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1)
우주로 나온 뒤로는 항상 혼자였기 때문에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했다. 물론 사람으로 가득한 지구에서부터 주변에 누군가 있으면 어색하기는 했지만, 박연경 우주비행사를 만나자마자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거북스러운 밀착감을 오랜만에 느낀 탓에 낯설면서도 괴로운 심정이었다. 어떻게 그 사관학교의 시기를 끝끝내 버텨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가장 또렷하게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관학교에 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개인에게 허락된 시간과 공간 모두 부족했다. 시설은 매우 훌륭했지만 그 모든 것은 많은 훈련생을 효율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지, 훈련생의 개인적인 생활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원활한 단체생활을 위해 갖춰진 규칙과 규율도 버거웠고, 타인의 기준에서 계속 평가받아야 하는 상황도 만만찮았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악착같이 졸업시험을 대비했다. 사관학교에서 1년이라도 더 보냈다가는 정신이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우주비행사들에게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 관리도 동시에 중요한 일이었다. 고독과 외로이 싸우다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례, 우주라는 비할 데 없는 공간에 압도되어 탐사선 안에서 고립감을 이겨내지 못한 사례, 지구로 귀환 후 인간과 삶에 대한 무의미함에 허덕이는 사례, 여러 가지 우주비행사들이 겪을 수 있는 정신적 외상의 경우를 훈련생 때 필수과목으로 배웠다.
그때는 천체 탐사 훈련을 위해 우주 근교로 나가는 것 말고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아주 먼 행성의 이야기처럼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 졸업 후 막상 우주로 나와서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주비행사에게는 마땅히 홀로 되는 것이 미덕이었으므로 예상보다 우주비행사는 내게 알맞은 직업이었다. 마치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은 셈이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인간과의 직접적인 교류 없이 지내다보면 우습게도 사람들의 인상이 떠오를 때가 있다. 각 개인의 인상이라기보다는 전체의 인상, 군중의 인상이랄까. 그들의 얼굴을 각각 식별할 수는 없지만 굳건하게 모여 있다. 내가 끼어들 틈 없이 견고한 그들의 집합은 물러서는 법이 없다. 언제나 그 군중은 멀리 서 있다. 나를 보는지, 다른 곳을 보는지, 눈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도 알 수 없는 빈 얼굴의 사람들. 마치 사방에서 나를 바라보는 별들의 모임처럼 아득하다.
내 의지로 멀리 떨어져 나온 만큼, 나름 편안한 생활을 유지했다. 지구보다 편한 우주라 말한다면 조금 과한 표현일까. 내가 우주로 나온 후에 진실로 죽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일어난 반작용의 마음가짐일 수도 있겠다. 어찌됐든 처음부터 나의 죽음은 결정됐고, 그 끝은 오직 내 손에 걸린 일이었으므로 고민할 여지조차 없었다. 적어도 박연경 우주비행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내가 혼자 있다면 죽을 생각은 아직 하지 않을 것이지만,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고 싶었으므로 박 비행사와의 만남만으로 나는 당장에는 죽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사유만으로도 마치 그가 나의 죽음과 깊이 연루된 듯한 기분에 수시로 휩싸였다. 내 죽음이 그의 손아귀에 놓인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그가 없다면 나는 죽을 수도 있었고, 그가 있다면 나는 절대 죽지 못한다.
박 비행사를 만난 순간, 그는 내가 죽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말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박연경 우주비행사의 끈질긴 눈길은 감옥의 창살처럼 나를 가두는 듯했다. 그의 곁에서는 좀이 쑤시는 탓에 달막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혼자 있을 때는 하지도 않을 생각들이 밀려왔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매번 되뇌었다.
이제 그만하자, 그만. 박 비행사를 조우하며 일어나는 상념은 지나친 망상일 뿐이니까. 기다리면 되는 일이야. 다시 곧 혼자가 되는 걸.
이토록 광활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우연에 불과하다. 일련의 우연에 의미를 부여해 필연으로 바꾸는 일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박 비행사와 제대로 말도 섞지 않으면서 나의 죽음에 그를 연관시키는 일은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스스로 가소로웠다. 이것 또한 고칠 수 없는 병에 일종일 것이다. 나는 나대로 있고, 그는 그대로 있을 뿐이며, 우리는 가까워졌을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첫 만남부터 다시 생각하자면 박 비행사는 어딘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구조 요청을 수신하고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내 우주탐사선으로 필요한 물품을 옮기고 행성을 벗어났다. 인사를 할 때나, 짐을 옮길 때나, 함께 생활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박연경 비행사는 말수가 적었다. 적었다기보다는 거의 없었다. 행성에 착륙해 처음 만난 순간에도 고맙다는 말과 함께 묵직하게 나눈 악수가 전부였다.
