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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an 06. 2019

커피는 아기자기한 맛

76세 서울의 신사 하바님에게 커피란 아기자기한 맛

새해 첫 만남으로 일러스트레이터 하정 작가의 제자이자 팬인 76세 하바님을 뵈었다. 마침 하정 작가의 두 번째 책이 출판되었기에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기도 했다. 10여 년 전까진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취재하는 게 잡(job)이었는데 그 일을 그만둔 후로는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썩 유쾌하진 않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사람과의 만남에 굉장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는 걸 알아서일 게다.


그런데 이 날의 나는 달랐다.


스무 살에, 이십 대에 친한 선배는 말했었다.


"좋은 만남을 위해선 정말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구나."


그랬다. 그 시절엔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았고, 좋은 사람들과 사귀기 위해선 공을 얼마나 들였던지... 대학 졸업반이던 선배가 의대를 가기 위해 수능 공부를 한다기에 헌책방을 돌며 교과서를 구해줬고, 온 인맥을 동원해 재수학원 담임 선생님의 예쁨(?)을 받게 해 줬다.


젊은 날 치기 어리게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한 덕에 잡(job)도 사람들을 취재하고 주인공을 만드는 휴먼 다큐멘터리의 작가가 되었다.


늘 사람과의 만남으로 다이어리가 꽉꽉 채워졌고, 때론 더블이 되기도 해 곤욕을 치를 정도였다.


그랬는데 지금은 사람과의 만남이 참 뜸하다. 다이어리도 한가하다.


그 많던 사람과의 만남들, 인연들... 뭐가 변한 걸까?


에이모 토울스의<<모스크바의 신사>>에 그런 표현이 나온다.


삶이 중간에 끼어들었다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 삶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다시 일을 하고...


그랬던 삶이 이제야 여유가 생기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누군가 강제로 여유를 불어넣어준 건지도 모르겠다. 그 누군가가 하정 작가였는가 보다. 하정 작가 덕분에 새해 첫 만남으로 뵌 하바님은 중단된 만남의 에너지를 다시 충전해준 분이셨다. 다시 좋은 만남을 위해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하바님을 위해 준비해 간 커피 도구를 풀고 커피를 내려드렸다. 커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하바님이 젊으셨을 때 커피 회사에 다니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나 또한 방송국 다니다 카페를 열었고, 커피 회사에 다니기도 했으며 지금은 커피 교육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바님이 내가 커피 내리는 걸 보며 그러신다. 커피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고.


'커피는 아기자기한 맛'


그라인더로 드르륵 커피콩을 갈고, 프렌치 프레스에 커피 가루를 탁탁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고... 프레스를 살살 내려 커피잔에 조심스럽게 커피를 따르는 이 모든 순간이 아기자기한 일들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커피는 '아기자기한 맛'이라는 표현이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커피를 무슨 맛으로 마시냐고 물으면,


"커피는 아기자기한 맛으로 마시죠."


이렇게 대답해야겠다.


그나저나 하바님과의 다음 만남이 벌써 기다려진다. 아기자기한 커피 타임을 얼른 또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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