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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May 24. 2022

에스프레소의 나라: 이탈코리아

에스프레소가 유행일 줄이야

에스프레소 바가 유행이다.


에스프레소가 유행일 줄 전연 예측하지 못했다. 에스프레소가 유행이라니, 여기 이탈리아 아닌데, 코리안데, 이탈코리아가 되어가는 건가?




에스프레소의 나라: 이탈코리아


에스프레소가 유행이라니 (아직도) 얼떨떨하지만 대환영이다. 에스프레소를 즐기지만, 정작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일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에스프레소라는 메뉴의 성공 확률은 그동안 극히 희박했다. 그런데 에스프레소가, 그것도 에스프레소가 메인인 에스프레소 바가 유행이라니... 웬일일까? 갑자기 왜? 아메리카노, 코리아노의 나라가 어쩌다 에스프레소의 나라, 이탈코리아가 되어 가고 있는 걸까?


에스프레소 바가 그전에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가로수길에 에스프레소 한 잔에 1유로의 가격으로 에스프레소를 파는 작은 카페가 생겼다며 청담동 도련님이라 불리던 지인이 ('니네 동네는 이런 거 없지'...라는 뉘앙스를 깔고서) 자랑했었다. 나에게 에스프레소를 전수하기도 했던 청담동 도련님은 어느 날 돌연 (이번엔 우리 동네 이렇게 비싼 동네라는 뉘앙스를 깔고서)한 숨을 쉬며 말했다.


"커피 한 잔 평균 단가가 5천 원인 동네에서 1유로로 버티긴 힘들지. 내가 하루에 세 번 들러 마셔도 5천 원이 안 돼. 이걸 좋아해야 돼? 슬퍼해야 돼?"


결국, 1유로 에스프레소 카페는 문을 닫았다. 청담동 도련님은 안타까워하며 언젠가 자신이 건물을 지으면 1층에 작은 카페를 열겠다고 장담했다. (청담동 도련님은 정말 본인 소유의 건물을 지었는데, 1층에 작은 카페를 열지는 않았다. 은행 지분이 3분의 2라 어쩔 수 없었다며 가진 자의 호기를 부리며 찌질하게 변명 했다.)


청담동 도련님과의 저 일화가 2010년대에 일어났던 일이다.


그런데 2020년대인 지금 1유로짜리 에스프레소를 파는 작은 카페, 에스프레소 바가 유행이다.



코로나와 에스프레소:  No, 롱 스테이! Yes, 숏 스테이!

 

우린 보통 카페에 가면 롱 스테이 한다. 그러려고 카페에 가고, 그래서 커피를 시킨다. 그런데 코로나는 어딜 가든 숏 스테이를 권한다.


카페를, 커피를 숏 스테이 하라고 한다.


이건, 아메리카노, 코리아노의 나라에 없던 규칙이다.


머무르지 말고, 음료를 받으면 바람같이 문 밖으로 나가라 한다.


에스프레소 바는, 이런 코시국에 번창했다. 에스프레소 바는 기본적으로 머무르는 곳이 아니다. 머무를 구조도 아니다. 바에 서서 에스프레소가 나오는 대로 한 입, 두 입에 걸쳐서 후루룩 마시고 바람처럼 사라지기에 좋은 음료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고, 이전과는 다른 커피 경험을 선사한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면, 커피를 마시는 일상이 되게 가벼워진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려면 시간이 제법 걸린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는 정말 길어야 5분이다. 보통의 카페는 다양한 메뉴가 있고, 고객은 이 다양한 메뉴 중 한 가지를 고르게 된다. 고객은 다양한 커피 메뉴를 주문하고, 당연하게도 음료의 픽업 시간은 길어진다. 그런데, 에스프레소가 메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에스프레소는,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20~30초 내에 빠르게 추출된다. 이렇게 추출된 음료에 첨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참고로, 리사르 커피는 고객이 오더를 하지 않는 한 에스프레소에 설탕이 들어가는 것이 디폴트 값이다.


아무리 줄이 길어도, 에스프레소 바의 줄은 금세 줄어들고, 내가 마시는 에스프레소 잔의 커피도 금세 줄어든다.


또한, 에스프레소가 (그동안 마셔보지도 않고 가졌던) 선입견과는 다르게 맛있다. 아메리카노는 그 맛있는 에스프레소에 물을 탔다. 우린 엑기스(진액)를 좋아하는 민족이 아니던가. 무슨 무슨 엑기스(매실, 오미자, 홍삼......)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몰라서 그 맛있는 엑기스(진액)물만 몽땅 탄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물론, 엑기스(진액)에 물을 적당히 타면 맛있다. 그런데 에스프레소 자체가 물이 적당히 들어간 엑기스(진액)라는 게 팩트라는 거.



에스프레소란 무엇인가?


커피 원두를 아주 가늘게 갈아서 뜨거운 물에 압력을 가해 진하게 내린 적은 양(엑기스, 진액이 맞다)의 커피가 바로 에스프레소다.


