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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서재 Aug 23. 2024

꼭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할까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길 - 첫번째 이야기

대한민국에서 자식을 키우는 대부분의 부모는, 마치 자녀에게 기대하는 궁극의 단 하나의 목표가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평생을 일해도 벌까 말까 한 돈을 집에 투자할 때에도, 첫번째 고려 요소는 학군이다. 학원을 다녀야만 대학에 갈 수 있는 지 확신은 없지만, 대부분의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는 어려운 형편에도 사교육비를 쓰는데 아낌이 없다. 2023년 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초중고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3만 4000원이라고 발표했지만, 아마 서울 수도권에서는 자녀 한 명당 100만원도 훌쩍 넘기는 사교육비에 허덕이는 부모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자녀 교육의 궁극의 목표가 대학 입시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말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우리 자녀의 삶에서 그리도 중요할까?  마치 외국처럼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나름의 삶을 잘 꾸릴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많은 부모들이 원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대기업이나 괜찮은 조건의 직업을 구하는 것을 기대한다고 가정했을 때, 정말로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그러한 기대를 실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맞는 지를 얘기하려는 것이다.  나는 28년간 여러 기업들에서 직접 IT/전자 분야의 채용을 해왔다. 문과 쪽은 솔직히 사정을 잘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인터뷰해온 IT 및 전자 분야에서는, 지원자만 천명이 족히 넘고 채용한 직원만 수백여명은 될 터이니, 내 이야기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들 대부분에 해당될 것이라 믿는다.


소위 “좋은 대학”에는 왜 가려고 할까?


나 역시 두명의 자녀를 두었고 한 명은 대학 재학중이고, 다른 한 명은 대학을 졸업해 취업한 상태다. 내가 두 명의 자녀 입시를 함께 했을 때, 내 원칙은 딱 두가지였다.


    1) 본인 적성에 맞으면서, 그 중에서 취업 등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에 유리한 학과를 선택할 것.

    2) 학교는 상관없되 재수는 절대 허용 못함.


사실 두번째 항목에 대해서 와이프와 나는 다른 시각이 있었다. 와이프도 기본적으로는 내 생각에 동의했지만, 그래도 자녀가 원한다면 재수도 기꺼이 지원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였다. 나는 이 부분에서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자녀가 원한다면” 물론 나 역시 재수를 하겠다는 자녀의 선택을 지원할 것이다. 하지만 자녀가 왜 재수를 원하게 되었는 지 그 사유가 불분명하다면, 부모는 자녀가 이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도울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SW/IT/전자 업계의 취업은, 학교 네임밸류가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중요하지 않다


대한민국 대다수의 신입 지원자가 원하는 Top class 대기업이나 네카라쿠배에 입사한 친구들을 보면 출신 학교는 매우 다양하다. 소위 듣도보도 못한 대학 출신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SW, IT나 전자 분야는 대다수 기업에서 전공 관련된 입시 테스트를 치르거나 포트폴리오 등 직무 역량을 평가해 합격한 사람만을 채용한다. 즉, 학부 과정에서 얼마나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잘 공부하고 준비해 왔는 지가 더 중요하고, 출신 대학 이름과 학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대기업이나 규모가 있는 IT기업의 신입공채의 경우는 인사팀 외에는 인터뷰 시에 학교와 학점 정보를 알지도 못한 채 인터뷰를 하는 블라인드 면접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학교가 상대적으로 좋은 기업에 취업이 많이 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고 누군가는 얘기할 지 모르겠다. 이러한 통계는 숫자로만 해석할 경우 여러 왜곡된 이해가 만들어질 수 있다. 보통 좋은 학교일 수록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한 성실한 학생이 입학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고, 이러한 성실성은 대학 생활 동안 취업을 준비하는 측면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기 쉽다. 물론 확률적인 측면이 그렇다는 것이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실하고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이미 많이 포진하고 있다보니, 마치 좋은 대학의 졸업장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기업으로의 취업 성공률을 높여준다는 착시를 만든다. 즉 상관관계는 존재하나 인과관계는 아니라는 얘기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이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환경이다. 


