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이야기
대안학교 학생들은 공부를 소홀히 할까요?
물론 학교의 교육 가치관에 따라 공부보다는 다른 체험 위주 활동에 중점을 두는 곳도 있지만, 우리의 학교는 학업을 결코 등한시해서는 안 되는 축에 속합니다. 다시 말해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시험 역시 학교의 주요 일정이라는 뜻이죠.
학생들은 일 년에 네 번의 시험을 칩니다. 보통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1학기 중간고사/기말고사, 2학기 중간고사/기말고사로 시험을 분류하는데, 이곳에서는 1차고사, 2차고사, 3차고사, 4차고사라는 이름으로 시험을 지칭하게 됩니다. 물론 이름만 다를 뿐, 교육부 인가를 받은 학교이기 때문에 성적은 일반 공립학교와 동일하게 산출됩니다. 사교육이 일절 허용되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이곳에서 학생들은 저마다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나름대로의 방법을 택해 공부하곤 합니다. 학교에 슬슬 적응할 즈음 시작되는 2차고사 기간은 가장 열기가 뜨거운 시험기간인데, 시험이 있는 주에는 방과후학교 수업도 잠시 멈추고 온 학생이 학습에 매진하게 됩니다. 학교 측에서는 이런 학생들을 잘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맛있는 음식을 조공합니다. 식당 메뉴가 평소보다 호화로운 것은 물론이고, 오후에 각 교실로 빵과 음료수를 배달하기도 하며, 매일 저녁 기숙사에서는 피자, 치킨, 햄버거 및 학생들이 선호하는 각종 메뉴를 특별 간식으로 지급해 줍니다. 모두가 시험기간의 유일한 장점으로 꼽는 대목이죠.
7월 초중순 즈음 2차고사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여름을 맞이할 준비를 할 차례입니다.
시험이 끝난 순간부터 온 학교는 들뜨기 시작합니다. 공부는 잠시 저만치로 미뤄 두고, 그동안 수고한 학생들을 위한 각종 행사와 여름방학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죠. 이곳에서의 7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한번 들여다볼까요?
시험을 보느라 고생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길거리 공연과 학생회 카페입니다. 체육대회 때도 열렸던 길거리 공연은 이름 그대로 학교의 야외 길목에 설치된 무대에서 진행됩니다. 시험이 끝나 한결 자유로워진 학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에 참여하며, 미리 연습한 많은 공연팀과 더불어 즉석으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에 오른 학생들의 공연 역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학교에서는 창작욕과 예술혼이 넘치는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이번 공연에서도 밴드, 방송댄스, 재즈댄스, 보컬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길거리 공연을 앞두고는 기숙사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응원 피켓을 만들어도 가끔 사감 선생님들께서 눈감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대놓고 만들면 당연히 피켓을 압수당하는 결말을 맞게 되겠죠?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손수 만든 피켓과 응원도구를 흔들며 길거리 공연을 십분 즐기곤 합니다.
한편 근처에서는 학생회 카페가 한창입니다. 학생회에서 예산을 적절히 분배하여 미리 조달해 온, 학교에서 구경하기 힘든 온갖 길거리 간식과 음료수, 아이스크림 등이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사 온 음식과 더불어 학생회 임원들이 즉석에서 조리하는 메뉴도 큰 인기를 끌곤 합니다. 가끔씩 학생회에서 신선한 시도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카나페나 김치전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메뉴로 선정될 때가 그것입니다. 이때 요리를 하는 학생회 임원들에게 말을 걸면 '정신없으니까 저리 가라'를 비롯한 온갖 단호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임원들은 땀으로 범벅이 되지만,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죠.
이 시기에는 학교 곳곳에서 다양한 종류의 영화가 상영됩니다. 학생들은 학생회 카페에서 간식을 한아름 사들고, 원하는 영화가 상영되는 교실로 들어가 여유롭게 영화를 감상하곤 합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종종 학생회에서 파격적인 배달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합니다. 이때는 임원뿐만 아니라 학생회 부서에 속한 부원들까지 모두 동원되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만들어 각 교실로 배달하는 체계적인 분업 시스템을 보여줍니다. 학생들은 시원한 교실에 편하게 드러누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 두 배로 편하지만, 임원들은 두 배로 죽어난다는 슬픈 속사정이 있습니다.
청소가 일상인 학교인 만큼, 여름방학을 앞두고 하는 청소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모두가 잠시 짐을 빼고 한동안 학교를 비워야 하니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쓸고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름맞이 대청소 주간에는 기존의 청소 구역에서 벗어나 전교생이 학교의 각 구역을 다시 나누어 전담하게 됩니다.
