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리고 아웅
원래 이 제목을 왜 써뒀는지,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브런치스토리를 연재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목차를 미리 뽑아뒀다.
아마 그때는 이쯤 되면 아내로서, 엄마로서, 한 여자로서 꽤 성장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의 문제쯤은 의연하게 대처하는 내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최근 인스타에서 이런 문구를 봤다.
결혼을 잘 하면 딸처럼 살고, 못 하면 엄마가 된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엄마’가 되었다.
멋진 가장인 척하는 아들 1호와, 귀염둥이 아들 2호.
나는 이렇게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됐다.
살다 보면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순간이 온다.
후회는 하고 싶지 않은데, 버겁기는 하다.
그때 문득 떠오른 단어가 ‘팔자’였다.
지팔지꼰이라는 말이 있듯, 팔자는 한국인에게 익숙하다.
나는 가정에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마다 ‘내 팔자려니’ 했다.
주변에서 가정적인 남편과 사는 지인을 봐도, 그건 그 사람 팔자려니 했다.
누군가 보기엔 무기력하고, 순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팔자를 인정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비슷하다.
싸우면 깨지는 걸 알기에, 차라리 눈을 감는 거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내 팔자를 키운다.
물을 주고, 햇볕을 쬐게 하고, 가끔은 거름도 준다.
그리고 희망해본다. 내 팔자도 조만간 봄날이 오지 않을까.
어쩌면 이게, 내가 결혼생활에서 유일하게 잘 키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