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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May 13. 2022

알쓸커잡 카페라떼

알아두면 쓸데없는 커피 잡학사전: 카페라떼

커피와 우유


커피는 단일 음료로도 뛰어나지만, 우유와 결합하면 환상적인 시너지를 낸다. 스타벅스에 가면 우리나라 커피 전문점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하나 눈에 띄는데, 컨디먼트 바에 우유 피처가 준비돼 있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은 아메리카노에 우유를 타서 마시는 걸 아주 좋아한다. 아메리카노 주문할 때 꼭 ‘With Milk라고 말한다. 가끔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면 다시 물어야 한다. ‘Room for Milk?” 그럼 당연하다는 듯이 눈썹을 올려 뜨며 미소를 짓는다.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이 말이다. 우유가 스팀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유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메리카노에 시럽을 타면 탔지, 물을 더 타면 탔지 우유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먹어보면 안다. 아메리카노에 우유를 타면 맛이 이도 저도 아닌 밍숭 밍숭 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그 맛을 좋아한다.


우유는 5%의 탄수화물과 87%의 수분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우유에서 단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탄수화물, 젓당이라는 이당류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고, 우유가 필요하면 카페 라떼를 마신다.


© enginakyurt, 출처 Unsplash


라떼 라떼 라떼


자로고 우유가 들어간 커피라 하면 라떼다. 라떼는 이탈리아 말로 우유다. 카페 라떼, 단순하게 커피 우유다. 이 카페 라떼 잘하는 집이 드물다. 아무리 커피를 잘 뽑아도, 커피에 섞이는 우유의 제조가 엉망이면 그 라떼는 망친다. 따뜻한 카페 라떼라면 스티밍이 매우 중요하다. 우유가 일단 신선하고, 냉장 보관되어 일정한 온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프랜차이즈에서는 상온에 노출된 우유의 시간을 30분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사실 장사가 잘 되는 카페라면 상온에 30분 이상 우유가 방치될 리는 없다. 카페에서 사용하는 우유는 1000ml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카페에서는 주로 중간 크기의 피처를 사용하는데, 중간 피처의 크기에 카페 라떼 레귤러 사이즈에 사용하는 우유의 양은 250ml 정도로, 우유 한 팩으로 4잔의 라떼를 만들 수 있다. 바쁜 러시 타임도 아닌데 우유가 상온에 나와 있다면, 저건 뭐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가져야 한다. 맛있는 라떼를 마시려면 말이다. 게다가 나의 라떼에 들어가는 우유가 냉장고에서 막 꺼낸 미개봉 우유라면 금상첨화겠다. 밀크 피처에 우유를 적당량 따르고, 스팀 봉의 스팀을 한번 빼준 다음 깨끗한 행주로 스팀봉을 한 번 닦아내고 자연스럽고 전문가다운 솜씨로 스티밍을 한다면 이제 거의 다 되었다. 소리를 들어보자. 스팀 소리가 아름답게 들려야 한다. 귀에 거슬린다면 분명 우유가 게거품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라떼의 우유는 비단처럼 부드러워야 한다. 실키 하다는 표현을 한다. 실키한 밀크의 원리는 우유에 아주 작은 공기를 주입하고, 그 공기구멍들을 롤링의 힘을 이용해 잘 게 부수어 준 다음, 우유를 데우는 것이다. 이때 바리스타의 자질, 레시피, 손님의 요청에 따라 거품을 얇게 만들 수도 있고, 두껍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우유의 온도도 65~70도라는 교과서적인 매뉴얼이 있다. 우유가 70도 이상 온도로 올라가면 가열취라는 이른바 계란 썩은 냄새 같은 것이 나는데 우유 속 단백질이 파괴되는 온도가 되면서 나는 냄새이다. 우유는 차가울 때보다 적정 온도로 데워주면 단맛이 좋아진다.


커피와 우유가 만나면 ‘맛있는 맛’의 포텐이 터진다. 라떼가 입에 닿는 순간, 우리 혀는 춤춘다. 단백질은 맛이 좋고, 분해되면 맛이 더 좋아진다.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합하여 감각되는 것과 달리 감칠맛은 따로 감각된다. 단백질의 특별한 맛보다 우리는 변성된 단백질의 향취를 사랑한다. 생우유를 그냥 먹는 것보다 우유를 스티밍 해 우유의 단백질을 변형시키면 맛과 향이 달라진다.


라떼의 이상적인 온도는 적성 선을 넘지 않는다면, 60도 내외로 추천하고 싶다. 참고로, 블루보틀의 추천 우유 스팀 온도는 62도이고, SCA는 55도를 권장하고 있다.


60도 내외로 스티밍 한 라떼를 마시면, 일단 뜨겁지 않고, 따뜻하다. 혀가 좋아하는 온도다. 우유의 단맛, 고소한 맛 등이 커피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과 어우러져 기막힌 향미를 낸다. 우유가 뜨거워질수록 커피의 맛도, 우유의 맛도 개성을 잃는다. 우유의 단맛을 가장 느낄 수 있는 온도의 적정선을 넘지 말기 바란다.



