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아래 감춰진 피난처
민방위훈련 사이렌이 울리면 수업이 멈춰지고, 우리는 의자를 책상 위로 올려놓은 후, 지진대피하듯 책상아래로 들어가서 훈련이 끝날 때까지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하기 싫은 수업인지라 때마침 훈련이 걸리면 너무 행복했습니다. 경계경보, 공습경보, 해제경보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때까지 기름칠한 마룻바닥만 뚫어지게 쳐다봅니다. 나뭇결에 따라 그려지는 그림들을 상상하면서 이리저리 그림을 떠올립니다. 곰도 나타나고, 로봇도 보이고, 괴도루팡의 옆모습도 보입니다. 희한하게 나뭇결의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나타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앤디가 교도소가 울리정도의 음량으로 “피가로의 결혼”레코드판을 틀어주며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처럼 선생님도 시장통처럼 시끄러운 아이들 소리를 책상 밑에 가두고 피가로의 결혼을 혼자 즐겼을 것 같은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때, 절망이라는 글자에 낙심되어 어느 것 하나 바로 쳐다볼 힘도 없을 때, 가슴 한편으로 밀고 들어오는 가스펠이 있습니다.
날이 저물어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인터넷의 어느 목사님 설교중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한복음 14장 26절)”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생각나게”하신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매번 부르던 찬양이었지만 “내 힘으로 안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라는 가사가 왜 그리도 심금을 울리던지....... ㅠㅠ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는 너무 쉬운 일 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통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일 수 있겠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여분의 것을 나누는 것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여분의 것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합니다.
아내는 요즘 배웠던 플루트를 손에 쥐고 다시 연습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습니다. 때때로 가족 카톡방에 플루트소리를 녹음해서 계속 올립니다. 아이들은 아마 듣지 않는 것 같지만 저는 일견 바쁜 와중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도 카톡방에 업로드는 그만~~ㅎㅎ. 저는 브런치작가 승인이 나고 시간이 될 때마다 글쓰기로 시간을 보냅니다. 몇 개 되지 않는 ‘라이킷’ 숫자를 보면서 오늘도 힘을 얻습니다. 제 아내나 저도 책상 아래로 내려가서 나만의 그림 찾기를 하는 중입니다. 세상이라는 수업시간을 피해 잠시 내려가서 나만의 피난처를 만들고 있습니다.
드디어 공습경보가 해제되고, 의자를 원위치시킵니다. 다행히 수업시간도 함께 끝이 났습니다. 선생님은 다시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해졌고, 숨죽이던 우리들은 벌떡 일어나 교실밖으로 뛰쳐나갑니다. 본격적으로 놀아야죠! 세상은 어렵고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운동장을 향해 뛰쳐나가는 진짜 행복을 위해 오늘도 저는 숨을 죽이고 상상 속의 그림을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