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 May 15. 2023

기준만이 정답은 아닌 걸요

그저 아주 조금 다를 뿐

선택과 집중. 나의 인간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결혼을 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무자녀의 삶을 살아가면서 내 핸드폰의 저장 목록은 조금씩 간소화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내게는 적지 않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인데, 그 이유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일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궁금증은 참으로 넓고 깊고 예측불허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영화 후아유에 나오는 “새로운 사람은 만나기 싫어. 나를 설명해야 하잖아"라는 이나영의 대사가 딱 내 마음이랄까.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게시판에 성인 독서 모임을 계획하고 있다는 공고가 붙었다.


그러지 않아도 독서 모임에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읽는 책의 장르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 모임이라는 강제성을 띤다면 책을 고르는 선택의 폭이 조금 더 다양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더구나 지역구에서 지원을 받아 전문 강사가 강의도 나온다고 하니 꽤 좋은 기회일 것이고, 무엇보다 독서 모임이니 대부분 육아를 하는 입장이어도 육아를 하는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의 자아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었다.


참여 의사를 갖고 도서관을 방문했다.


“우리 OOO 님은 아이가 몇 살이에요?”


그 자리에서 받을 질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40대 기혼여성은 곧 엄마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질문이었을 것이니 미소는 잃지 않고 최대한 가볍게 대답을 했다.


“없어요”


나의 대답을 들은 상대의 입에서는 ‘아...’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동공이 흔들렸던가, 서너 번 빠르게 눈을 깜빡였던가, 안경을 고쳐 썼나. 어쩌면 그 모든 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었건 당황을 한 건 질문을 받은 내가 아니라 질문을 던진 쪽이었다는 거다. 그러고는 이어지는 말이 “함께 하는 분들이 모두 엄마들이라 불편하지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나오세요”였다.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불편한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일 수 있겠다는 것을.


이미 한 번의 모임이 있었고 도서 목록을 보니 육아서가 몇 권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독서 모임이지만 친목의 성격이 짙고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듯하여 결국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기준을 두는 각 나이대의 포지션이 있다. 그중 하나가 앞서 언급한 ‘결혼한 40대의 여성=엄마’라는 거다. 그리고 그 일반적인 포지션에서 벗어났을 때 파생되는 질문들은 의외로 다양하고 이따금 선을 넘기도 한다. 때문에 그동안 사적인 관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다소 멀리해왔다.


아이가 없는 지인 중 하나는 이따금 ‘아이는 몇 살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다 커서 외국에 나가 있다고 말을 한다고 했다. 나이로부터 이어지는 질문을 피하는 데는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이다. 다년간 받아 온 질문들이 쌓이면서 찾아낸 나름의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 그 얘기를 듣고 나 역시 몇 번은 없는 아이를 만들어 가며 그런 비슷한 대답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다 보니 거짓말을 하게 되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 끝에 그냥 솔직하고 담백하게 대답하기에 이르렀다.


이따금 뉴스를 보면 대부분의 통계는 ‘4인 가족’이 기준이 된다. 그만큼 일반적인 가족 구성의 단위라는 뜻일 테다. 물론 기준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다양한 답이 있고 그 안에는 다수와 소수가 있을 뿐 그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은 분명 다르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틀린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누구나 내가 살아온 방식이 삶을 대하는 기준이 된다. 나 또한 어쩌면 4인 가족, 혹은 또 다른 유자녀 가족으로 살고 있다면 내가 받았던 질문을 다른 누군가에게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라는 역지사지의 마음은 내 처지가 다른 사람보다 이로울 때, 혹은 불편하지 않을 때엔 굳이 일부러 꺼내지 않는 이상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니까.


아이가 없다는 나의 대답에 당황하고, 편하게 나오라고 말씀하셨던 그분은 분명 나를 배려해 주셨다는 걸 안다. 그러나 모든 선의가 다 선의로 다가갈 수는 없는 법인지라 오히려 그 배려가 2인 가족을 바라보는 인식이 어디까지 왔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얼마 전 생활용품을 구매하러 찾은 창고형 매장에서 2인용, 그리고 1인용 식탁 테이블이 예전보다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1인 식당이나 1인 메뉴도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비록 사회적인 통계의 기준은 4인 가구일지라도 그만큼 1인 또는 2인 가구 등 가구를 구성하는 단위가 다양해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적인 시선 또한 더딘 속도로나마 열리고 있다는 얘기의 반증일 것이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처럼 선택이 다를 수 있고, 대중교통 안에서도 버스나 전철 등의 선택이 또 달라질 수 있다. 그냥 걷거나 뛰어갈 수도 있고, 걷다가 쉴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나아갈 뿐이라고 조금 가볍게 받아들여주면 어떨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