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동에 위치한 표준커피에는 "근희라떼"라는 메뉴가 있습니다. 앞에 사람 이름이 들어가는 걸로 보아 바리스타나 레시피 개발자의 이름인가 싶지만, 여기서 "근희"는 카페 사장님의 와이프입니다. 커피의 쓴맛을 너무 싫어해서 커피를 사약처럼 느끼는 와이프를 위해 만든, 고소하고 쓰지 않은 라떼가 바로 근희라떼입니다. 메뉴에 담긴 소소한 스토리를 알고 나니 어떤 특징의 음료인지도 알게 되고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생깁니다.
힌트워터의 창업자 카라 골딘은 하루에 탄산음료를 열 캔 이상 마시던 탄산음료 중독자인데, 임신성 당뇨 진단을 받아 탄산음료를 끊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대신 마실 것이 필요하지만 맹물은 마시기 어려웠던 그녀가 개발한 것이 과일을 넣어 단 맛을 더한 물이었는데, 다이어트 효과까지 있어 이것을 사업화했다고 합니다. 스스로의 필요를 충족시킬 제품이 세상에 없어 사업을 시작했다는, 뻔하고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한번 더 생각해보면 2%나 토레타같은 제품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음료이지요.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뭔가 특별한, 더 건강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스토리의 힘입니다.
작년에는 대만에 다녀왔습니다. 첫 번째 방문이다 보니 남들 하는 것은 다 해봐야겠다 싶어 예스진지 투어(타이베이 외곽의 관광지를 버스로 도는 하루짜리 프로그램)도 다녀왔는데, 예스진지의 "진"에 해당하는 진과스에서는 광부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광산지역이었던 진과스에서는 당시 광부들이 먹었다는 도시락을 판매하는데,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뭔가 특별한 경험을 기대했지만, 대부분 관광지 음식이 그렇듯 실망스러웠습니다. 광부 도시락에 왜 김치가 들어있는지, 코카콜라를 왜 굳이 서비스라며 주는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인양 스토리를 입힌 상업적 감각(속셈)에는 감탄을 했습니다.
주류업계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제법 있습니다. 한 청년이 노인을 때리고 있어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청년이 노인의 아버지였고, 백세주를 꾸준히 마셔 동안을 유지했던 것이라는 백세주 설화도 유명하고, 처음 맛본 사람이 "이 맥주에는 악마가 들어있다"라고 평했다는 듀벨 맥주(일명 악마 맥주)의 스토리도 제법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에는 제품이 가진 특성(뭔가 좋은 재료가 들어갔을 것 같은 백세주, 맛있지만 도수가 높아 확 취하게 되는 악마 같은 맥주)이 잘 녹아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야기에 끌리는가, 에 대해 똑 부러지게 답을 하긴 어렵습니다. 인지 심리학자 로저 쌩크의 말처럼 뇌가 중요한 정보는 이야기의 형태로 저장해서 그런 것인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 갖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인지, 이야기가 가진 구체성이 힘을 발휘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높은 도수의 맛있는 맥주'라는 단순한 정보 전달보다 "이 술에는 악마가 들어있다"는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스토리의 힘입니다. 새로운 제품과 브랜드의 런칭에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자연스레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것들을 잘 다듬어 전달하는 것, 그것이 제품과 브랜드를 세상에 알리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