우유 양에 따른 라떼의 분류


*우유 용량과 에스프레소와 우유, 거품이 포함된 음료 무게, 에스프레소 투샷 50~60ml 기준


라떼 우유 용량 250g/음료 무게 280~320g
플랫 화이트 우유 용량 230g/음료 무게 270~290g
숏라떼 혹은 라떼 숏 사이즈, 피콜로라떼 우유 용량 160g/음료 무게 210~230g
(피콜로는 이탈리아 말로 작다라는 의미로 피콜로라떼는 작은 라떼다.)
꼬르따도 우유 용량 60g/음료 무게 120~150g
(꼬르따도는 스페인어로 자르다의 의미가 있고,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우유가 잘라준다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보통 커피와 우유의 비율이 1:1이다.)


이렇게 나눴지만, 에스프레소 종주국 이탈리아에 가면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카푸치노 하나로 통일된다. 이들 카푸치노 류, 혹은 라떼 류 음료는 기본적으로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들어간다. 여기서 각 음료들은 에스프레소 샷의 길고 짧음, 우유 양의 많고 적음, 우유 거품의 양과 밀도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이름에 따라 커피의 풍미와 바디감에서 차이가 난다. 라떼를 세심하게 분류했다는 건, 그만큼 우유 스티밍에 자신이 있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그 예감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밝혀둔다. 이른바 게거품이 가득한 이건 도대체 무슨 라떼인지 알 수 없는 외계 라떼를 만날 때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팁, 카페에 들어가면 바에 누가 있는지, 머신을 잡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또는 세분화된 카페라면, 스티밍과 픽업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세심하게 살피기 바란다. 보통 프랜차이즈 카페는 러시 타임에 에스프레소를 뽑는 직원, 우유 스티밍과 픽업을 보는 직원으로 구분되어 일을 한다. 관상을 잘 보기 바란다. 우유를 스티밍 하는 직원이 과연 내 라떼의 스티밍을 어떻게 해낼 것인지 말이다.


내가 커피 회사에서 일할 때, 스티밍 음료 중 직원들이 어려워했던 메뉴가 ‘플랫 화이트’였다. 플랫 화이트 주문이 들어오면, 다른 음료는 잘하다가도 나를 불렀다. 나를 부른 이유는, 내가 스티밍을 기가 막히게 잘해서라기 보다, 고객의 ‘환상’ 때문이었다. 플랫 화이트를 시키는 고객들은 대부분 일반 라떼 보다 플랫 화이트에 대해 이상하리만치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일반 라떼와는 모양도 다르고, 맛도 달라야 한다고,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은 그 ‘환상’에 대한 부담감을 내게 떠넘겼던 것이다. 물론 매뉴얼이 있었지만, 매뉴얼 대로 플랫 화이트를 만들어도 직원들은 자신 없어했다. 손님들의 ‘환상’에 실망을 안겨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나라고 별 수 있을까? 그냥 우기는 거다. 내가 만든 음료가 ‘플랫 화이트’라고. 실제 내가 주로 만들어 마시는 라떼가 플랫 화이트의 매뉴얼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커피의 진한 풍미가 살아있게, 우유 양은 적게, 스팀 폼은 최대한 실키 하게, 마무리로 라떼아트를 가미할 것. 그게 다다. 플랫 화이트 못지않게 요즘 숏라떼가 인기다.


블루보틀에선 지브롤터(The Gibraltar)로 불리는데, 바리스타들이 휴식 중에서 바에서 물 잔으로 쓰이는 지브롤터 브랜드의 잔에 에스프레소 샷 37ml에, 60도 내외로 아주 실키한 폼으로 가볍게 스티밍 한 우유 75ml를 올려 마끼아또와 카푸치노 중간되는 라떼를 만들어 마셨다. 직원들은 이 음료를 지브롤터 브랜드의 잔에 마셨기 때문에 그냥 지브롤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걸 본 손님들이 그게 뭔지 궁금해했고, 자신들도 같은 음료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메뉴화 되었다. 이름도 처음 직원들이 직관적으로 붙였던 그대로 지브롤터가 되었다.


장난 삼아 집에서 내가 만들어 마시는 라떼에 ‘미자라떼’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자는 개명 전 이름이다. ‘미자’로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헌정 같은 거랄까? 미자라떼를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페 싱글 원두, 리스트레토 샷 2개에, 우유량은 70ml, 스티밍 온도는 57도, 폼은 극강의 실키함으로.


나만의 라떼를 만들어 보자. 라테에 이름도 붙여 보자. 에스프레소 양, 스팀 우유 양, 거품도 넣어보고, 좋아하는 라테 아트가 있다면 라테 아트 그림도 그려 넣어 보자.




라떼 가이드


라떼를 주문할 때, 우유 양을 적게 해달라고 하거나, 우유 거품 많이 혹은 적게, 우유 온도를 조금 낮게 혹은 약간 높게 주문해보자. 당신만의 라떼를 찾을 수 있다 참고로, 스타벅스에서는 라 떼 숏 사이즈로, 투썸플레이스에서는 숏라떼라는 라떼를 마시면 기존의 라떼와 조금 다른 맛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플랫 화이트가 없다고 실망하지 말자, 라떼를 주문하면서 우유 양을 좀 적게, 폼을 얇게 해달라고 하면 된다. 당신은 당신만의 라떼를 마실 충분한 권리가 있다. 나의 최애 라떼는 경기도 평촌에 있는 장문규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시그니처 로스터스의 라떼, 2등은 프릿츠 커피 컴퍼니의 라떼, 3등은 커피 리브레의 플랫 화이트다.


우유 스티밍 온도는 60도 내외를 추천한다.



참고)

-James Freeman, Caitlin Freeman, and Tara Duggan, 『The Blue Bottle Craft of Coffee』, TEN SPEED PRESS, 2012, p.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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