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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Oct 05. 2024

24. 비행사의 정체

진영(2)





박연경 비행사가 내게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마침 선체 내부 점검에 몰두할 때여서 그가 내 옆에 바짝 붙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건넨 첫마디는 이랬다.


“왜 이렇게 불안해하세요?”


그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지만, 나는 귀신 목소리라도 들은 듯 화들짝 놀란 탓에 왼쪽 목에 담이 올 뻔 했다.


“깜짝이야.” 나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목 근육을 풀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그는 무표정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왜 불안에 떨고 계시는지 물었어요. 괜찮으세요?”


“제가요? 저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그는 나의 마음을 꿰뚫어보듯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런 시선이라야 예전에도 수두룩하게 마주했으므로 거뜬히 응대했다.


“그냥 조용히 있다가 돌아가려고 했는데…… 잠깐 얘기 좀 할까요?”


“예, 뭐.”


우리는 작은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치고는 입을 뗐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벌일 것처럼 불안해 보여요.”


사실 내심 놀랐지만 애써 덤덤하게 답했다.


“옆에서 그렇게 감시하듯 노려보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불안해하지 않을까요?”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입을 뗐다.


“불편했다면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아무리 봐도 김 비행사가……”


나는 말을 무질렀다. “아무튼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네, 그럼 다행이고요.”


나는 점검을 핑계 삼아 곧바로 일어섰다.


갑작스레 던진 그의 첫 질문에 바로 까탈스럽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그때부터 우리는 조금씩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나는 묻는 말에만 적당히 답하면서 거리를 유지했는데, 그가 말을 걸 때마다 아주 성가셨다.



드넓은 우주 한복판이라지만, 결국 내가 닿을 수 있는 범위는 탐사선 내부가 전부였다. 도망갈 곳도 없었고, 도망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그는 말을 튼 후에도 내 행동반경을 침범하지 않도록 무진 신경을 쓰는 듯해서, 식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마주하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식사시간에는 빠짐없이 내게 이런저런 것을 물었다. 간단히 우주비행사 신원만 검색해도 알 수 있는 내용까지 질문했다. 나이, 고향, 전공, 우주생활, 좋아하는 음식…… 아주 번거롭고 귀찮은 시간이었으나 도대체 내가 어디에 가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최대한 빠르게 식사하면서 대답은 아주 천천히 했다. 피상적인 질문만 하는 박 비행사 때문인지, 길게 대답하지 않는 나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화가 겉돌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지못해 답했지만 하나같이 쓰잘머리 없는 대화뿐이라 그가 시답잖은 수다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이지 딱 질색이었다.


박 비행사의 정체를 아는 지금에서야 함께한 시간을 세세하게 돌이켜보자면, 그의 시선과 행동이 다르게 보인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더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바라는 것 없는 태도였다. 미루어 짐작건대 그는 나만큼이나 특이한 사람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우습게도 박 비행사가 구조되어 돌아간 후에는 나를 바라보던 그 눈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헤어진 이후에는 그 눈빛이 뇌리에 유일하게 남아 우주의 별빛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 그래, 그의 눈빛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 눈빛은 감시라기보다는 진정 관찰에서 머무는 듯했고, 나를 안쓰러워하는 것도 같았으며, 또 심히 우울한 빛을 띠기도 했다. 아마 박 비행사는 처음부터 망설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번은 박 비행사가 식사시간에 아무 질문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기 전부터 그가 쏟아낼 말들에 벌써부터 기운이 없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이 없었다. 나는 의아해서 오히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박 비행사는 힘없이 식사했고, 종종 마주친 그의 눈빛도 흐렸다. 기분이나 몸 상태가 별로인 듯해서 나도 조용히 식사했다. 오랜만에 정적 속에서 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식사가 끝날 때까지 침묵할 것이라는 기대는 단숨에 깨졌다. 



조용하던 박 비행사가 불쑥 물었다.


“언제 지구로 귀환하나요?”


“제 보고서를 이미 보시지 않았어요?”


“네, 봤어요. 직접 김 비행사에게서 듣고 싶어서요.”


“마지막 탐사 행성으로 가는 길에 박 비행사님을 구조하러 행로를 변경했습니다.”


“미안하게 됐네요. 아마 제가 조금 더 위급한 상황이었다면, 바로 귀환 명령이 내려졌을 텐데…….”


“그랬을지도 모르죠.”


“불안한 건 괜찮나요?”


나는 쏘아붙였다. “왜 자꾸 불안한지 물어봐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다니까요.”


