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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Aug 09. 2022

다행이다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꼭 살피는 것은 근처에 걷기에 적당한 곳이 있는가이다. 서울 서쪽 끝에 살 땐 오분 거리에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능선을 따라 왕복 두 시간은 족히 걸렸는데 경사가 심하지 않고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있어 좋았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은 적당히 부드러운 흙을 느꼈다. 특히 비가 갠 후 황토흙이 연속되는 구간의 느낌이 좋았다. 


집필 작업을 위해 얻었던 작은 오피스텔에서 20분쯤 걸으면 한강합수부가 나왔고 그곳에서 강 건너 하늘공원을 바라보곤 했다. 학위논문도 쓰고 책도 몇 권 쓴 후 근 10년 동안 유지하다가 이곳을 처분하였는데 아쉬울 것이 없었지만 한강에 자주 나갈 수 없었던 것이 섭섭했다. 오고 가는 단순한 경로였지만 걷는 방법을 다양하게 변용할 수 있었다. 강둑 위, 중간 도보길, 강 아래에 길이 있었고 이를 조합하여 걷는 맛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집의 가까운 곳에 한강의 지류가 있다. 주말 걷기 코스이다. 강변을 걷는 것은 도심보다 덜 지루하다. 내가 걷는 구간을 세 곳의 자치구에서 관리를 하는데 걷다 보면 비교가 된다. 철 따라 바뀌는 화초를 보는 재미도 있다.


세종에서 2년째 머물고 있다. 강변에 있는 숙소를 얻었다. 주로 주중 저녁에 걷는다. 짧게 혹은 길게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걷는 방향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 좋다. 최근에 'ㅇ' 모양의 보행교가 생겼다. 다리 위에  이런저런 구조물과 나무들을 심어 놓았다. 생각보다 보행교 걷기가 단순하게 느껴져서 그냥 강을 따라 걷곤 했다. 두 다리에 기분 좋은 피로가 느껴질 즈음 당도하는 곳이 국책연구단지이고 조금 더 걸으면 큰 다리가 하나 나온다. 대개는 여기서 되돌아 온다. 위 사진에 보이는 풍경이다. 


사진 왼쪽에 금강이 있고 큰 다리를 지나 계속 걸어가면 미호천과 합류하는 지점이 있다. 그쪽엔 인적이 드물다. 혼자 생각하며 걷기에 좋다. 어디에 머물든 걷기 좋은 이 근처에 있어 다행이다. 색에 잠기며 걸을 수 있는 몸 상태가 허락된다는 것도 삶의 기쁨이다.


때로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걷는다. 땀이 비 오듯 할 때 느끼는 해방감이 있다. 그렇게 걸어서 이곳에서 모진 2년을 버텼다. 난 경험적으로 이 말을 믿는다.


물 위를 걷는 것도 기적이지만 땅 위를 걷는 것도 기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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