자녀 입시 때문에 내가 직접 여러 학교의 컴퓨터 관련 학과 환경을 관찰해 본 결과, 꼭 입시 성적순으로 나열된 대학의 서열 순으로 교육환경이 좋은 것은 아니다. 대학마다 집중 지원하는 학과가 다르다 보니, 네임벨류로는 좋은 학교지만 특정 학과는 홀대 받는 케이스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들은, 각 기업마다 특정 분야에서 선호하는 대학들이 실제로 있다. 이는 꼭 그 학교의 네임벨류가 높아서라기 보다는, 오랜 동안 여러 학교 졸업생을 채용하다 보니 특정 학과는 특히 어디어디 학교 졸업생들이 대체적으로 입사 후 일을 잘하더라 하는 경험적인 판단에서다. 실제로 IT분야의 경우, 중위권 대학이지만 상위권 못지 않게 선호하는 대학도 있고, 상당히 상위권 성적의 대학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선호하지 않는 대학도 있다. 즉 입시 때면 돌리는 성적순으로 정리된 학교 서열 순서대로 기업이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리고 각 대학별로 커리큘럼을 들여다보면, 기업에서 선호하는 최신 기술 트랜드에 맞게 커리큘럼을 잘 관리하는 학교가 있고, 과거 20년전 커리큘럼을 지금까지도 7~80% 이상 유지하는 게으른(?) 대학도 있다. 나 역시 나의 자녀 입시를 위해 후보 대학들의 커리큘럼들을 모두 확인해 보았는데, 꼭 좋은 대학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의 경우는 기준이 명확했다. 내 자녀의 성적으로 입학할만한 학교들 중에서, 성적 순보다는 좋은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고, 기업과의 교류도 활발한 대학들을 중심으로 후보를 추렸고, 이들 중 가능한 안전하게 합격할 수 있는 대학들을 절반 정도 포함시켜 지원하도록 했다. 사실 대학 입학 이후부터는 본인의 몫이다. 학부 과정에서 얼마나 자신을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으로 성장시키느냐는 학교보다는 본인의 노력에 달려있다.


대학 이름보다도 전공 학과가 졸업 후 삶의 질을 좌우하는 세상이 되었다.


앞으로 수년 이후에는 또 어떻게 변할 지 모르지만, 최근 몇 년간 SW, 반도체를 포함한 몇몇 분야들은 기업에서도 사람 구하기가 힘들 만큼 수요가 공급보다 우위에 있는 직종이 되었다. 즉 좋은 대학보다 좋은 학과를 고르는 것이 취업에 더 유리하다는 의미이다.  아마 주변에서 소위 SKY를 졸업했어도 전공에 따라 취업이 힘들어 맘고생하는 자녀들과 부모들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타고난 적성이 따로 있는데, 취업 때문에 무조건 인기 학과를 지원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계실 거다. 맞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성이다. 적성을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최근에는 심지어 문과나 예체능 안에서도 기업 니즈에 맞추어 커리큘럼을 보다 실용적으로 확장하고, 다른 인기 학과의 전공 과목들과 융합하는 대학들이 많다. 좋은 대학 입시를 위해 중고등학교 때부터 잦은 이사에 비싼 강남 학원을 알아보는 등의 정성의 절반만이라도, 자녀가 자신의 적성과 연결지어 대학별 학과 특성에 관심을 갖도록 도와주는데 투자한다면, 이공계는 물론, 문과나 예체능 계열까지도, 취업을 포함한 졸업 이후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해줄 대학과 학과 선택을 자녀 스스로가 고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문과나 도서관련 학과들은 최근 데이터 관련 이공계 학문과의 융합 형태로 커리큘럼을 많이 개설해왔다. 비록 문과라도 기업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데이터 구조와 파이썬과 같은 데이터 분석 기초 기술을 익힘으로써 이공계와의 경계를 넘나들어 취업이 용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디자인과 같은 예술 분야도, 최근 각광받는 미디어, 광고와 관련된 분야로 많이 진출하는 편이다


