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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를 잡는 심정(3)

알약을 삼키며, 지내는 요즘.

by 위버금

맞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새해가 밝아왔다.


12월의 끝자락에서 잡은 지푸라기는

꽤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여,

신체적 문제라 여겼던 통증의 원인이

실은 정신의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간 나는 매일 3알의 약을 삼켰고,

용량을 증량했으며, 복용 횟수도 늘렸다.


약에 의존하며 사는 인간이 될 줄

상상하지 못했지만...

쨌든, 신경안정제는 일상의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약간 멍~청해지는 기분까지도)


일단,

불안에 압사당한 몸을 수습해 보기로 했다.


깡마른 몸.

미라 같은 이 몸.

뼈의 형태가 완연한 내 몸.


체중을 늘리자!

살을 붙이자!


새해의 목표는 자연스레 체중 증가로 잡혔다.

그리고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았다.


14살 때부터 매년 써오던 다이어리도

올해는 사지 않았다.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될 대로 돼라.

되는대로 살자.

흐름에 맡기자.


뭐, 이런 마음의 변화가 있었다.


상담시간에 이 얘길 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나의 심정 변화를 칭찬했다.

될 대로 되도록 그냥 두어도 괜찮다고.


최근에 읽은 한강 작가님의 소설 속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 나도 언젠가는 사라질 텐데

그냥 되는대로 살자.

지극히 단순한 생활을 하자.

텅 빈 뇌를 만들자.


그 속에 아무 것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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