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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밖 Nov 25. 2022

애매한 시간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

수십 번의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았다. 대략 11월 말에서 12월 초, 그러니까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이르는 시간은 나에게 뭔가 애매하다. 계절로 보아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명하게 가를 수 없는 시간이다. 늦가을의 느낌도 있고 초겨울의 느낌도 있다. 매해 맞는 이 시간의 독특한 느낌이 있다. 우선 피부에 닿는 공기의 느낌이 달라진다.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대지의 질감도 사뭇 다르다. 바람과 기온, 공기 중의 수분까지 모든 것이 조금 다르다.

커피숍의 커피 냄새가 조금 더 진해지는 것도 이 시기이다. 특히 내겐 감귤 특유의 냄새와 맛이 달라진다. 차가운 감귤의 껍질을 벗겨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시큼한 맛과 함께 그 계절에 있었던 쓰고 달고 비릿한 경험들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바람맞은 청년의 등이 쓸쓸해 보이고, 실연당해 망연한 연인이었던 사람들은 조금 더 허무해 보인다. 지독한 자기연민에 빠져 허덕이는 그의 웃음을 기다리는 시간.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 보이고, 마무리도 시작도 아닌 애매하고 엉거주춤한 시간이 흐른다. 애매하고 엉거주춤하지만 이 시간은 초조함을 부른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를 맞는 경험을 여러 번 했지만 매해 비슷한 이 시간을 나는 '애매한 시간'이라 부르기로 했다. 애써 정리할 필요가 없는 데도,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는 시간, 바로 그 시간 말이다.


버스에서 내려 업무 장소로 가는 길에 가로놓인 도심 속 공원은 사계절 말이 없지만 특히 이 시간엔 떨어지는 낙엽으로, 동쪽 혹은 서쪽에서 들어오는 긴 그림자로 시간을 자각하게 한다. 누군가 앉아 쉬었을 그 자리, 앞으로 또 누군가가 고단한 몸을 잠시 의탁할 긴 의자는 몇 년째 거기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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