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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ul 01. 2022

여름 커피의 냄새

여름은 커피의 계절

겨울은 우리를 침범하고 여름은 우리를 흡수한다.

                                         -다니엘 페나크, <몸의 일기>, 196쪽


여름은 습기다. 그 강렬하다는 여름 태양도 흡수해버린다. 태양은 없다. 다니엘 페나크는 <몸의 일기>에서 '겨울은 우리를 침범하고 여름은 우리를 흡수한다.'라는 표현을 했다. 여름이 우리를(나만 흡수된 게 아니고, 당신만 흡수된 게 아니다.) 흡수해버렸다. 겨울에 침범당했던 굽은 어깨며 얼얼했던 뺨과 귓불도 모두 흡수됐다. 여름에.


이런 여름 아침에 커피를 내린다. 커피 향기가 퍼지지 않는다. 늘 공기의 흐름에 마구 날아가 버리던 커피의 향기가 갇힌다. 커피를 내려두고, 아이를 아파트 인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10분 컷으로 집에 돌아온다. 출입문을 여는 순간, 아! 신음이 흘러나온다. 이토록 에로틱할 수가 없다.


커피가 집 안을 점령해버렸다. 황홀하다. 커피 점령군이라니, 백만 번 환영이다.


원두를 갈았던 커피가루의 냄새며 핸드드립으로 내려둔 커피 가루와 물이 만나 집이 커피로 흡수돼버렸다.


집 안 여름 공기 속 습기 알맹이 안에 커피가 갇혔다. 이런 게 바로 캡슐커피가 아니겠는가. 습기라는 캡슐 속에 커피가 갇혔다. 오늘의 커피는 '케냐'. 커피는 똘똘하게도 제습기능을 타고났다. 습기 캡슐을 당당히 뚫고 커피 향기를 온 집안에 폭죽 터뜨리듯 터뜨린다. 이런 환대라니.


커피 냄새가 이토록 짧은 반경을 그리는 순간은 장마철뿐일 듯싶다. 커피의 향이 날아가다 습기의 포획에 걸려 더 이상 날아갈 수가 없다. 습기가 가둬버린 커피의 향은 묵직하다. 코를 킁킁대며 향기가 모조리 콧속으로 빨려 들어갈 정도로 향이 초밀착되어있다. 향기가 좋다고, 너무 코를 킁킁대면 안 된다. 콧속으로 일시에 눈처럼 꽁꽁 뭉쳐진 커피 향기가 쏙 빨려 들어갈지 모른다. 아니, 코를 커피 향기로 뭉쳐진 눈 뭉치 같은 커피 뭉치가 코를 뚫고 폐 속으로 직진할지도 모른다. 재채기가 나오기도 한다.


여름엔 커피 원두를 아주 적게 자주 사다 먹는 게 좋다. 원두 가게에서도 여름은 커피 원두 보관에 애를 먹는 시기이다. 커피의 본래 향기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나고, 시체가 되어버린 커피콩에선 쩐내며 담뱃재 같은 악취가 난다.


여름엔 냄새가 숨을 곳이 없다. 봄, 가을엔 바람에 숨고, 풍경에 숨는다. 겨울엔 냄새도 얼어버린다. 하지만 여름엔 우리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듯이, 냄새도 실오라기 하나의 냄새까지도 발가벗는다. 실오라기에도 냄새가 있다는 걸, 여름은 증명해낸다.


냄새, 냄새, 냄새, 냄새, 냄새......


*후각은 분자 탐지기로 기체 분자의 독특한 냄새를 감지한다. 인간의 후각 수용기는 약 1천만 개 정도라고 한다. 참고로, 개는 약 10억 개다.


최근, 2022 월드 컵 테이스터스 챔피언십에서 부산 먼스커피의 문헌관 바리스타가 우승을 차지했다. 8분 동안 24잔의 커피를 마시고 다른 맛의 커피를 가려내야 하는데 3분 8초 만에 만점을 받았다. 문 바리스타는 평소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맛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위해 훈련을 계속해왔다고 한다.


커피 원두를 사면, 커피 봉투엔 테이스팅 노트, 플레이버라는 이름으로 그 커피가 가지고 있는 향과 맛에 대해 적어놓는다. 정말 그 맛이 날까?


알면, 그 맛을 찾을 수 있다. 알면 그 맛이 느껴진다. 알면 그 맛이 난다. 맛도 훈련이다. 맛도 학습이다.


모르고 먹으면 그 맛을 찾기 어렵다. *냄새 특질은 아직도 수수께끼 영역이라고 한다. 냄새를 표현할 구체적인 용어가 없기 때문이다.


