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함께라면 당신은, 주인공

_미셸앙리 전시회

by 남연우


당신은 당신 인생의 주연인가, 조연인가?

태어나 눈떠 보니 이미 정해진 장소와 부모형제들, 인생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설정이 정해진 연극무대와 다를 바 없었다. 누군가에 등 떠밀려 내 선택이 배제된 각본을 들고 태어났다. 그렇다면 설정에 맞춰 호흡해야만 한다. 금수저는 금수저대로, 흙수저는 흙수저대로 눈치코치 봐가며 어릴 때는 떠먹여 주는 밥 먹고 점점 내 손으로 내 밥 먹는다.


내가 진정 주인공이라면 사주팔자 각본을 고쳐 가며 내 진심을 담은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런데 다중인격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만날 때 가면이 없는 맨얼굴들은 진심을 조롱당한 채 상처를 입는다. 가면을 쓴 조연들은 자신의 거짓을 덮기 위해 여러 가면을 상황에 따라 번갈아 쓰고 이익을 탐하며 웃음과 눈요깃거리가 있는 장소에서는 선한 얼굴로 위장을 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꽃들은 그들의 요구에 의해 등장할 뿐 선악을 구별하지 않는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지나간 들판에는 개양귀비 꽃이 많이 피었다고 한다.

땅 속에 있던 꽃씨가 땅이 파헤쳐지면 싹을 틔워 꽃을 피우는데 주로 전쟁터에서 많이 피었다.

인간의 카타르시스를 함께 하지만 가면에 곁들여진 붉은 장미는 가시와 더불어 악의 꽃으로 전락하기도 하거니와 어떤 색상의 꽃을 선택할 때는 순간적인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빨간색- 사랑, 열정, 진심, 용기 등 강렬한 감정

분홍색- 설렘, 애정, 감사, 위로 등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

노란색- 우정, 기쁨, 희망, 새로운 시작 등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

하얀색- 순수함, 평온, 위로, 이별 등 조용하고 차분한 감정

보라색- 신비로움, 특별한 사랑, 존귀함 등 흔하지 않은 특별한 감정

파란색-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희망, 기적, 독창적인 메시지 등 특별한 의미


자연의 꽃들이 점점 사라져 무미건조한 이 계절, 마감 기한 하루 전날 어떤 전시에 필이 꽂혔다.

여름 태양이 지상의 해바라기들을 뜨겁게 달구던 팔월 중순부터 시작한 "Michel Henry Vivid" 전시회 마지막 날 부랴부랴 예매를 하게 되었다. 내 시선에 걸려든 그의 꽃들은 무언가 특별해 보여서 무조건 달려가야만 했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선택하는 정물화는 단순하고 어두운 벽체를 배경으로 하여 꽃병에 꽂힌 꽃의 색상을 강렬하게 대비시켜 부각되길 원한다. 미셸 앙리는 그런 전통적인 화풍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꽃 그림을 완성하였다. 사람의 시선이 창밖을 바라보는 배경 한가운데 꽃병을 둠으로써 꽃이 주인공 역할을 하게 한다. 그 꽃은 풍경을 지배하고 꽃의 색상을 강물이나 바닷물에 잔잔히 덧칠하여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는 효과를 준다. 그리하여 보는 이의 감정마저 지배해 버린다.


창밖을 바라보는 시선을 꽃병 이편에 둠으로써 아름다운 꽃을 투과한 세상은 더 조화롭고 더 아름다워진다.

노을 진 하늘 아래 물든 성당과 꽃은 자연과 문명을 조화롭게 빚어내고 압도적인 분위기로 이끌면서 시시비비에 휘말린 인간의 감정을 하찮게 치부한다. 태양이 뜨고 지는 하늘 아래 건물들은 건재하고 퐁네프 다리 아래 흐르는 강물은 영원하며 그 다리 위에서 꽃다발을 안겨주며 맹세하던 우리의 약속은 흩어져버려도 들판에 양귀비 꽃은 진한 열정으로 끊임없이 피어난다. 아무 일 없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꽃에서 나온다."


"한 송이의 꽃 속에서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본다."


"제가 그리는 꽃다발과 풍경에는 여전히 매우 엄격한 구조가 존재하며, 이는 그림에 힘을 부여합니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은 너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저는 세상을 매우 평온하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저에게 다가오고, 그것이 저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자연은 항상 제 안에 있습니다. 저는 자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모든 것을 기록합니다."


"카사 벨라스케즈 상을 받고 스페인 마드리드로 유학을 갔다.

스페인의 햇빛은 프랑스와 전혀 달랐다.

그곳은 색이 너무 강했고 내가 알던 방식으로는 그릴 수 없었다.

결국, 그 빛에 적응하며 나의 팔레트를 다시 조정해야 했다." _1957년


"파리 14구, 장 드 레클레르크 대로 110번지. 레닌과 마르크 샤갈이 거쳐 간 그 건물의 다락방 같은 아틀리에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35년 동안 나는 매일 붓을 들었다." _1965년


"내가 떠나온 도시, 랑그르. 2000년 비엔날레에 초대받아 대형 캔버스 세 점을 걸었다. 어릴 적 낯익던 언덕과 풍경들 앞에 나는 이제 화가로서 돌아왔다." _2000년


"나는 평생 꽃을 그렸다.

