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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화 Oct 08. 2024

26. 우리가 찾는 것

진영(4)





내가 천정을 보다가 한숨 비슷한 호흡을 조용히 내쉬자, 박연경 비행사는 말을 이었다.


“센터에 있을 때는 하루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우주비행사뿐만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 지망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어요. 가장 놀라운 점은, 우주비행사가 되려는 사람들은 각자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어느 한 명도 같은 사람이 없었답니다. 덕분에 거꾸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처음에 우주로 나오려 했던 이유랄까요.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도 잘 모르겠는 거예요. 제게 그런 이유가 있었는지.”


그는 입을 앙다물고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곧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말을 붙였다.


“결국 다시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시기가 왔죠. 제가 다시 지구로 귀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츰 사람들은 우주를 간과하며 살기 시작했죠. 그게 참 이상했어요. 아니, 어딘가 부자연스러웠어요. 우리 위에 하늘이 떡하니 있는데 아예 보지를 않는 거예요. 하늘이 맑아진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고개조차 들지 않는다고 할까요. 악착같이 땅을 보는 거예요. 그 기이한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그제야 알았어요. 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우주를 바라보았던 이유.”


나는 박 비행사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는 옹골찼다.



“제 생각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본능같아요. 하늘을 바라보며 꿈꾸는 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본능인 것이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떤 꿈의 일부분을 잃은 것처럼 살아가요. 이번에 지구로 돌아갔을 때는 뭔가 좀 바뀌어 있었으면 좋겠는데, 음, 아마도 똑같겠죠. 광적인 상승 후에 밀려오는 허무함도 한 편으로는 이해도 되지만, 참 속상한 일이에요."


그는 말을 그치더니 머쓱한 듯 입꼬리를 양옆으로 슬쩍 늘렸다.


“그만 이야기가 옆으로 샜네요. 아무튼 그렇게 센터에서 일하는 도중에 남편이 우주에서 실종됐어요. 처음에는 거짓말인줄 알았어요. 실종이라니. 어떤 일도 거뜬히 이겨낼 남편이 실종됐다니. 수색구조 부서의 연락을 받은 후에야 실감이 났어요. 그 순간이 잊히질 않아요. 정말이지 덩그러니 우주 한 가운데 홀로 남은 것만 같았어요. 지구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저는 혼자라고 느꼈어요. 그때 아이를 낳지 않은 걸 후회했어요.”


박 비행사는 놀란 듯 혀를 깨물고는 내 눈치를 보며 말을 붙였다.


“이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았을 텐데, 실수 했네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계속 말씀하세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음, 그래요. 우리 부부는 우주비행사였기 때문에 서로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너무 후회스러운 거예요. 남편이 학교에서 일할 때, 아니 제가 지구에 남기로 결정했을 때라도 아이를 가질 걸 그랬는데, 사실 그것도 터무니없는 후회죠. 제가 원한다고 바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생명도 죽음처럼 인간의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잖아요. 실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게 다 그래요. 만남도 이별도 마음대로 안돼요. 저는 아직도 남편이 너무 보고 싶어요. 김 비행사도 그렇죠? 제 남편이 아니더라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거잖아요.”


나의 답이 없자 그가 말을 이었다.


“남편 실종 후에 상담치료를 받았어요. 제가 우주로 다시 나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제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 착각이었더라고요.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도 있었고, 왜곡된 순간들도 수도 없이 많았어요. 마주하는 일은 두려웠지만 그만큼 제 안의 진실에 닿는 것 같았어요. 정신을 좀 차리자마자 다시 우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본능인가봐요. 음, 제가 우주에서 겪은 일을 모두 전할 수는 없지만...”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우주에서는 우리 마음속처럼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답니다. 그러니 모두 자신의 일이라 생각하고, 동시에 조심해야 돼요. 김 비행사도 이미 알고 있죠?”


