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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ul 26. 2022

낯선 사람과 커피 마시기

낯선 사람과 커피를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모든 소설은 작가와 독자가 동등하게 기여한 협업의 결과물이며,
낯선 두 사람이 지극히 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저는 단 한 한도 본 적이 없고 영원히 아는 사이가 되지 못할 사람들과
평생 대화를 나워 왔으며, 앞으로도,
숨이 멎는 날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오직 그것만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폴 오스터, 450쪽



폴 오스터가 직접 뽑은 산문들을 엮은 책, [낯 선 사람에게 말 걸기]에서 책의 제목과도 같은 문학상 수상 연설 중에 일부다. 소설 속에서 작가와 독자는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하지만 평생 '대화'를 나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왜 하는지 모릅니다.
만일 그걸 안다면
아마도 그 일을 할 욕구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같은 책, 447쪽



폴 오스터는 책을 쓰는 일을 자신이 왜 하는지 모른다며, 만일 그걸 알면 욕구를 느끼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독자들도, 정확히 책을 왜 읽는지 실은 모른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책을 권하는 사람은 많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적다. 어쩌면, 책을 읽어야 하는 욕구에 당위가 붙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해야만 ~한다.' 당위성을 거부한다.


하지만, 책을 꼭 읽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읽는다. 읽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폴 오스터가 책을 쓰는 일을 왜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독자도 책을 읽는 일을 왜 하는지 모른다. 다만 읽고 싶다.



커피 타임, 셀프 토크  


혼자 갖는 커피 타임은 어쩌면 작가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 듯이, 내가 낯선 나에게 말을 거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커피 타임을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표현으로 쓰곤 한다. 자동차에 브레이크를 걸면 자동차가 멈춘다. 시간에 브레이크를 걸면 시간이 멈출까? 시간을 멈출 수 있을까? 시간에 브레이크를 거는 도구로 '커피'를 전제했다. '커피 브레이크', 물론 그게 꼭 커피 일 필요는 없다. 다만, 멈춤이 필요한 순간일 뿐.


커피 브레이크 타임을 혼자 갖게 되면, 낯선 나와 만나게 된다. 폴 오스터가 글을 매개로 낯선 독자를 만나 말을 걸듯이 커피라는 매개로 낯선 나를 만나 말을 건다. '멍을 때리다' 만큼 적절한 표현도 없을 것 같다. 멍하게 낯선 나를 낯설게 바라본다. 자꾸 멍을 때리면, 자꾸 나를 바라보면 낯선 내가 가까워진다. 남보다 나를 모르던 낯선 내가, 나를 바라본다.


나의 안녕을 나에게 묻는다.



낯선 사람과 커피 마시기


낯선 사람과 전 세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대화 주제는, 폴 오스터도 책에서 말하고 있지만 '날씨'다. 날씨만큼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좋은 소재는 없다. 낯선 사람과 길거리가 아니라, 카페에서 만난다면, 날씨 이야기에 이어 '커피' 이야기를 하면 날씨 이야기에 이어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


이를테면, '요즘 유행하는 커피', '좋아하는 커피', '핫한 카페' 들에 관한 이야기만 몇 개 나누어도 낯선 사람과의 거리감이 조금은 줄어든다.


만약,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면 '커피 마실 때 코끼리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알아요?' 같은 생뚱맞은 이야기를 던지면 좋다.


"(당연히) 왜요?"

"코끼리 생각만 나거든요."

"왜요?"

"지금 코끼리 생각나지 않으세요? 아기 코끼리, 엄마 코끼리... 코끼리는 코로 커피잔을 휘감아서 커피를 마실까요?"

"진짜 코끼리 생각만 나네요."

"근데, 커피 마실 때 코끼리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알아요?"

"아, 하하하 당했네요."


낯선 사람과 커피 마실 때 코끼리 이야기를 하면, 정말 쓸데없는 이야긴데 쓸 데 있게도 낯선 두 사람의 정신적 거리가 살짝 가까워진다.




참고)

-폴 오스터,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 사계절, 2022

-코끼리 이야기: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 나오는 내용으로, '핑크색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 머릿속은 온통 핑크색 코끼리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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