시간이 흐르며 형태는 사라지고,

붉은색만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 붉음은 그림에 대한 나의 열정이었다.

모양은 사라졌고 선도, 윤곽도 흐려졌지만

끝내 그 열정만은 남았다." _2016년



들판과 자연을 바라보고 느끼는 법을 할아버지에게서 배웠다는 미셸 앙리, 그는 전 세계 30개국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빨간 물감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보통 빨간색은 어두운 색으로 분류되는데 그는 자신의 눈이 특이해서 빨간색을 밝은 색으로 보았고 실제로 밝은 느낌을 내는 데 성공하였다.


돌이켜 보면 인생은 꽃이었다.

커다란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손에는 꽃이 들려있었다.

꽃들의 색상과 표정은 달라도 행복을 더 행복하게, 기쁨을 더 기쁘게 장식해 주었다.

영원히 이별하는 슬픔의 순간에도 꽃들은 함께 울어주었다.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해 주는 한 잔의 술과 꽃은 신의 대리인이 주는 위안 아닐까.


빛의 반사를 제어해 빛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임파스토 기법 입체적인 꽃잎들을 쌓아 올려 창가에 둔 미셸 앙리의 초대 속으로 걸어가 보자. 하얀 입김 서린 시스루 커튼을 걷어 올리며 이 겨울의 심연 속으로. 어쩌면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새로운 세상 속으로. 목이 마를 땐 검붉은 체리를 따 먹으며 센강을 건너고 에펠탑을 바라보면서 프로뱅의 핑크장미를 감상하고 파트리시오의 창가에선 붉은 장미 화병 너머 푸른 물빛 지난 추억에 물들어도 좋소.


스키아보니 해변에 이르면 작약을 한 아름 안고 오시오.

향기로운 오월의 작약이어야만 하오.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오월의 향긋한 봄바람을 안고 오시오.

복사꽃이 핀 알자스의 봄도 꺾어 오시오.

그럼 갓 구운 빵과 진한 커피를 내어드리겠소.

그리고 밀린 우리의 지난 이야기 코바늘에 걸고 짜 맞춥시다.


일곱 개의 유리병과 달콤한 체리가 익어가는 이즈미르에서 하룻밤 정박하겠소.

늦가을 밤 단풍나무가 몹시 흔들리는 창가에는 백장미를 단 한 송이 꽂아두시오.

고독한 내 마음의 향기라오.

자 이제 황금빛 가루가 떨어지는 프랑스 운하를 건너갈 참이오.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 여정이 될지도 모르오.

대지의 숨결이 알알이 익혀놓은 검은 포도를 따 먹으시오.

미모사 향기 가득한 베니스에 가 닿으리다.


빛은 축복이오.

저 황금빛 세상에선 어떠한 이별도 없다오.

최후의 눈물 한 방울마저 마르게 하는 그리하여 새로운 꿈을 잉태하는 빛은 기적이라오.

나의 인생, 나의 파라다이스, 나의 꽃과 빛!

당신에게 천천히 스며들어 물들길 바라오.





20251214_122547.jpg 투명성
20251214_123117.jpg Menton 망통
20251214_123148.jpg 성 퀴리아스 성당


20251214_123304.jpg 두 송이 쌍둥이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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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_123446.jpg 장미와 병들
20251214_123526.jpg 인도 장미와 꽈리
20251214_123550.jpg 오렌지색 개양귀비꽃
20251214_123850.jpg 센강, 에펠탑
20251214_124102.jpg 양귀비꽃
20251214_124140.jpg 캐나다의 사과들
20251214_124220.jpg 장미와 체리
20251214_122926.jpg 체리의 계절
20251214_124454.jpg 프로뱅의 장미
20251214_124616.jpg 빨간 하모니
20251214_125018.jpg 꽃다발 그늘 아래에서
20251214_125042.jpg 과일과 장미
20251214_125142.jpg
20251214_125228.jpg 미셸 앙리
20251214_125353.jpg 파트리시오의 창가에서
20251214_125425.jpg
20251214_125747.jpg 황금빛 가루-프랑스 운하
20251214_125805.jpg 장밋빛 인생
20251214_125533.jpg
20251214_125608.jpg 스키아보니 해변
20251214_125917.jpg 여름 들판
20251214_125936.jpg 황금의 베니스
20251214_130023.jpg 붉은 단풍나무와 다리
20251214_130037.jpg 이즈미르에서의 정박
20251214_130411.jpg 포도와 크리스탈병
20251214_130521.jpg 콩시에르주리, 퐁네프다리
20251214_130546.jpg 카스티야 라비에하의 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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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_130942.jpg 알자스의 봄
20251214_131119.jpg 에펠탑과 아이리스
20251214_131138.jpg
20251214_131240.jpg 항구에서 보낸 하루
20251214_131254.jpg 에투알 개선문과 양귀비꽃
20251214_131309.jpg 아침을 여는 꽃다발
20251214_131527.jpg 베니스의 창가
20251214_131642.jpg 꽃이 담긴 그릇
20251214_131611.jpg 미모사 향기 가득한 베니스



"인생은 꽃, 사랑은 그 꽃의 꿀" _ Victor Hu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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