“그럴 리가요.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모두가 불안하답니다. 가끔은 우주마저도 불안한 것처럼 느껴져요. 우주의 공허에 대해 알고 있죠? 암흑물질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 저는 그런 생각도 해봐요. 우주도 그만큼 불안해서 계속해서 채워나가려 하지만, 공허까지는 메울 수 없다고요. 인간이랑 비슷해요. 그 공허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어요. 그냥 그대로 공허를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없는 그대로요.”


그는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불안하지 않다는 건, 둘 중 하나랍니다. 자신이 불안한지 모르거나, 불안한데 숨기거나. 김 비행사는 어느 쪽 같은가요?”


“항상 그렇게 다 아는 것처럼 말씀하세요?”


“그럴 리가요. 저는 김 비행사에게 묻기만 하는 걸요.”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도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은 아주 특출한 재주였다. 대화를 섞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어 들끓는 속을 삭히며 말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사관학교 몇 기인가요?”


또 빤한 질문이었다. “이미 아시잖아요.”


그는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답했다.



“네, 알아요. 그때는 사관학교도 사회도 폭풍이 몰아치던 때였잖아요. 아니, 폭풍이 몰아친 후라고 해야 맞겠네요. 서로에게 홀린 듯 뱅뱅 돌면서 모두가 우주로 나오기 위해 맺었던 힘이 멎기 시작했을 때니까요. 높이 오른 만큼 대부분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결국에는 그 폭풍의 핵 속에서 조용히 우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만 남은 시절이었죠. 훈련생들도 완전히 휩쓸려 나갔잖아요. 김 비행사는, 어떻게 나가지 않고 남으셨네요. 그 어수선한 때에도 끝까지 우주비행사가 되려는 중요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박 비행사는 유달리 말이 많았다. 그가 평소와는 다른 것 같았다. 내가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말이 많은 사람들도 처음에는 상대의 상황을 살피면서 밀물처럼 천천히 다가오는 법이었다. 아주 조금씩 그 수위를 높이며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짤막한 질문만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대화 방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으며, 본모습은 가히 엄청난 수다쟁이일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시선, 다음은 짤막한 질문들, 그 다음에는 일방적인 대화.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말길을 한 번 잘못 트면 그가 돌아갈 때까지 나는 꼼짝없이 괴로운 말상대가 되는 것이었다. 끔찍했다. 내가 박 비행사의 눈빛만 신경 쓰느라 그의 친밀감이 가슴께를 넘어 턱밑까지 차오르는 줄도 몰랐다. 나는 서서히 밀려오는 물길을 막아내듯 말을 쳐냈다.


“없었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식사를 했지만, 그는 한 술도 뜨지 않은 상태였다. 골치가 아팠다. 그가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말을 쏟아낼 듯하면, 딱 말을 자를 요량이었다. 더 이상은 나도 참을 수 없었다. 같이 있는 동안 조용히 지내고 싶으니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강하게 몰아붙일 심산이었다. 애석하게도 그가 또 입을 뗐다.


“혹시 그때 김태진 선생님이라고 계시지 않았나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나는 놀라 손을 멈칫했다. 쏘아붙일 준비를 하던 나의 입은 반쯤 벌어진 채로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박 비행사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눈만 끔벅거리며 그를 쳐다보자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때 선생님으로 계셨죠?”


“그걸 어떻게 아세요?”


“처음부터 물어볼까 말까 고민했는데, 제 생각이 맞았네요.”


그때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김태진 선생의 이름이 몹시 반가웠던 모양이다. 아예 식기를 내려놓고 말을 쏟아내고 말았다.


“김태진 선생님과 아는 사이셨어요? 이 먼 곳에서 선생님의 지인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 제가 김태진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졸업은 커녕 학교에서 쫓겨났을 겁니다. 아직도 그때가 생생하요. 선생님이 학교에 처음 부임한 날, 강의 중에 동기와 시비가 붙어 싸웠습니다. 사실 싸울 일도 아니었는데, 저는 그때 문제가 많았거든요. 김태진 선생님은 제게 주의를 줬지만, 저는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강의 후에 동기들을 남기시더라고요. 동기들이 보는 가운데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릅니다. 지옥 같은 체력단련이었어요. 아마 본보기를 보이시려고 했던 모양인데, 그때 진짜 죽을 뻔 했습니다. 그제야 김태진 선생님의 체형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말랐지만 다부진 몸에 가무잡잡한 피부까지요.”


첫 만남의 일화가 입에서 줄줄 새어나왔다. 박 비행사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말을 잔뜩 꺼내고 나자 김태진 선생의 이름을 듣고는 감추지 못한 반가운 기색과 일관성 없는 태도에 머쓱하여 코를 괜히 긁적였다. 그런데 갑자기 박 비행사가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난처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네, 그 사람 맞아요. 그이는 제 남편 되는 사람이에요.”






25. 흰 장막 _ 진영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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