답하여 산바람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원한 산바람을 마시면 막혔던 생각이 풀리고 가슴이 트이지 않을까.
발모양을 망각한 등산화를 꺼내 신고서 털모자를 썼다. 작은 횡단보도 큰 횡단보도 두 개만 건너면 산이다. 이렇게 가까운 산을 얼마 만에 가보는지 모르겠다. 산길 오르막을 숨 가쁘게 오르는데 오른편 하늘에 걸린 희끄무레한 태양이 산길 왼편으로 기다란 그림자를 던졌다. 이상한 거인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목구비는 사라진 저 검은 형체가 나란 말인가.
문득 그림자들만 모여서 사는 나라가 떠올랐다. 잘난 이 못난이도 없이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지 않을까. 강남 거리 빼곡한 성형 간판이 모두 사라진 나라에서 그윽한 마음만으로 의사소통하면서 서로 아껴주고 서로 위해주고 서로 잘 살아가는 나라. 언어가 생성되기 이전 모호한 의성어로 의사소통하던 원시인들의 나라. 내 것 네 것 구별 없이 다 같이 잘 사는 나라. 하루 종일 빛이 떠오르고 어둠이 없는 곳. 어둠이 깃든다면 아주 잠시 잠잘 때만 허용되는 곳. 오색 찬란한 무지개가 지지 않는 나라, 그 나라는 영혼이 소통하는 머나먼 나라이다.
빛의 반대편에 서 있는 그림자란 무엇인가.
빛이 투과할 수 없는 물리적 형체를 심리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흉허물을 가리킨다. 빛과 대척점에 웅크린 어두운 그림자 속에는 부정심과 인간의 팔악심이 들끓는다. 뚜껑을 열고 물 한 컵 붓지 않으면 매캐한 그을음을 내면서 기필코 타락하게 만드는 무서운 그림자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심은 천칭저울과 같아서 부정심으로 기울면 평정심을 잃게 된다. 선하고 긍정적인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린다면 좋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 자신과 타인에게 폐를 끼친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중용의 미덕을 잃게 된다.
이 팽팽한 외줄 타기 같은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면 내 그림자를 살펴야 하는 까닭이다. 내 그림자는 저만치 던져두고 남의 그림자만 살피는 이들이 많다. 남의 그림자는 함부로 짓밟으면서 내 그림자는 안 보이는 것처럼 감춘다. 그림자 나라는 평화로운데 얼굴과 그림자가 반반씩 있는 그림자 공화국은 남의 것을 빼앗고 드러난 겉모습에 신경 쓰느라 내면을 무시하는 살아가기 힘든 나라이다.
그림자 공화국에서 내 정신 안 빼앗기고 온전히 살아가려면 바로 보고 걸러 듣는 여과장치가 필요하다. 요즘같이 온갖 정보가 흘러넘치는 시대 우리의 감각기관은 불필요한 과다정보에 무차별 노출돼 있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눈과 귀를 가리면서 나의 중용을 실천하는 것,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닦고 기르는 내공 수양의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명상을 하고 틈만 나면 자연의 품으로 찾아가서 오염된 눈과 귀를 씻는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간 산길에는 희한한 살풍경이 펼쳐져 있다. 창공에 늠름하게 있어야 할 푸른 소나무 가지가 여기저기 떨어져 나뒹굴고 굵은 몸통이 부러져 날카롭게 찢긴 상처에는 끈적한 송진이 맺혀 고통을 말해준다. 이런 참상은 산길을 걷는 내내 이어졌다. 땅에 떨어진 나무는 그나마 안착할 수 있어 다행이다. 어떤 나무는 상층부 몸통이 부러져 그대로 공중에 꺾인 채 처참하게 매달려 있다. 무슨 A급 태풍이 초겨울 휩쓸고 지나갔었나.
아, 반짝반짝 은빛 나래를 단 첫눈이 그랬다고 하면 믿어질까. 희끗희끗 내린 듯 만 듯 적설량 0.1~0.2cm 그래서 서로 첫눈이라 우기며 약속이 어긋나는 첫눈이어야 했다. 지구 온난화의 역설은 첫눈을 적설량 40cm 폭설로 키웠다. 이제 초겨울로 접어들락 말락 나무들도 방심하던 그때 무거운 습설이 나뭇잎을 떨구면서 상실감에 젖은 나무들을 침공했다. 너무 무거워서 팔이 부러지고 몸통까지 부러졌다. 나무는 첫눈을 맞고 죽었다.
널따란 우듬지를 지붕처럼 견고하게 펼친 소나무들이 피해가 컸다. 벌건 속살이 아파서 울고 있는 설해목 사이로 고라니 두 마리가 황급히 뛰어갔다. 그 모습조차 황량하다. 청설모 한 마리가 오르락내리락 어수선하고 각피를 쪼는 딱따구리 소리도 들린다. 산길을 가로막고 쓰러진 거구를 피해 우회로를 걷는다. 낭창낭창 부드러운 바람의 깃발 같은 대나무도 지난주 폭설에 쓰러진 걸 보았다.
너무 강해도 쓰러지고 너무 부드러워도 쓰러지고 어떤 성정으로 살아야 쓰러지지 않는 걸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버거움은 내려놓는 게 맞다. 내 그릇에 넘치는 욕심이라든가 망상이라든가 낌새를 알아차림에 민감할수록 민첩하게 내려놓는다. 저울의 눈금은 0.1그램도 민감하니까.
하산할 때 산 아래 단풍나무들은 아직 붉은 잎들을 놓치지 않고 활활 타올랐다. 12월로 접어들면 나목으로 돌아갈 때인데 저 나무들은 쓰러지지도 않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떤 고귀한 성품이 저들을 보호하는 걸까. 붉은 별들이 빼곡히 빛나는 단풍나무는 그 자체로 궤도 순행하는 하나의 우주이다. 비행기 프로펠러를 닮은 씨앗도 자체 원동력 멀리멀리 나아간다. 추위에 얼고 바람에 날려가는 최후까지 고운 모습으로 중용의 미덕을 지킨다. 시국이 어수선하다. 이런 때일수록 중심을 지키면서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은 막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