에스프레소 1샷(25ml): 7~8g의 커피 원두, 88~92도의 뜨거운 물, 9 기압 압력으로 추출된 음료


주문과 동시에 뽑아내는 에스프레소는 최상의 향과 맛이 녹아있다. 크레마(크림, 지방)가 살아있다. 커피 회사에서 일 할 때 '커피 하트'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갓 뽑은 에스프레소는 심장이 뛰는 것처럼 신선하게 하트가 살아있는 커피, 시간이 지난 에스프레소는 심장이 멈춘 것처럼 '하트가 죽었다.'라는 의미로 썼다. 하트가 살아있는 커피와 하트가 죽은 커피로 만든 아메리카노 혹은 라떼의 맛은, 확연히 다르다. 말해 뭐하겠냐 싶지만, 커피 하트가 살아있는 에스프레소로 만든, 커피가 1000배 맛있다. 그러니, 에스프레소는 뽑은 후 즉시, 1~2분 내로 마시는 게 가장 맛있다.


좋은 에스프레소는 쓴맛, 단맛, 신맛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어느 한 가지 맛이 도드라진다면 밸런스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보통 에스프레소는 신맛, 단맛, 쓴맛 순으로 추출이 된다. 에스프레소를 서빙할 때 스푼도 같이 준다. 대개는 설탕을 넣어 주지 않고, 설탕을 따로 주거나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 스푼을 기본으로 주는 건 설탕을 넣어서 저어 마시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스푼을 기본값으로 주는 이유는 에스프레소 한 잔에 담긴 저 다양한 맛을 섞어 마시라는 의미다. 그냥도 마셔 보고, 섞어도 마셔보자.


에스프레소의 맨 위에 떠 있는 것은 크레마라 불리는 크림 성분이고, 그 아래 수용성 성분이 있다. 처음 한 입에 에스프레소를 마셔보고, 섞어 마시면 맛이 확연하게 다르게 느껴진다. 물론, 설탕을 넣고 섞어 마시면 그 맛이 또 다르다.  


어떤 에스프레소는 신맛이 도드라지거나, 향이 별로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또는 너무 쓴맛만 거나 혀가 아리기도 하다. 이건 나쁜 에스프레소다. 원두가 나쁘거나, 기계 세팅이 잘 못 되었거나, 바리스타의 추출이 잘 못 된 거다.


단언컨대, 좋은 원두에  잘 세팅된 머신으로 숙련된 바리스타가 뽑은 에스프레소는 정말 맛있다. 에스프레소는 맛있는 게 디폴트 값이다.


에스프레소는 아메리카노와 다르게 마시고 나면, 입 안에 질감이 확연하게 남는다. 아메리카노처럼 개운하게 입 안을 헹구는 게 아니라, 커피가 입 안에 머물고 있다. 진한 향, 기분 좋은 쓴맛, 감칠맛 등이 입 안에 남는다. 남는 게 정상이다. 그것도 기분이 좋게 남아야 한다.


맛있는 에스프레소는, 심지어 가격까지 기분을 좋게 한다.


보통,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면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의 가격은 동일하거나 에스프레소 가격과 아메리카노의 가격이 500원 정도, 그러니까 물 값 정도만큼 근소한 차이가 난다. 그런데 에스프레소 바의 에스프레소 가격은 1500원, 2000원 선에 형성되어 있다.


만만하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하다고 맛까지 만만한 건 아니다.


1500원짜리 에스프레소, 기깔나게 맛있다.


나는, 에스프레소에 2008년 12월에, 위에서 말했듯이 청담동 도련님에게 처음 배웠다. 청담동 도련님과 만나기 전까지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2009년엔 카페를 차렸고, 나의 카페에서 줄기차게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마셨다. 매일 아침 카페 오픈 후 첫 커피는 더블 에스프레소였다.


마시다 보니 궁금했다.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이라는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는 어떤 맛인지?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는 '삶'이었다. 어딜 가든 카페가 지천이었고, 누구나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에스프레소는 당연하게도 값싸고 맛있었다.


1유로의 행복이었다.


그 행복을 2020년대의 코리아에서 느낄 줄이야.


에스프레소의 유행을 주도했다는 '리사르 커피'의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깜짝 놀랐다. 클래식한 에스프레소의 묵직한 맛에 화들짝 놀랐다. 비정제 설탕의 달콤함이 커피의 쓴맛을 기분 좋게 감싸준다. 이런 밸런스의 에스프레소를 1500원이란 가격을으로 책정하다니, 그것도 청담동에서. 이건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게임인데, 부디 엄청난 회전율이 밸런스를 맞춰주기를 바란다.


에스프레소, 초콜릿 파우더가 토핑 된 스트라파짜토와 원두를 주문했다. 청담동 리사르 커피 가격 실화다. 메인 커피인 카페 에스프레소의 가격이 1,500원이다.



위 사진은 이탈리아 베로나 광장에 있는 동네 카페 메뉴판이다. 문득 저 메뉴판과 지금, 우리나라 에스프레소 바의 메뉴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탈리아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에스프레소 바에 간다면, 거의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여긴 어디? 이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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