*냄새의 정체, 냄새의 이름을 알면 냄새에 대한 지각이 바뀐다. 우린 '여름의 냄새' 여름이 가지고 있는 냄새의 이름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1916년 Henning은 '냄새 프리즘'이란 걸 제안했다.


출처:  Henning의  '냄새 프리즘', E. Bruce Goldstein, <감각과 지각> 제7판, 김정오 외 옮김, 시그마프레스, 402쪽.


그렇다면, 커피의 냄새는 어떨까? 커피의 냄새에도 이름이 있다.

출처:  SCA홈페이지에서 9.99$에 구매한 한국어 버전 커피 플레이버 휠

저게 다가 아니지만, 현재 커피에서 나는 맛과 향에 대해서 세계커피협회가 잡아놓은 기준이 되는 표이다. 카운터 컬처 커피에서도 플레이버 휠을 만들어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나누고 있는데 아래 표이다. 커피협회에서 만든 플레이버 휠보다 좀 더 촘촘하고 직관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아직도 커피의 냄새는 미지의 영역이 많다.

출처:  counterculture coffee


사냥개는 임무가 주어질 때, 먼저 사냥감의 '냄새'를 훈련받는다. 우리는 얼마나 냄새에 대한 훈련을 받았을까? 시각에 대한 훈련은 그래도 그럭저럭 받는다. 이를테면 '색'에 대해서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빨강, 파랑... 하면서 색을 구별해 배운다. 태양은 빨강, 하늘은 파랑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사물과 연결시켜 배운다. 자라면서 시각에 대한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인다.


반면, 후각은 어린 시절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이를테면, 태양의 냄새, 하늘의 냄새를 배우진 않았다. 냄새는 체험해야 안다. 냄새는 공동체적인 시각 학습과 다르게, 개인의 영역 혹은 미지의 영역이다. 시각의 호불호는 크지 않지만, 후각의 호불호는 유니버스급이다. 내가 맡는 냄새를 타인은 아예 맡지 못하기도 하고, 내가 열렬히 좋아하는 냄새를 타인은 혐오하기도 한다.


맛있는 걸 시각으로 상상할 수는 있지만, 후각으로 상상하기는 어렵다. 뇌가 시각은 강한데 후각은 약하다.  맛있는 요리를 표현할 때도, 우린 냄새보다는 시각적인 영역에서 주로 표현한다. 냄새를 표현할 땐 시각적으로는 그렇게 극찬하면서도 후각적으로는 몇 마디 없다. 냄새가 끝내준다, 이게 다다. 그런데 그 끝내주는 냄새란 대체 뭘까? 어떤 언어로 표현될까?


커피 냄새의 언어도 극히 제한적이다. 사실 커피에서 나는 냄새는 각기 다르고, 그 냄새의 종류도 많은 데 말이다. 말을 이렇게 하지만, 나도 커피의 냄새를 표현하는데 말문이 막힌다.    


출처: 후각 체계의 구조, E. Bruce Goldstein, <감각과 지각> 제7판, 김정오 외 옮김, 시그마프레스, 405쪽.


냄새를 맡는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위의 표처럼 우리 콧구멍의 세계는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의 냄새 표현으로, 복합적이라는 말을 쓴다. 냄새가 단순하지 않고 다양한 향기가 나는 걸 일컫는 말일 텐데, 그 복합적인 맛을 표현해 낼 냄새의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누군가, 그 복합적인 냄새 중 하나, 또 하나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에야 비로소 하나의 냄새로 자립할 수 있을 터이다. 그때까진 이름 없이 그저 '복합적인' 냄새로 머물러야 한다.


*복합적인 냄새를 지각하는 일에는 피질의 고차 영역이 관여한다. 단순한 냄새야 생존본능이든 단순 반복으로 깨우칠 수 있지만, 복합적인 냄새의 지각은 스마트함을 요구한다. 세계적인 커피 대회에서 커피의 향과 맛을 모두 맞추었다는 것은 엄청난 훈련을 치러냈다는 의미이다. 뇌가 후덜덜하게 당했을 것이다. 나는 그의 후각을 담당하는 뇌가 궁금하다. 그에겐 여름 커피의 냄새가 어떻게 느껴질까? 어떤 언어로 표현될까? 궁금하다. 궁금해.


내게, 여름은 냄새의 계절, 커피의 계절이다. 



참고

*E. Bruce Goldstein, <감각과 지각> 제7판, 김정오 외 옮김, 시그마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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