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남연우
올겨울은 눈이 내리지 않습니다
폐지를 싣고 가는 노인의 오르막이
미끄럽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적나라한 위선을 덮어줄 위안이 필요합니다
눈구름 하늘이 펑펑 쏟아져 비상하는 눈사람
순백의 옷 한 벌 어깨에 걸친 나무들이
눈을 털어내며 저 멀리서 걸어오는
하얀 발자국을 내다보던 그 겨울,
아버지의 자전거가 산길을 돌아
집으로 가지런히 길을 내고
깡마른 시래기 걸린 처마 아래
언 발 마침표를 마침내 툭툭 찍던 그 소리
이젠 들리지 않습니다
무쇠 고드름이 자라던 긴긴 겨울밤
어제와 오늘을 잇는 달빛이
올빼미가 사는 검푸른 숲을 다녀갈 적에
잠든 내 머리맡 두서없이 날아든
눈송이들이 아픈 기억만 골라
무진장 삭제하던
적설량 10cm,
내게로 돌아오는 너는 감감무소식
따분한 이 겨울이 어쩐지 삭막해서
동백꽃 선혈 뜨거운 남녘으로
대설주의보 막차 놓칠 걱정은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 무설無雪주의보- 지구온난화로 인해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겨울을 말함.
이 겨울 눈가뭄이 이어집니다
눈이 내리지 않으면 봄가뭄으로,
산불 발생으로 이어진다고 하니 큰일입니다
언젠가는
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우리들의 겨울이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전설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흰 눈은 벌거벗은 나무들에게 순백의 옷 한 벌 입혀주고
거짓으로 얼룩진 세상 새하얗게 덮어주고
내 마음에도 내리고 쌓여
아픔을 지워줍니다
어릴 적 눈길에 고요히 바큇자국 내던
아버지의 자전거가
마른 시래기 걸린 처마 아래
멈추면
아버지는 신발 밑창에 달라붙은 눈을
툭툭 털어내곤 하셨죠
그 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체취도 그립고요
밤새 무거운 하늘은 쏟아지고
지붕 위에 들길 위에 소복소복
추억이 되어 내리던
그 겨울,
냉가슴에 화롯불을 데웁니다..
이 겨울에 핀 우리 집 동백꽃, 나무에서 한 번 떨어져서 또 한 번 선혈 같은 꽃을 피운다!
동백이 있어 다행한 겨울이다 행복한 겨울이다 춥지 않은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