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살아 움직이는 과거 (1)

시리즈: 국제시간여행자연합 ITA

by 그린

“오늘이 몇 월 며칠이죠?”


다현의 말 한 마디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달려오기라도 한 듯 살짝 헝클어진 머리칼을 한 채 숨을 몰아쉬며, 다현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연수 형이 한 박자 늦게 답했다.


“....... 네가 떠난 날짜랑 똑같아. 몇 시간밖에 안 지났어. 20XX년 5월 8일 목요일.”


그 말을 듣자마자 다현이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아, 다행이다. 생각보다 과거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시간이 많이 지나 있을 줄 알았어요.”


힘이 풀린 듯 다현이 터덜터덜 방 안으로 들어왔다. 효신이 다현을 얼른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나도 다현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연수 형 말마따나 ‘몇 시간’ 정도였지만, 몸의 통제권을 부분적으로 잃었을 때의 느낌이 떠오르며 내가 의지한 대로 다현에게 걸음을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이상했다.


해솔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었는데?”


그 물음에는 꼭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것처럼 들렸다. 해솔이 말하지 않은 뒷부분을 기민하게 잡아낸 다현이 해솔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네 탓 아니니까 걱정 마. 무너지는 약사전 기둥에 깔리면서 다쳤던가 했나 봐. 의식을 잃어서 네가 업고 나오느라 몰랐던 거고…….”


다현은 말을 아끼는 듯하더니 덧붙였다.


“아무튼 해결했어, 내가.”


설명이 자세하지 않다 해서 다현을 탓할 수는 없었다. 어찌되었건 다현은 정말로 해결했으니까. 그 해결의 증거가 지금 모두의 눈앞에 있었다. 내 다리는 몇 시간 전의 멀쩡했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연수 형을 돌아보며 다현이 말했다.


“저 과거 다녀온 거 아직 아무한테도 말 안 했죠?”


‘아무한테도’ 라고 칭하기는 했으나 실상은 본부 측에 들켰냐는 질문이었다. 연수 형은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우리 빼고는 아무도 몰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 데이비드 씨한테도요. 이유야 뭐가 됐건 미등록 타임워킹이라…… 괜히 본부 측에 말 들어가면 뒤처리 귀찮아지니까.”


그렇게 말하며 다현이 몸을 늘어뜨려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고개를 치켜든 다현과 내 눈이 찰나간 마주쳤다.


나를 보고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움직이려던 다현은,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도로 입을 다물었다.


-


ITA 최고위원회에서 알립니다. 20XX년 5월 6일 23시 12분 경 대한민국의 서울특별시에서 발생한 ‘대한불교 조계종 영은사 방화 사건’의 구제가 완료되었습니다. 1차 작전에서 입수한 용의자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테러 발생 이전의 과거에서 범인 체포에 성공하였으며, 범인 일당은 성공적으로 연합에 인계되었습니다.

작전 평가는 아래와 같습니다.


총 작전 파견 횟수 (체포 작전 포함): 2

테러 저지 여부: 성공

피해 후유 등급: 2


특이사항: 요원 박세민 부상 (복원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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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의 공지를 확인하고 사색이 된 우리를 향해, 데이비드 씨가 별것 아니라는 듯 태평한 투로 말을 건넸다.


“미안하게 됐네. 숨기고 싶어 하는 줄 알았더라면 굳이 본부에 얘기하지는 않았을 텐데.”


당황한 목소리를 가다듬은 연수 형이 공지에서 눈을 떼며 물었다.


“........ 어떻게 아신 거예요?”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나만 쏙 빼놓고 다같이 자취를 감추지 않았나! 몇 시간 동안 지부 건물 안에 쥐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지, 분명 마지막에 세민이 잔해에 깔리는 것까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는데 몇 분쯤 지나니까 백업 영상 뒷부분이 통째로 사라져 있지. 그럼 분명 무슨 일이 생겨서 과거로 돌아갔다는 소리지, 안 그런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연수 형이 낮게 탄식을 흘렸다.


“그렇겠네요. 저희가 과거를 바꿨으니 백업 영상도 바뀌었겠죠.”


“그렇지. 뭐, 꼭 백업 영상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내 귀에 들어왔을 테지만. 말했지? 본부 안에서 일어나는 일 중 내가 모르는 건 없다고.”


데이비드 씨가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말라고, 젊은 친구들. 본부에는 내가 잘 말해 뒀으니까. 사안이 급해서 본부 허가를 기다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시행한 타임워킹이니 별다른 제재는 없을 거야.”


