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회문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밖 Jun 10. 2020

모순: 감염병과 정치적 지향

시민의 자유의지에 답하는 방법


지루하고 긴 감염병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시민들의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아침에 뉴스를 보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발견했다. 기사는 한겨레신문과 한국정당학회가 진행한 '21대 국회의원 정치이념 및 정책현안 인식 조사' 결과이다. 탈원전 정책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인식 차이가 20대보다 21대에서 더 벌어졌다는 점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역시 그 폭은 작지만(3.25->3.88) '추진'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동했다. 미래통합당이 워낙 큰 폭(5.31->7.52)으로 이동한 탓에 격차가 더 벌어졌다.


2020년 6월 10일 자 한겨레신문 기사

지구온난화 대처, 존엄사, 사형제 등에서도 대체로 정당의 정체성과 비슷한 결과들이 나왔다.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이나 난민 수용에 대한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체로 더불어민주당이 진보적이었고 미래통합당은 보수적이었다.  


기사에서 말하지 않았지만 내 흥미를 끈 것은 다름 아닌 '감영병 관리 등을 위한 개신 신상정보 공개' 항목이었다. 여기서 두 당의 정책 지향은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정도가 6.69, 미래통합당이 5.89였다. 전체 항목을 통틀어 유일하게 이 항목만 민주당이 통합당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보수적 입장을 드러냈다. 보통의 상식은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개입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진보적 입장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바로 민주당이 집권당이기 때문이다. 이 문항에 대하여 의원들이 선택한 기준은 현재 정부 정책에 대한 '옹호'였을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만약 현재 집권당이 미래통합당이었다면 허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훨씬 높은 수치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항목은 의원들이 순수하게 정치적 지향을 답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런 조사에서 시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의원들의 '소신'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정치적 소신보다 정부 정책 옹호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0년 6월 10일 자 한겨레 신문 기사


나는 '코로나 시대 학습, 체제, 시민성에 대한 상상과 모색'이란 글을 통하여 이 문제를 잠깐 언급했다. 시민들이 경로 추적에 동의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사생활 정도를 공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감염병 차원의 관리가 워낙 시간을 다투는 문제이기 때문에 경로 추적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선 나는 이 과정을 국가와 시민 간의 계약(일종의 딜)이라 보았다. 서로의 이익이 만나는 지점의 사회적 타산인 것이다.


https://brunch.co.kr/@webtutor/237


만약 국가가 더욱 자세한 경로 추적을 요구하면 확진자, 의심환자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충 어느 지역에 갔느냐를 선의에 기반하여 묻는다면 감염병 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어느 일방이 과도하게 손실을 보지 않게 하는 '게임의 룰'을 설계해야 한다.  나는 한국이 어느 정도 감염병을 통제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가 이러한 사회계약적 시민의식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그림의 정당별 입장에서 감염병 관리 등을 위한 개인 신상정보 공개 항목을 보자. 나는 의원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개인의 정치적 지향 따로, 정부 입장에 대한 옹호 여부 따로 표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항목만큼은 민주당이 보수적인 쪽으로 통합당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쪽으로 나왔다. 아이러니한 모순이다.


사실 이 문제는 두고두고 논쟁 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유럽은 이번에 크게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한편 국가가 감염병을 강하게 통제한 나라들은 또 그 반대의 편에서 '시민의 자유의지' 보장이라는 문제에 대해 답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 기사와 사진은 2020년 6월 10일 자 한겨레신문 4면 기사를 참고하였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48666.html


매거진의 이전글 그 못된 꿈 이야기를 들려다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