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실 Jan 12. 2024

다시 만난, 닿지 못한 아빠

희미한 상아 2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어려운 문제였다.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어려운 문제. 반면 문제가 생기게 된 방식은 너무도 단순했다. 그 괴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순한 행동의 결과가 이렇게 막막할 수 있다니. 수십 년의 세월이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쉽게 넘겨졌고, 우리의 터전에는 간단히 시멘트가 부어졌다.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별일 아니라는 듯 흘러가는 시간과 변해버린 이 공간을 믿을 수 없었다.

 쿨레 숲과 빌레 호수는 우리에게 늘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곳이었다. 더 이상 떼 지어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엄마의 판단은 당연한 것이었다. 우두머리로서 엄마는 무리에게 각자 살길을 찾자는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렇게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황량한 벌판에 엄마와 나 단둘이 남겨졌고 떠나온 곳의 기억이 흐릿해졌다. 어딜 향해 가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출발지도 목적지도 불명확한 여정. 그러니까,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끊임없이 내리쬐는 태양에 수분을 빼앗긴 몸은 말라갔다. 물기 없이 거칠어진 피부는 얇은 실금이 가듯 갈라졌다.

 "엄마, 너무 배가 고파요… 너무…." 의젓한 아들이 되고 싶어 참아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걷기만 한 지 벌써 삼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쓰러질 것 같았다 아니 차라리 쓰러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발걸음을 내딛는 것보다야 그 편이 낫지 않을까.

 "에텔라, 힘을 내보렴. 조금만, 조금만 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하는 엄마였지만 우리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뒤처졌고 뭐라도 찾아보려는 듯 엄마의 발걸음은 조급하게 빨라졌다. 엄마의 뒷모습이 흐릿해져 갔다. 흐릿한 시야 속 엄마는 야위어 있었다.

 풀썩. 아빠가 보였다. 꿈일까. 현실일까. 정말 아빠일까.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아빠의 상아라면 저리 뭉툭할 리가 없잖아. 모로 누운 나의 눈앞으로 회색 동산을 향해 뛰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회색 동산 위 아빠를 닮았을 뿐이라고 믿고 싶은 형체가 있었다.

 "알리!"

 하지만 그곳으로 달려가며 엄마는 왜 아빠의 이름을 외치는 걸까. 엄마의 비명과 같은 외마디 외침을 들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끔찍한 꿈이었다. 어떤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눈가에 남은 눈물 자국을 통해 꿈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그런 꿈.

 꿈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아예 깨지 않는 편이 나았던 건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악몽과 현실은 구분되지 않았다. 단면이 드러나게 잘린 아빠의 상아. 뿌리까지 뽑아내려 살을 파내진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 또한 무의미한 구분일 것이다.

 "에텔라, 정신이 좀 드니?"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 그 뒤로 동산을 이룬 쓰레기 더미, 다시 그 위의 상아가 잘린 아빠.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도무지 이해되는 것은 없었다.

 “엄마, 아빠가…”

 “일어날 수 있겠니? 어서 가자꾸나.”

 엄마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잠시 정신을 잃은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빠와 싸우기라도 한 걸까. 어떻게 만나게 된 아빠인데 그냥 가자니… 나는 아빠에게 한마디 말도 건네지 못했다. 많이 보고 싶었다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냐고. 앞으로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고, 앞으로는 행복하자고. 말해야 하는데.

 말은커녕 엄마는 내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깊은숨을 들이쉬는 엄마는 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아빠는 쓰레기 더미들을 활보하며 닥치는 대로 그것들을 주워 먹고 있었다. 나와 엄마도 잘려버린 상아도 개의치 않고, 그저 눈앞에 있는 것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 모습은 공격적이고 어쩐지 포악해 보이기도 했다. 온갖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가 혐오스럽고 귀한 것이라도 만났다는 듯 그것들을 홀린 듯 먹어대는 모습이 역겨울 만도 했지만, 나는 그저 슬펐다. 변해버린 아빠의 모습을, 이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사실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슬펐다.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어떤 것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알고 있었다. 무엇으로라도 배를 채우고 싶은 그 심정을 실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동질감이 느껴져 고통스러웠다. 우리 중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지 모른다. 자리를 그냥 떠나버리려는 엄마의 판단은 옳다. 떠나지 않는다면 지금 아빠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일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내내 아빠는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배가 부르지도 않은 걸까. 아빠의 배는 언제쯤 부를까. 배가 부를 때까지, 충분히 먹고 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저 너머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회색 동산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인간들의 쓰레기에는 '충분하다'는 개념이 없음을 깨달았다.


 "어서!" 엄마가 좀 더 강하게 나를 몰아세웠다.

 다그치는 엄마의 동공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나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그렇게 내뱉고 있었다.

 우리는 아빠에게서 돌아섰다. 쓰레기들을 이미 '충분히' 맛본 널브러진 사체들이 아빠의 미래를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아니, 그 무엇도 아빠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찢어진 뱃가죽 사이로 흘러나오는 선홍색의 내장, 그것에 착 달라붙어 휘감고 있는 축축한 비닐봉지, 괴기스럽게 박혀 있는 형형색색 플라스틱들, 들끓는 벌레와 구더기, 썩은 고기를 노리는 바싹 마른 새들과 각종 동물들…

 죽음의 땅.

 부유하는 죽음의 냄새를 헤치며 걸었다. 풀려버린 다리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도, 안간힘을 쓰며 걸었다. 죽음과 멀어지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이 길이 생(生)에 가까운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전 01화 둘이 떠나 하나가 돌아오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