거기까지 말한 데이비드 씨가 흥미 본위의 표정으로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세민, 지금은 멀쩡한가?‘


나는 나도 모르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 네. 보시다시피.”


“작전 중에 부상을 입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지? 당황했겠어.”


일견 걱정이 어린 눈빛으로 데이비드 씨가 내 얼굴과 다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연수 형이 한 마디 말을 얹었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이 재빨리 조치를 취해 줘서요. 다현이가 제일 고생했죠.”


“음.” 연수 형의 공치사에 데이비드 씨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잘 수습해 다행이네. 덕분에 자네는 참전 순서도 아닌데 작전을 또 나간 셈이 됐어, 하하.”


다현을 향해 데이비드 씨가 농담을 건넸다. 다현은 말없이 데이비드 씨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문득 그 미소가 어쩐지 애매하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어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는 듯한, 그런 종류의 모호함.


그리고 머지않아 내 생각은 대체로 맞는 편이라는 것이 들어맞았다.


그날 밤, 다현은 아무도 모르게 내 방문을 두드렸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늦은 시간이었다.


-


“무슨 일이야?”


침착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급한 듯 느껴지는 노크 소리는 과연 다현의 것이었다. 나는 얼른 문을 열어 다현을 안으로 들인 뒤 물었다.


다현은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 너, 나 모르게 왕따당하거나 했던 적 없지?”


“응?”


조금도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러나 다현은 진지했다.


“아니면 나 모르게 사고를 당했다거나, 뭐 그런 적 없어?”


“무슨 말이야? 그런 적 없어.”


퍼뜩 떠오르는 기억에 나는 얼른 덧붙였다. “....... 사고라고 해 봤자 네가 아는 그게 다야.”


영문을 몰랐지만 나는 우선 충실히 대답은 했다. 그러나 내 대답은 다현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듯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에 서린 당황의 기색을 읽었는지 다현이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놀라지 말고 들어.”


대개 이렇게 시작하는 말의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놀라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남모르게 긴장하며 숨을 죽인 내게, 다현이 나직이 속삭였다.


“너, 영은사 방화 구제 작전 수행 중에 다쳤잖아. 그래서 다리를 못 쓰게 됐었잖아.”


“그랬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현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다현이 조용히, 그렇지만 한 자 한 자 힘주어 내뱉었다.


“그거 사실은 이틀 전이 아니었어. 구 년 전이었어.”


“........ 뭐?”


나는 멍청하게 되묻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현이 다시금 말했다.


“네가 다리를 못 쓰게 된 게 구 년 전이었다고, 이틀 전이 아니라. 나 영은사에서 너 구해 온 거 아니야. 나 구 년 전으로 갔다 왔어. 너랑 내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당혹스러운 이야기가 귓가를 비집고 들어오자 목구멍이 틀어막힌 듯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실타래처럼 꼬여 버린 머릿속을 정리하려 무진 애를 쓰며 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아니……. 나 잘 이해가 안 돼. 그러니까 나는 영은사에서 건물 잔해에 깔리면서 그때부터 다리를 못 쓰게 된 건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고?”


“그래. 네가 영은사에서 잔해에 깔리던 그 순간에,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의 과거가 바뀐 거야. 내가 이틀 전 영은사로 타임워킹을 했을 때 너는 이미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상태였어. 그럼 영은사에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이전부터 다친 상태였다는 거잖아.”


다현이 내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어렴풋한 불빛을 타고 다현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왔다.


“영은사 테러 하루 전날로 가 봤어. 그때도 넌 다리를 쓰지 못하고 있었어. 이틀 전에도, 일주일 전에도, 한 달 전에도 마찬가지였고.”


스탠드 불빛이 다현의 눈동자에 비쳐 일렁였다.


“그럼 대체 언제부터 다쳐 있던 거지 싶어서 점점 더 먼 과거로 가 봤어. 반 년 전, 일 년 전, 삼 년 전……. 그렇게 가다가 구 년 전까지 간 거야. 우리가 연합에 들어오기 직전의 시기로.”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어쩌다 다쳤는데?”


다현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 학교에서. 수업 도중에 체육 창고에서 발견됐어. 심부름을 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 같은데 나도 직접 목격한 건 아니니까 정확하게는 몰라. 차근차근 뜯어볼 정신까지는 없어서 그냥 시간을 돌리고 네가 체육 창고로 못 가게 막아세웠어. 그게 다야.”


그렇게 말한 다현은 한결 첨예해진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물어본 거야. 혹시 내가 모르게 괴롭힘당한 적이 있는지. 아니면 내가 모르게 사고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는지.”