모든 우주탐사선의 구조와 기능이 같기는 하지만, 탐사선과 나에 대해서 사소한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낯을 가리는 듯도 했고, 나를 경계하는 듯도 했고, 내 눈치를 보는 듯도 했다. 그것이 무엇이어든 간에 그는 지금까지 내가 홀로 일궈 온 탐사선 안의 일상과 동선을 살피며 거동을 조심히 하는 듯했다. 아주 다행인 일이었다. 나는 그 노력이 싫지 않아 그냥 내버려두었고, 그대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구조선이 도착하기를 기다릴 작정이었다.
행성의 기본 탐사를 진행하듯, 박 비행사의 관찰도 그 정도에서 그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점차 그의 시선이 관찰이 아니라 감시처럼 느껴졌다. 똑같이 반복되어 외우기도 어렵지 않은 나의 생활을 그가 충분히 이해했다는 확신이 생긴 후에도, 시선은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듯해서 나도 점차 두 가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는, 그의 눈길.
내가 무얼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의 눈길을 찾게 되었다. 박연경 우주비행사가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다는 예감이 들어 막상 고개를 돌리면, 그는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행세했다. 거짓이었다. 그는 분명히 나를 몰래 살피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내게 물으면 됐고, 말을 하고 싶으면 먼저 입을 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왜 그는 나를 말없이 보기만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내비치고 싶지 않아 애써 모른 척했다. 내가 누군가를 신경 쓰며 행동한다는 것에 이미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고 말아서 일부러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고 보란 듯이 더욱 자유롭게 생활했다. 혼자라면 보통은 하지 않을 탐사선 내의 이동도 자주 했다. 점검을 핑계 삼아 탐사선을 순찰하듯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마치 내가 박연경 비행사의 행동반경을 제안하고 인내심을 자극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그는 군소리 없이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는 듯했고, 불편해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두 번째로는, 나의 행동.
박 비행사의 주의 깊은 시선이 이어지자 급기야 나의 행동거지마저 의식하게 되었다. 혼자서는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생활의 장면들을 제 삼자처럼 뜯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잠에 들 때, 일어날 때, 식사할 때, 화장실에 갈 때, 운동할 때, 씻을 때, 탐사선을 점검할 때, 보고할 때, 자유시간을 보낼 때도 괜히 나의 반응과 행동을 관찰자처럼 눈여겨보는 것이었다.
내가 좀 이상한가. 그래서 내게서 눈을 못 떼는 건가. 내가 생각해도 나는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우주에서의 일과는 지침에서 크게 벗어나는 법이 없을뿐더러 몸에 익은지도 오래이기 때문에 그의 시선을 끌만한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찾지 못했으므로, 나는 내 행동을 거듭 탐색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찾지 못했다는 말은 아직 찾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찾으려는 대상이 애초에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두 가지를 미리 구분할 재간이 없으므로 문득 행동을 멈추기까지 하면서 내 상태를 검열하는 것이었다. 박 비행사로 인해 새삼 나의 활동을 점검하는 일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박연경 비행사와 한시라도 빨리 헤어지고 싶었다. 다시 혼자가 되고 싶었고, 다행히 재촉하지 않아도 박 비행사의 귀환을 위해 구조선은 파견됐다. 구조선이 가까워올수록 나의 죽음이 임박해오는 듯했고, 나는 직접 마중이라도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자살에 대한 집념이 그치지 않았다. 누군가의 옆에서 남몰래 자살을 생각하는 일은 짓궂은 장난을 비밀스레 구상하는 것처럼 가슴 졸이지만 동시에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박연경 우주비행사를 시험해보려는 듯, 그가 나를 보고 있다고 느낄 때 일부러 죽음을 생각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과연 당신이 알아차릴 있을까. 아마 추호도 생각지 못하겠지. 이제 나는 얼마 남지 않았어.
그의 무지를 기만하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다. 박 비행사가 아무 낌새도 알아채지 못한 표정을 지을수록 나는 더욱 성공적인 죽음의 예감에 골몰할 수 있었고, 죽음으로 가는 길에 어떤 방해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오히려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손을 뻗으면 죽음을 움켜쥘 수도 있을 것처럼 보다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박연경 비행사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그가 느닷없이 내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24. 비행사의 정체 _ 진영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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