이러한 조언을 학교나 학원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학교나 학원은 좋은 학교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합격시켰느냐가 성과지표이다. 그러다 보니, 차라리 나중에 전과할 수 있으니 비인기 학과로 변경해서라도 더 높은 학교를 지원하기를 권한다. 실제로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었다. 하지만 해당 학교에 아는 교수님이 계셔서 확인해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일반적으로 인기 많은 학과에서 인기 없는 학과로의 전과는 수월해도, 더 인기 많은 학과로의 전과는 경쟁률이 세서 어렵다고 한다. 어쩌다 약대 신설이나 의대 정원 증설 같은 이벤트가 있어 반수생이 몰리는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퇴학생이 많이 발생해 전과가 수월한 해도 있기는 하나, 일반적인 경우에 전과를 믿고 아무 학과에나 진학했다가, 학부 생활 전체가 불행할 수도 있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 자녀의 앞길을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우리 부모뿐이다. 부모 자신을 위해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자녀가 진정으로 원하고, 대학 졸업 이후에 보다 편안한 삶을 가져올 수 있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줘야 한다고 믿는다.


재수나 삼수, 꼭 필요하면 해야겠지만 그 전에 이유를 짚어 보자


만약 더 좋은 대학 입학이 목표가 아닌, 내가 가고 싶은 전공이 하필 의대와 같이 난이도가 높은 학과라서 이를 도전하기 위해 재수를 선택했다면 기꺼이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지금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이 있음에도, 동일한 학과로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자 재수, 삼수를 고려한다면 그것은 잘하는 선택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강하게 반대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재수, 삼수를 하면 과연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 주변에서 본 바로는, 큰 폭의 변화 보다는 대부분 비슷하거나 한두단계 높은 학교에 지원하는 정도가 그나마 성공한 케이스이고, 간혹 더 안좋은 결과를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설사 한두 단계의 서열을 좀 더 높여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고 해도,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것이 졸업 후 취업 과정에서 큰 잇점을 가져다 줄 것이라 가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예를 들어, 중상위권 대학 그룹과 최상위권 대학 그룹 정도의 차이라면, 이를 바라보는 기업의 시각은 분명 다를 수 있을 지 몰라도, 비슷한 그룹 내에서의 서열 정도는 그리 의미를 두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인생은 어찌 보면 길기도 하지만, 지나고 보면 대부분 짧다고 느낀다. 그 짧은 인생 중에서도 가장 황금기인 20대에 접어드는 나이에, 입시 공부만을 위해 1년을 더 투자하라는 것은 우리 자녀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될 수 있다. 그 보다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대학에서 사회에 기여할 가치있는 공부를 시작하고, 대학생활이라는 낭만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 입학을 시도하고자 한다면, 다른 대안을 제안 드리고 싶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한 해라도 빨리 본인이 현 시점에 갈 수 있는 대학에 입학해서, 향후 더 좋은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훨씬 이롭고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나 역시, 그 시절 학력고사를 통해 원하는 대학 입학에 실패했으나, 재수 대신 후기 대학 입학을 선택한 후, 3학년때부터 석사 과정을 준비했다. 그 결과, 입시 준비 때 목표로 했던 대학보다 훨씬 더 좋은 대학의 대학원 입학에 성공했고, 삼수한 친구들이 학부 졸업하는 나이에 석사라는 학위까지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고는 한다. 대한민국 부모가 대학 입시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보인다. 좋은 대학 입학이 궁극적인 자녀 인생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졸업 후 더 성공적인 삶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 대학을 바라본다면, 대학 입시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대학 서열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같은 값이면 소위 서열이 높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좋을 것이며, 전공 분야와 입사하고자 하는 기업, 기관마다 졸업한 대학 이름이 주는 영향력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마치 대학 이름이 최종 목표이자 전부안 양, 조금이라도 더 높은 서열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전공 학과를 포기하거나, 1~2년을 더 입시 준비에 투자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결정인지는 냉철하게 고민이 필요하다. 졸업 후의 취업 과정은, 대학 서열 이 외에도 고려되는 더 중요한 요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너무 대학 서열에만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생각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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