고요한 방 안 공기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넘실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없어. 그런 적.”


다현과 나는 과장을 조금 보태 서로의 집에 있는 숟가락 개수까지 알았다. 줄곧 같은 학교를 다녔고, 사는 곳도 코앞이었고, 부모님들끼리도 각별한 사이였다. 학창시절 내가 큰일을 당했더라면 다현이 반드시 알아차렸을 것이었고, 다현에게 큰일이 생겼더라면 나 역시도 알아차렸을 것이었다.


다현이 무겁게 내뱉었다.


“……. 사실 사고를 당했든 안 당했든, 그건 문제가 아니긴 해. 진짜 문제는 대체 가만히 있던 과거가 갑자기 바뀐 이유가 뭐냐는 거야.”


우리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다현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나 역시도 마음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민아.”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내리깔았던 눈을 들어 다현을 보았다.


“너 뭐 기억나는 거 없어? 네가 다쳤던 때가 딱 구 년 전 이맘때였어. 오월, 운동회 준비하던 시기.”


내가 말없이 듣고만 있자 다현이 거듭 말을 이었다.


“과거가 바뀌면 그 바뀐 과거와 관련된 기억이 새롭게 생겨나잖아. 네가 다리를 못 쓰게 된 시점과 관련한 기억이 네 머릿속에 생겨났을 거 아냐. 뭐 떠오르는 거 없어?”


그 말에 나는 천천히 머릿속을 되짚기 시작했다. 열일곱 살이었던 해, 오월. 다리를 못 쓰게 되었던 사고-.


과연, 특정한 한 지점에서부터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기억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 그때 내가 의식이 없었어.”


“뭐?”


이번에는 다현이 얼빠진 투로 되물었다. 내가 다시금 내뱉었다.


“네 말이 맞아. 체육 선생님 심부름 때문에 체육창고에 들어갔거든. 근데 한 삼 분쯤 지나서부터 머리가 조금씩 어지러웠고, 그대로 몸에 힘이 빠지면서 눈이 감겼어.”


변해 버린 과거의 기억은 모래에 파묻힌 조각처럼, 직접 찾아서 발굴하기 이전까지는 원래의 기억에 묻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기억나는 대로 곧장 상황을 읊었다.


“기억나는 부분은 거기까지야. 눈을 떴을 때는 학교 근처 병원이었고……. 담임 선생님이랑 부모님이 와 계셨고. 그때부터 다리를 못 쓰게 됐어. 다용도 옷장에 깔린 사고였다는 것 같아.”


다현의 눈빛이 침잠했다.


“그 부분은 나도 기억나. ……. 그러니까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 그 중간의 기억은 없다는 거지. 별 도움은 안 되겠네.”


다시금 방 안에 적막이 찾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조심스러운 투로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구 년 전의 과거가 바뀐 거면, 구 년 전에 내가 사고를 당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전부 영향을 받았을 거 아니야. 나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채로 연합에 들어왔을 거고, 연합에 있는 모두가 그 기억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을 텐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를 정확히 알아들은 다현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일단 다른 지부 사람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을 거 같아. 과거로 타임워킹을 했다가 의도치 않게 사건사고가 발생해서 그걸 뒤늦게 수습하는 경우야 많고, 그런 케이스 중 하나라고 생각할 거고. 어차피 네 상태도 원상복구됐으니까….… 문제는 우리 지부 애들인데.”


솔직하게 말할까? 찰나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나는 그 생각을 흔적도 없이 지워 버렸다. 열일곱 살의 내가 별안간 사고를 당했다는 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연이어 설명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줄기를 타고 타고 거슬러 올라가다, 내가 직접 타임워킹을 하지 않는 이유까지 파고들기 시작하면 그때는 일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다현이 덧붙였다.


“일단은 조용히 하고 있자. 어차피 바뀐 기억이라는 건 굳이 들추지 않으면 원래 기억에 묻혀서 잊고 살기 쉬우니까…… 누가 떠올리고 캐묻기 시작하면, 내가 볼일이 있어서 우리 학창시절로 갔다가 과거가 틀어지는 바람에 급하게 수습했다고 하지 뭐.”


나는 동의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했다. 모두가 잠든 밤, 우리만이 깨어 있는 지부 건물은 지독하리만치 조용했다. 그 안에서 어떤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는지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만큼.

나는 잠시간 잃었다가 되찾은 내 왼쪽 다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과거가 멋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내 의사와는 반대로.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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