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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Jun 09. 2024

성실한 카메오(cameo)

역할 전환의 단상(斷想)

달려라 푸른 벌판아~!

  두 살 터울의 누나 2명이 세발자전거 뒤로 한 발씩 올려놓고 외칩니다. 앞에 앉은 저는 운전대를 잡고 신나게 경사지 골목을 내리 달립니다. 5살 때 처음으로 세발자전거를 선물로 받고 세 남매가 가끔 이렇게 골목에서 자전거를 탔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달려라 푸른 벌판아~”라는 시적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어린 누나의 감성도 대단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이라고 해봤자 7살, 9살의 누나들이었으니까 한 번쯤은 자전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법도 한데, 제 기억으론 한 번도 자전거로 엄마한테 생떼 부리거나 남동생인 저랑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없습니다. 좋은 것은 당연히 남동생것이고, 빼앗거나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당시에는 오히려 자연스러웠나 봅니다.


  나이가 들고, 인생이라는 큰 물줄기를 거슬러 생각해 볼 때가 되니, 어려서부터 누려왔던 “남자”로서의 특혜가 괜스레 민망해집니다. 누나들에게 있어 그런 일련의 차별은 스스로 인지할 수 조차 없었던 “강요적 사랑의 시대적 희생”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싸이클링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저는 달리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동갑내기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날 정도로 달리기를 잘해서 가을운동회나 체육대회를 하면 늘 계주선수로 발탁되어 관중들의 환호성을 일찍 경험했고, 출발선에 서 있을 때 그 심장의 박동과 떨림은 마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퀸”이 마지막 무대에 오르기 전 극도의 긴장상태와 견줄만했습니다.       

  어렸을 때 줄곧 들었던 의문이.....

‘ 다른 애들은 왜 못 달리지? 다리를 빨리빨리 하면 되는데.... ’ 친구 아이들이 달리는 폼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다리가 느려도 너~무 느립니다. ㅎㅎ   


  드라마 <황진이>에서 ‘천재(Genius)는 노력하는 준재(Talented)를 참 슬프게 한다’고 말한 매향의 말은  살다 보니 과연 진리(?) 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쉽다고 여기는 것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피땀의 결과물일 수 있고, 심지어 천재의 그것만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 천재성은 사람마다 다른 영역에서 다르게, 또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ㅠㅠ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분노의 주먹!!) 지금은 느려도 너~무 느려터진 제 다리를 보며 그 의문은 답을 얻었지만 말입니다.


  기다가 일어서고, 걷다가 달리고, 달리다 잠시 숨을 고르다 다시 뛰고, 다시 걷다가 주저앉고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과 흡사합니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동네어귀까지 내달렸던 푸른 벌판이 갑자기 보고 싶어집니다. 출발선에 서서 울렸던 심장의 박동과 긴장을 다시 느껴보고 싶습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워지는것은 노력하는 준재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서 일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희생에 따른 또 다른 특혜를 원하는 것일까요?


  이젠 역할을 바꾸어 보려 합니다. 세발자전거에서 운전대를 잡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푸른 벌판을 외쳐주는 배려(配慮)와 고무(鼓舞)가 필요하고, 천재로 인해 늘 슬퍼하는 준재보다는 그냥 말없이 노력하는 준재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연으로 한 성실한 카메오(cameo)가 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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