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번의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았다. 대략 11월 말에서 12월 초, 그러니까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이르는 시간은 나에게 뭔가 애매하다. 계절로 보아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명하게 가를 수 없는 시간이다. 늦가을의 느낌도 있고 초겨울의 느낌도 있다. 매해 맞는 이 시간의 독특한 느낌이 있다. 우선 피부에 닿는 공기의 느낌이 달라진다.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대지의 질감도 사뭇 다르다. 바람과 기온, 공기 중의 수분까지 모든 것이 조금 다르다.
커피숍의 커피 냄새가 조금 더 진해지는 것도 이 시기이다. 특히 내겐 감귤 특유의 냄새와 맛이 달라진다. 차가운 감귤의 껍질을 벗겨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시큼한 맛과 함께 그 계절에 있었던 쓰고 달고 비릿한 경험들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바람맞은 청년의 등이 쓸쓸해 보이고, 실연당해 망연한 연인이었던 사람들은 조금 더 허무해 보인다. 지독한 자기연민에 빠져 허덕이는 그의 웃음을 기다리는 시간.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조금 더 빨라 보이고, 마무리도 시작도 아닌 애매하고 엉거주춤한 시간이 흐른다. 애매하고 엉거주춤하지만 이 시간은 초조함을 부른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를 맞는 경험을 여러 번 했지만 매해 비슷한 이 시간을 나는 '애매한 시간'이라 부르기로 했다. 애써 정리할 필요가 없는 데도,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시간, 바로 그 시간 말이다.
버스에서 내려 업무 장소로 가는 길에 가로놓인 도심 속 공원은 사계절 말이 없지만 특히 이 시간엔 떨어지는 낙엽으로, 동쪽 혹은 서쪽에서 들어오는 긴 그림자로 시간을 자각하게 한다. 누군가 앉아 쉬었을 그 자리, 앞으로 또 누군가가 고단한 몸을 잠시 의탁할 긴 의자는 몇 년째 거기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