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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원짜리 기도

by 식작가

확실히 우기인 모양이다. 어제 아주 늦은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분무기 같은 부슬비를 아주 잠깐 맞았다. 해가 뜨고 나서도 구름은 잔뜩 껴있었다. 하늘은 얄궂었다. 오전에 사원들을 빙빙 돌 때는 비를 흩뿌리더니 숙소로 돌아가는 그 멀고 먼 길에선 뜨거운 자외선을 선사했다.


그래도 좋았다. 10바트를 넣고 불상에 금박을 붙인 땐 더 좋았다.


그날 오전이었다. 왓 체리 루앙이던가. 넓은 불당에는 정사각형의 금박이 덕지덕지 붙은 불상과 조각상들이 보였다. 처음엔 금칠이 벗겨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반대였다. 건너편 불상에 누군가 금박을 붙이고 있었다. 그리곤 기도를 했다. 불당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는 그 불상 앞에 다시 섰다. 불상 옆에는 종이에 포개져 있는 금박지가 나무 꼬챙이에 꽂혀있었다. 번역기를 이리저리 갖다 댔다. 통에 10바트를 넣고 금박을 불상에 붙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마침 수중에 있던 10바트짜리 동전을 돈통에 달그락 넣었다. 그리고 조심조심 금박을 불상의 팔에 조심스럽게 붙였다. 떨어지지 말라고 꾹꾹 눌렀다. 기도는 하지 않았다. 합장하는 자세조차 엉거주춤할 것 같았다. 한화 400원 남짓한 돈으로 무언갈 들어달라고 기도하는 건 조금 미안했다.


행복했다. 번역기 돌리는 것이 귀찮아서, 잘 모르는 것을 하기 싫어서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면 아쉬울 뻔했다. 겹치고 겹쳐질 금박을 잘 붙였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무언갈 바라긴 했다. 비나 좀 안 내렸으면 싶었다. 우기에 와놓고 양심이 없는 것 같았지만, 비록 내가 있는 동안은 이상기후이길 바랐다.


그러고도 몇 개의 사원을 더 둘러봤다. 올드타운 안에는 사원이 군데군데 있었다. 금으로된 탑도 봤고 훨씬 큰 불상도 봤다. 박제된 고승도 보았고 중얼중얼 염불 외는 것도 들었다. 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금박이었다. 내가 붙인 금박 위에는 또 누군가의 금박이, 또 절실한 기도가 붙겠지 싶었다. 그렇다면 내 금박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금박에 덮여진, 기도에 덮여진 그것은 불상의 일부로 남을까. 아니면 휘리릭 떨어져 바닥의 일부로 남을까.


참, 400원짜리 기도는 잘 먹혔다. 짧은 올드타운 탐방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나는 택시를 타고 온 거리를 걸어가는 미련한 짓을 했다. 올드타운을 거닐면서 숙소 쪽으로 가까워지기도 했고 해가 아직 뜨지 않아 죽을 만큼 덥지는 않았다. 그렇게 반쯤 왔을까. 구름 사이로 자외선이 등장했다. 구름이 갈라졌고 파란색이 보였다. 이내 곧 죽을 만큼 더워졌다. 아직 난 길바닥이었고 지글지글 구워졌다. 기도가 이렇게 잘 먹힐 줄 알았다면 용기 내서 합장까지 할 걸 그랬다. 조금 더 큰 것을 들어달라고 할 걸 그랬다. 나는 아주 불량한 신앙심을 즉시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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