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최고의 방법을 아는가. 그것은 바로 ‘잠수이별’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일. 살아있는 사람이 분명한데 죽은 사람처럼 변하는 기적.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연락이 안되니 차단의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니, 이별을 했는지 확신할 수조차 없다. 걱정이 되어 수소문을 하면 집착이 아닐까 두려워진다. 그동안 ‘잠수이별자’는 평화를 누린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마냥 자신의 삶을 유유히 살아낸다. 아, 갈등을 회피하고 상대를 곤경으로 모는 이들을 저주하소서!
친구 하나가 잠수 이별로 사경을 해맨 것을 보았다. 그녀는 몇 달 동안 떠나간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장거리 연애였으니까. 내가 좀 보수적으로 굴었으니까. 남들에 비해 애교가 없었으니까. 갖은 이유들을 들며 상황을 납득하려 했다. 몇달 후, ‘잠수이별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다른 이와 사랑에 빠졌다 적었다. 그 날 친구는 세상이 끝나갈듯 울었다. 재회 컨설턴트를 찾아가고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봤던 그녀였다. 잠을 자지 못하고 밥을 먹지 못하던 친구는 말라갔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잠수이별은 이별이 아니다. 제대로 이별하지 못하는 상황에 영원히 못박아 묶어버리는, 감옥이다.
잠수이별은 감옥이다
나도 잠수이별을 당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전날 밤까지 다정하던 사람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침마다 잘 일어났냐고 묻는 사람인데 그 날은 그러지 않았다. 점심 때가 되어서도 메시지 옆 1이 없어지지 않았다. 퇴근 때까지 나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출근길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상대가 아파서 끙끙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졌다. 아침에 세수를 하다가 핸드폰을 변기에 빠뜨렸을까. 갑자기 핸드폰의 전원이 켜지지 않을 수도 있잖아? 99개 경우의 수까지 세어보다가 나는 결론 내렸다. 이 사람은 잠수이별을 원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끝내고 싶은 것이구나. (이틀 후 나는 이별을 고하고 상대를 차단했다.)
잠수이별이 끔찍한 이유는 단순하다. 사실 우리는 이름도 모르는 타인에게 친절하다. 떨어진 지갑을 애써 주워주고 무거운 짐을 같이 들어준다. 낯선 이에게 부딪히지 않게 안전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옆사람에게 거슬리진 않은지 염려한다. 잠수이별을 하는 사람들이 모든 면에서 나쁜 이들은 아니다. 낯선 이들에게 그토록 친절한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연인에게 최고로 불친절했다는 것이 괘씸한 것이다.
연인에게 최고로 불친절한 그들
이별은 흔히들 ‘갈등’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잠시 휩쓸고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별은 당신 연애사의 반성이자 마침표다. 연인에 대한 공부를 마무리하는 하나의 테스트다. 그래서 이별은 사귀는 그 순간만큼이나 중요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상대에게 안녕을 고하는 하나의 행사이자 배려를 배우는 최적의 순간. 사랑했던 사람을 가장 덜 아프게 물러나게 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새로운 사랑 앞에서도 상대의 마음을 정성껏 헤아릴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점차 성숙해지고 고통 속에서도 타인의 마음을 더듬는 법을 알게 된다.
잠수이별을 한 사람들은 계속 잠수이별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카르마(Karma, 業報)가 쌓인다. 물 아래서 숨을 참는 순간만큼은 사랑하는 사람의 원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영원히 물 안에만 있을 순 없다. 숨을 쉬기 위해서 언젠가 나와야 한다. 연인에게 내던졌던 고통은 당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물밖에 나와서 맞이하는 낯선 새벽 공기마냥 온몸을 휘감아 '후회'라는 단어로 다가올 것이다. 마무리짓지 못한 사랑은 미완성으로 남아 유령처럼 쫓아다닌다. 남에게 상처준 사람은 상처를 꼭 되돌려 받는다. (정말이다)
잠수를 고민할 시간에 좋은 이별을 고민하자.
그러니 잠수 당했다면 그 괘씸한 사람을 당장 당신의 인생에서 차단하라. 왜 잠수이별 당했는지 생각할 시간에 더 좋은 사람을 만나러 나가라. 결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