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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un 22. 2022

커피가 주는 시련

커피 마시려고 마그네슘 먹는 여자

한 달 전쯤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기가 두려워졌다. 낮엔 괜찮은데 한밤중 잘 자다가 왼쪽 팔과 손가락이 찌르르 전기가 오듯이 저려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통증이었다. 산후조리를 잘 못한 후유증이 이제부터 나타는 건가? 나이가 들어 잔병치례가 시작되는 건가? 뭐가 문제일까 생각(만) 했다. 그러다 더 못 참으면 (제발 하는 간절함을 담아) 타이레놀을 한 알 먹고 통증을 잊고 잠들기도 했다.


그러던 경련이 이제는 왼쪽 눈밑까지 찾아왔다. 눈밑 경련은 낮에만 찾아왔다. 밤에는 자느라 몰랐던 듯싶다. 아침에 깨어나 거울을 보면, 바르르 떨고 있었으니까. 작년에도 같은 증상으로 2주를 버티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스트레스가 심하냐는 질문을 하고, 마그네슘을 한 병 안겨줬다. 마그네슘 통을 찾아보니 유통기한이 4월까지였다. 그래도 한 알 먹어봤다. 아무 효과가 없다. 더 먹으려다, 유통기한이 아무래도 찝찝해 과감히(이제야) 3분의 1이나 남은 마그네슘을 쓰레기통에 우르르 부었다. 마그네슘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저걸 3만 원 넘게 주고 샀던 기억이 났다. 총 90 정이니 그중에 30개를 버리면, 거의 만원을 버린 샘이다. 아... 만원이면 시급이다.


작년 2주를 고생한 걸 교훈 삼아 올해는 일주일 만에 병원에 갔다. 같은 병원에 갔더니, 같은 의사가 진료 차트에 적힌 기록을 보고, 작년에 오른쪽이었는데 올해는 왼쪽이냐고 묻고..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스트레스야 매일 받고 살지만, 요즘따라 갑자기 스트레스가 폭발할 일은 딱히 없었다. 의사는 팔다리에 경련이 있지는 않은지, 발음은 잘 되는지 물었다. 이런 질문들의 의도(내 나이는 딱 중년이다)를 알기에 기분이 살짝 안 좋았다. 혈압을 잰다. 110에 70, 평균값이다. 혈압 체크 정도는 핸드폰으로 곧잘 하고 있기에 혈압만은 자신 있는 중년이다.


의사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TEI-Mg Plus를 데스크에서 사가라고 했다. 마그네슘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33,000원을 주고 740mg짜리 마그네슘이 90정 들어있는 티이아이 마그네슘 플러스를 샀다. 바로 2알을 먹었다.


그런데, 의문이다. 나는 왜 마그네슘이 부족한 걸까?


나는 스트레스 지수가 평균보다 극히 낮은 사람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상황(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이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감당할 힘도, 정신력도 평균보다 극히 낮아서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까무러치는 사람이라, 스트레스 관리에 충실한 편이다. 나의 스트레스 관리법은 눈치챘겠지만 커피와 책이다. 어떠한 스트레스라도 커피 한 잔과 책 한 권이면 그럭저럭 견뎌낸다.


답이 나왔다.


스트레스, 커피, 책 이 세 가지에 마그네슘 부족의 원인이 있다.


'커피'였다.


커피가 마그네슘 결핍을 초래할 줄이야. 병원에서 마그네슘을 바로 2알 먹었지만, 진통제처럼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효과는 전연 없었다. 커피 때문이었다. 나는 오늘 아침 매일의 의식처럼 드립 커피를 2잔이나 내려마셨다. 내 몸에는 카페인이 가득했다. 카페인의 이뇨작용은 마그네슘 2알 1480mg 따위 가볍게 오줌으로 배출해버린다.




커피가 주는 시련: 마그네슘 결핍  


커피는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작년에 병원에 갔을 때도 몰랐다. 눈 밑 경련이 커피 때문인 줄이야. 그때, 저 의사가 말한 대로 2주 동안 하루에 2알씩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마그네슘을 먹었고, 스트레스 관리하면서 커피 마시고 책을 봤다. 일주쯤 지나자 눈밑 떨림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 후에도 눈 밑 떨림이 간혹 나타나곤 했지만 마그네슘을 먹으면 며칠 후 호전됐다. 대수롭지 않게 마그네슘을 상비약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번엔 눈 밑 떨림에 팔다리 저림 증상까지 풀바디세트로 오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건 분명 내 몸이 보내는 응급 신호였다.


마그네슘 결핍에 대해 찾아봤다. 생각지도 못했던 '커피'가 눈에 띄었다.


커피의 가장 중요한 성분인 '카페인'이 문제였다. 카페인은 좋은 점도 있지만, 분명 나쁜 점도 있다. 그 나쁜 점 중에 경련과, 떨림이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던 팩트였다. 그런데 나한테는 적용하지 못했다. 지식과 삶이 일치되지 못하는 사람이 나였다. 단지 카페인 때문에 잠 못 자는 일이 없다는 것에만 만족하고, 나에게는 카페인 부작용이 전연 없다고 단언했다.


*카페인과 마그네슘

마그네슘은 천연 진정작용을 한다고 한다. 근육의 수축과 이완에 관련이 있다. 내가 마그네슘 부족으로 겪은 증상과 동일하다. 그런데 카페인은 이뇨 작용을 통해 마그네슘을 몸 밖으로 필요 이상으로 배출시킨다. 보통은 음식물로 마그네슘이 보충되지만,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마그네슘을 강제로 아웃시킨 샘이다. 그러니 마그네슘을 강제로 먹어줄 수밖에. 물론,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으니.


나는 작년부터 원두 판매를 앞두고 로스팅과 테이스팅을 엄청나게 해대고 있다. 커피를 취미로도 마시지만, 업으로도 마시고 있다. 식약처는 카페인 적정 섭취량으로 하루 최대 400mg 이하를 권고하고 있다. 내가 주로 마시는 드립 커피 한 잔 150cc 정도에는 110~150mg의 카페인이 포함돼 있다. 나는 드립 커피를 평균 4잔 정도 마신다. 최소 110으로 잡아도 440, 최대 150으로 잡으면 600mg이다. 카페인 과다 맞다.


카페인 과다로, 40대 초까지는 쌩쌩(과장이다. 분명 쌩쌩까지는 아니었다.)했다. 40대 중반에 접어드니 몸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내가 카페인에 이렇게 무릎 꿇을 줄은 몰랐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실은 죽을 때도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수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눈 밑이 떨리는 할머니, 죽기 전에 커피 마시고 눈 밑이 바르르 떨리는 최후라니...


오늘은 에스프레소 딱 2잔밖에 안 마셨다. 바로 커피를 끊으면(그럴리는 없지만) 금단 증상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스트레스 지수가 급속도로 올라갈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디 눈 밑만 떨리겠는가. 온몸이 난리지. 그러니, 눈 밑이 떨린다고, 마그네슘을 먹는다고 커피를 끊는다는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마그네슘을 먹는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끊지 못할 바에야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커피를 한 잔만 마셔도 밤에 잠을 못 자는 지인을 위해 디카페인 생두를 사두었는데, 디카페인 생두를 나를 위해 볶을 줄은 몰랐다.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고, 마그네슘 2알을 먹는다. 눈 밑 떨림이 사라졌다.  





"커피, 네가 주는 시련을 달게 받으마. 마그네슘 먹고 카페인에 단련될게. 나는 너를 놓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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