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의 물음.
"왜 불안을 느낀다고 생각합니까?"
의사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자꾸만 긴장하는 습관.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는 일상.
몸의 감각에 예민하게 벼려진 신경.
도대체 난 왜 이러지?
최근에 내린 답은,
믿음이 없어서이다.
나는....
나에 대한,
타인에 대한,
상황에 대한
믿음이 없다.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의심한다.
그동안 나는 이런 성향이 꽤나 자랑스러웠다.
무언가를 쉬이 믿지 않아서
근거 없는 소문을,
허풍 떠는 사람을,
실체 없는 유령을,
믿지 않았다.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
확실한 실물이 잡히기 전까지
발 없는 말에 흔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임을 알기에.
뒷담화에 끼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것은 나의 아이덴티티였고,
그래서 좀 외로워질 때도 있었다.
외로우면 어떤가.
나는 험담하는 데에 끼고 싶지 않은걸.
남의 흉을 보면서
내 편을 끌어모으는 비겁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은걸.
물론 지금도 이 생각은 유효하다.
약자 한 사람을 잡아놓고,
욕을 해대며 한 덩어리가 되는 사람들을 보면,
구업 짓는 일이라 생각한다.
다 본인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나는 세월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믿음은 필요하다는 게 요즘의 생각이다.
맹목적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 나지만,
의심도 과하면 병이 나는 것 같다.
의구심 자체를 갖지 않지 않는 사람이
좀 편해 보인달까?
있는 그대로의 환경 자체를
그런대로 받아들이는 자세.
(이런 사람, 저런 상황 모두를!)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나를 의심하지 말자.
무심하게, 흘려버리자.
순하게 살자.
온순하게, 고요하게,
좀 너그럽게.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순한 맛을 선사하자.
온유한 시간을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