나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나의 끝을 떠올리며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우리는 구조선이 도착할 때까지 편안하게 우주의 일상을 지속했다. 그는 더이상 나를 관찰하지 않았고, 나도 괜한 순찰을 돌지 않았다. 간혹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더 이상 나눌 말이 없는 듯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한결 편한 동거 생활이었는데 한 가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박 비행사와 긴 대화를 나눈 이후에도 이따금씩 김태진 선생의 새로운 일화가 기억나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선생의 일화들을 빠짐없이 모두 다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일부러 기억을 더듬지 않아도 불쑥 사관학교에 일이 떠올랐다. 하나같이 아주 사소한 일뿐이어서 내가 아직도 과거의 작은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했다. 그 새로운 일화들은 박 비행사에게 반드시 전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기도 했고, 또 다시 고인에 대한 주제를 꺼내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해서 홀로 조용히 삼켰다.


내 안에 말하지 않은 과거의 기억이 쌓일수록 오히려 내가 박 비행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가짐은 잔조러웠고 눈빛은 부드러웠다. 겉모습으로 인간을 판단한 결과가 대부분 맞았다면 인간들이 불화 속에서 살지 않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의 담박한 태도로 미루어보자면 실제로 생명줄을 해제하여 징계를 받은 사람 같지는 않았다. 박 비행사는 무수한 법과 규정 없이도 원만히 살아갈만한 인상이었으므로, 과거 김태진 선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했던 이야기를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박 비행사의 정체를 알기 이전,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히 기다릴 때보다 구조선은 빠르게 움직인 모양인지 생각보다 일찍 근방에 닿았다. 우리는 임박한 작별의 순간을 담담히 마주했다.


박 비행사가 말했다.

“구조선이 곧 도착하겠네요.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어요.”


“제가 도킹 준비할게요.”


“제가 할게요. 마지막까지 민폐를 끼칠 수는 없죠.”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제가 하고 싶어요. 사실 도킹할 때 느낌을 좋아해요. 완전히 연결되는 느낌이요. 그것만으로도 안전한 곳에 도착한 것만 같거든요.”


그렇게까지 말하니 나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는데 확실히 박 비행사의 솜씨는 나보다 좋았다. 구조선과 도킹을 끝내고 박 비행사는 연결통로로 향했다. 나는 그 앞까지 배웅했다.


그가 갑자기 내 손을 불쑥 잡았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남편 얘기도 고맙고요.”


나는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고생하셨어요.”


박 비행사는 나와 가볍게 포옹을 나누고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다가 나는 다급하게 그를 불러 세웠다.


“저기, 박 비행사님!”


그는 다시 돌아섰다.


“뭐 하나 물어보고 싶은데요.”


“네. 말씀하세요.”


“제가 정말로 불안해보였나요?”


그는 잠시 눈을 굴리며 고민하는 듯했다.


“제가 보기에는 안절부절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지금도 그래요. 몰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는 손을 저었다. “김 비행사님 정말 괜찮은 거죠? 다음에는 편한 모습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우리는 분명히 다시 볼 수 없었으므로 나는 차마 답하지 못하고, 그의 표정을 따라 미소를 지었다.



박 비행사가 무사히 구조선으로 환승한 후, 나는 그가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선체 내부를 둘러보았다. 깊은 적막만이 흘렀다. 이곳에 나 말고 또 누가 있었던가. 박 비행사와 함께한 시공간이 믿기지 않았다. 훈련에 임하듯 기계적으로 도킹을 해제한 후에도 여전했다. 실감나는 꿈을 꾸고 잠에서 방금 깬 것처럼 한동안은 멍멍한 기분이었다.


마지막 행성의 좌표를 재확인하고 행로를 설정한 후에야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의 우주탐사선은 다시 검은 우주를 가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익숙한 고독감에 편히 몸을 뉘일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미루었던 나의 마지막 과업과 함께 박 비행사의 말이 진득하게 떠올랐다.


이것도 나의 본능일까...


그래, 어쩌면 내가 우주로 나올 때부터, 아니 사관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아니 그보다 더 예전.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주 처음부터 피할 수 없는 일이었리라. 그런 명징한 직감이 선득 올라섰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지나온 행성, 그 사이 모든 행로마저도 나의 죽음을 필연적으로 만드는 듯했다.


비로소 이 세상에서 사라질 일만 남은 것이었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삶에서 벗어날 순간.



이제 모든 것을 뒤로하고 마지막 행성으로 향한다. 내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 기나긴 방황의 끝, 나의 종착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27. 어두운 동공 _ 수현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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