대청소는 전교생이 학교의 로비에 모여 청소 구역을 정하기 위한 경매 아닌 경매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때는 모두가 각자 원하는 구역에 배정받기 위해 손을 들고 목소리를 높이곤 하죠. 대청소 구역 선정에 있어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부문은 바로 교실 청소 담당인데, 교실 청소 담당은 교실에 비치된 큰 스피커로 음악을 틀며 자유로운 디제잉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교실이 아닌 다른 구역을 위해 몇몇 학생들이 큰 스피커를 동원하여 곳곳에 놓고 음악을 틀곤 하니 교실 청소에 배치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청소가 시작되면 학교 곳곳에서 서로 다른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비록 청소 과정은 조금 힘들지라도 학교의 분위기는 한층 더 흥겨워집니다.
대청소 검사는 평소보다 더 엄격해서, 대충 쓸기만 했다가는 검사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간혹 청소에 누구보다 열성적인 선생님이 청소 검사 담당을 맡게 된다면 그날은 정말 청소에 온몸을 내던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지난 반 년간 겪어 온 청소 생활을 통해 터득한 요령을 모조리 쏟아부어 담당 구역을 책임지고 탈바꿈시켜야만 비로소 검사를 통과할 수 있게 됩니다. 화장실 얼룩은 뭘로 닦아야 하는지, 유리창을 닦을 때는 어떤 세정제를 묻혀서 어느 방향으로 닦아야 흔적이 남지 않고 깨끗하게 닦이는지, 나무바닥과 타일바닥에는 각각 어떤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지 등 그동안 쌓아 온 노하우를 십분 발휘할 시간입니다.
본관 청소가 끝났다고 빗자루에서 손을 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청소는 '대청소 주간' 동안 거듭 진행되기 때문이죠. 본관 청소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음은 기숙사를 청소할 차례가 됩니다. 본관 청소가 순한 맛이라면 기숙사 청소는 매운 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숙사 대청소 날이면 학생들이 보다 편안하고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한 채 양손에 청소도구를 들고 신들린 청소를 보여주곤 합니다.
청소를 위해 온 사방의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학교의 위치가 위치인지라 간혹 자연으로부터 거대한 벌레들이 넘어올 때가 있습니다. 청소 도중 기숙사 한구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커진다면 높은 확률로 그곳에 벌레가 출몰한 것입니다. 용감하게 기숙사로 침입하는 벌레들은 그 종류도 정말 다양해서, 학교생활을 몇 년간 하다 보면 수많은 벌레와의 조우를 통해 더 이상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 강인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기숙사 청소는 보다 생활에 밀접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세탁기 내부를 청소하고 살균하거나, 빨래 건조실의 습기를 처리하고, 이불과 침구류를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죠. 가끔 특정 분야의 청소에 소질을 보이는 경우 사감 선생님의 눈에 띄어 해당 구역으로 특별 캐스팅이 되기도 합니다.
로비를 닦는 것은 기숙사 청소의 백미 중 백미로 꼽히는 청소입니다. 모두가 대걸레를 하나씩 잡고 한쪽 벽에 일렬로 섰다가, 사감 선생님이 신호를 주면 저마다 기합을 넣으며 열심히 대걸레를 밀며 달려나가는 레이싱이 개최되기 때문입니다. 달리는 사람도 웃기고, 구경하는 사람은 더욱 웃긴 기숙사 청소의 진기명기 쇼 중 하나입니다.
대청소 주간이 끝나면 학교가 한결 여유로워집니다. 별다른 일정이 잡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하죠. 이 즈음 외부의 연극 팀을 초청하여 연극을 감상하는 행사도 열립니다. 도서관 홀이나 강당 등의 넓은 공간에 무대를 설치하고, 주로 전문 연극 팀 또는 연극영화과의 연극 동아리를 섭외하여 연극을 감상하는 시간을 마련하게 됩니다. 웬만한 소극장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실감나는 연극을 관람하고, 배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느긋한 여름날을 즐기다 보면 이윽고 여름방학식이 다가옵니다. 방학식을 앞두고 학생들은 기숙사에 놓인 짐을 모두 정리해서 택배 박스에 담아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입학식 날 보았던 이삿짐센터 같은 광경이 다시금 학교의 곳곳에 나타나게 됩니다. 짐을 쌀 때 실수로 이불이나 베개를 미리 챙겨 넣고 상자를 봉인해 버린 학생들은, 옷을 뭉쳐서 베개 삼아 자거나 겨울 겉옷을 꺼내 덮고 자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방학식 당일이 되면 모두가 강당에 모여 지난 한 학기를 정산합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학생회에서 만든 캠페인 영상을 감상하기도 하며, 한 학기의 마지막 칭찬 시간을 가집니다. 방학식의 말미에는 1학기 수상이 진행되는데 특히 산악등반 당시 리더십과 배려 정신을 발휘한 학생들을 선정하여 상을 주며 독려하기도 합니다. 지난 학기를 되돌아보는 방학식이 끝나면, 학생들은 미리 챙겨 둔 짐을 들고 가을이 되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학교를 나섭니다. 여름방학의 시작입니다.
여름방학에 접어들면 학생들이 빠져나간 학교는 한동안 고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8월에 접어들면 이 적막함이 잠시 깨지는 순간이 있다고 합니다. 방학의 학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지금부터 여름의 한복판으로 달려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