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부터 쿠킹까지 치앙마이는 원데이 클래스에 대한 수요가 높은 도시다. 나도 한 번 받아보고 싶었다. 원래는 핸드드립 클래스를 받고 싶었다. 업장에서 직접 핸드드립을 내려서 팔기도 했었고, 집에서도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지만 단 한 번도 정돈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저 야매로 배웠다. 실전에 투입되기 위해 나름 각고의 노력을 했고 손의 감각을 다듬었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 어디 가서 핸드드립 내릴 줄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배우고 싶었다. 원데이 클래스, 커피 문화가 발달한 이 도시에 핸드드립 클래스 하나쯤은 반드시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딱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커피 농장 투어는 터무니없이 비쌌고 다른 것들은 핸드드립을 곁다리로 하는 클래스였다. 그렇게 실망을 하다 머리에 생각이 스쳤다. 첫날, 400원짜리 기도가 너무 잘 먹혀 도로에서 익어가고 있을 때 무에타이 체육관을 지나쳤다. 많은 관광객들이 무에타이를 배우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무에타이가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다.
확실히 선택지가 많았다. 요가나 쿠킹처럼 치앙마이 준필수 코스는 아닐지라도 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도전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평도 괜찮은 무에타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아침시간을 골랐기에 눈을 비비며 체육관을 향했다. 아주 어렸을 때 다니던 검도 도장 말고 도장 내지는 체육관을 정말 오랜만에 갔다. 아침이지만 공기 중에 약간 묻어있는 퀴퀴한 땀냄새와 쩍쩍 달라붙는 초록 장판이 참 반가웠다. 짧게 준비운동을 하고 손에 글러브를 꼈다.
복싱, 유도, 합기도, 하다 못해 태권도까지 맨손 투기 종목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 어색했다. 무에타이가 처음인 사람들에게는 튜토리얼로 기본자세와 동작을 알려준다. 처음 보는 동작을 따라 하랴, 영어를 번역해서 뇌에 입력하랴, 정신이 없었지만 열심히 팔과 다리를 휘적거렸다. 가끔 왼쪽과 오른쪽을 헷갈려 무에타이 선생님이 한심하게 쳐다보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기본 수업이 끝나면 수강생 전체가 함께 동작을 반복하여 몸을 푼다. 그리고 선생님과 일대일로 동작 연습을 한다. 한 라운드에 그 많은 동작을 무작위로 반복한다. 선생님이 말하고 손짓하는 대로 미트를 쳤다. 선생님이 몸에 호신장구를 둘러서 마음 놓고 발차기도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에게 그렇게 힘을 줘서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해볼 일이 없으니 처음에는 괜히 불안해서 살살 때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피식 웃으면서 더 세 개 치라고 하셨다. 그것도 몇 번이나. 라운드를 몇 번 반복하자 거리낌 없이 발과 손을 내질렀다.
왜 투기 종목에서 체력을 그렇게 강조하는지 몸소 알았다. 그 많은 동작을 무작위로 하면서 한 라운드를 보내고 윗몸일으키키 10개를 한다. 그러면 30초 정도 짧게 쉬었다가 다시 라운드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팡팡 소리 나는 미트에 재미가 있지만 세 번째 라운드에 들어가는 순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리 쉬어도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점점 몸에 힘이 빠진다. 선생님들은 끝없이 나를 몰아치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그렇게 조금 더 라운드를 진행하면 이거 대체 언제 끝나지? 이 생각이 절로 든다. 돈을 냈지만 단축수업을 진행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일대일로 때리고 차다, 샌드백을 치고, 수강생들끼리 배운 기술을 연습해 본다. 땀이 말 그대로 온몸을 뒤덮고 팔이 덜덜 떨릴 즈음에 마무리 스트레칭을 한다.
재미있고 신선했다. 역시 사람을 기술적으로 때리는 건 무지 어렵구나. 가끔 보던 UFC 경기가 문득 떠올랐다. 그 사람들은 진짜 뭘까. 선생님과 수강생들과 하하 호호 웃으면서 서로 살살, 짜인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싸우는 그 사람들 진짜 뭘까.
휘청거리는 팔과 다리를 부여잡고 겨우 볼트에 올랐다. 몸에 땀이 너무 흘러 등을 기대고 앉는 것조차 미안해 어정쩡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호텔까지 실려갔다. 모든 짐을 다 던져놓고 몸에 묻은 모든 노폐물을 씻어냈다. 그리고 아침에 내가 던져놓고 간 모습 그대로의 침대와 이불에 풀썩 누웠다. 약간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에어컨이 이불을 차게 만들어놓았다. 바스락거리는 이불에 파묻혀 한동안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